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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2. 왜 기업은 망하는가? - 사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다
가끔 일부 조직에서는 사업 환경이 변하고, 기존의 사업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옹고지이 되어 닫힌 상태에서 타협하려고 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주변을 보지 않고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고집스럽게 나아가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업의 개념이란 사업의 기본적 속성이다. 사업을 하는 기본적 철학이 무엇이며, 시간과 환경을 초월한 변함없는 사업의 존재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조직의 성패는 업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중점 관리 방안을 마려해 업무에 활용하게 하는냐에 달려있다.
사례1.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는 집단 인식
30년이 넘은 화학 공자오가 같은 자잋산업이 있는 회사를 가면, 정문에 '안전제일'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걸려 있다. 공장 사무실에도 안전, 근로자들이 쓴 안전모에도 안전이 표시돼 있다. 커다란 파이프라인으로 이루어진 공장의 생산품은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안전사고는 제품불량의 수준이 아니다. 자칫하면 도시 하나가 파괴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특별 감독한다. 그래서 이 공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안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내가 우리 회사와 우리나라의 안전을 지키는 리더'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조직에서 의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안전이다. 안전에 저해되는 일을 추진하기란 불가능하다. 인력에 대한 조정도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의 진척이 불가능하다. 무언가 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교육하고 싶어도 '안전이 우려되어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말 한마디면 예외가 된다.
회사는 기존 사업에서 벗어나 신규 사업으로 전환을 해야만하는 시점에 서 있었다. 신규 사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대표이사는 비전을 재설정하고, 해심가치를 정해 구성원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고 싶어 했다. 비전은 대표이사가 결정했고, 핵심가치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정하기로 했다. 조직에서는 도전, 열정, 창조, 신뢰를 기반으로 차조적 사고를 가지고 열정을 다해 도전하는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의견의 80% 이상은 '안전'이었다. 이 조직의 구성원들에게는 신규산업이든 기존산업이든 '안전만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구성원들으 ㄴ안전을 의식하지 않고 도전한다면 더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사례2. 유연하라고? 공장 폭발하면 누가 책임지나요?
서 차장은 열린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구성원들이 좀 더 활발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출하게 하기 위해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강조하는 4시간의 교육과정을 개발했다. 선진기업의 성공사례를 중심으로 강의 보다는 토론식으로 과정을 설계했다. 서 차장은 과정설계뿐 아니라 직접 강의에 나서 과장들을 대상으로 해당 과정을 진행했는데 성장하는 회사와 쇠퇴하는 회사의 사례연구를 소개하고, 왜 우리에게 열린 사고가 필요한가를 설명할 때의 일이다.
생산 공장에서 참여한 교육생 중 한 명이 "유연하면 공장은 폭발한다. 공장이 폭발하면 누가 책임지나? 공장은 유연할 수 없는 조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산자들은 담당자가 융통성을 보이면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며, 공장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기준에 의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영업을 담당하는 한 과장도 "우리 회사는 연속공정이기 때문에 누구 한 사람이 잘한다고 다 잘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공정부터 마지막 공정까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누군가가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면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것이 부분의 이익은 될 수 있어도 전체적으로 보면 큰 손해가 될 수 있다"며 동조했다. 외환을 담당하는 이 과장도 환율의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자금운용에서도 안정적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하며 거든다. 이 조직에도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이 최적이고, 새로운 방식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이 조직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은 입사 후 조직을 위해 단 한 건도 개선방안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어디에 제안해야 할 지 몰라서 인 것도 있고, 제안을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고, 쓸데없는 행동 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오기 때문이란다.
구성원들은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면, 새로운 방법을 찾기 보다는 몹시 당황해 하며 전 담당자를 찾아간다. 특별한 대안이 없을경우, 고민을 통해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장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밤을 지새우며 뭔가 해결책을 찾으려는 열정은 찾아볼 수 없고, 조금이라도 힘든 일은 전부 외부업체에 요청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 회사 내에서 개선활동은 사라졌다.
업의 본질이 무엇인가?
S그룹에서는 업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신용카드업은 외상대여업으로써 화폐, 외상, 이자의 본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계 사업에서는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그 자체의 업의 개념에서 전자사업, 나아가 패션사업으로 인식했을 때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상조한다. 시간을 알려주는 단순기능만을 강조한다면 정밀기계산업이다. 그러나 더 정확히, 더 저렴하게, 더 편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강조한다면 디지털시계와 같은 전자산업으로 인식된다. 또한 위신, 자부심, 여러 개 갖고 싶은 욕구를 갖게 한느 패션사업으로 인식된다면 소량일지라도 그 가격은 비싼 제품으로 탈바꿈한다.
에스원의 업의 개념을 경비업으로 본다면 사람이 3조 2교대와 같이 보안을 책임지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 안전업이라고 정의한다면, 사람과 장비의 연계로 보안장비가 우리면 사람이 출동하는 시스템으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만약 사회시스템업이라고 정의하면, 보안의 개념이 아닌 인류의 안정과 행복 추구를 위한 사회 시스템이 중요시된다. 밤에 일정 장소에서 순찰을 하거나, 출동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 아닌 국가 시스템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업의 본질을 구성원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정의하고 있느냐가 시장에서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업의 개념 정립 방안
중요한 것은 어떻게 구성원에게 같은 개념의 인식을 갖도록 가져가느냐에 있다. 업의 본질을 알고 업무를 하면 매우 성과가 높고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업의 개념을 정의하고, 중점 관리 방안을 마련해 업무에 활용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업의 개념 정립은 크게 3단계로 살펴볼 수 있다.
▷1단계. 업의 분석(중요 질문을 통해 분석할 수 있다)
1) 업이 출연한 배경이 무엇인가?
2) 사업을 영위하는 사회적 존재의의(책임)가 무엇인가?
3) 이 사업은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가?
4) 무엇이 핵심기술이며, 향후 추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5) 시장의 환경은 어떻게 변하며, 경쟁상황은 어떠한가?
6) 사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자원은 무엇인가?
7)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프로세스는 무엇인가?
8) 성장과 이익을 좌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무엇인가?
9) 경쟁력을 결정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은 무엇인가?
10) 선진 경쟁사에 비해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
▷2단계. 업의 개념 정립
이 단계에서는 미래 지향적인 사업의 존재의의를 수립하고, 미래 경영 환경 및 경쟁 분석을 바탕으로 업의 특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항공 산업의 특성은 인간과 생명과 관련된 안전산업, 대규모 투자를 하는 장치산업, 100만 여 개 부품의 조립산업, 첨단기술집약 산업, 정부 규제 산업, 막대한 개발이 소요되는 장기연구개발 산업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장 경쟁력 높은 수준을 선점하기 위해 어떠한 핵심성공요인을 정하는 지의 문제다. 막대한 개발비가 소요되고, 장기연구가 필요한 사업이지만,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져가고 싶다면 우수개발인력의 확보, 재원을 안정적으로 투자해 줄 자본가, 최첨단 R&D센터 등이 중점관리 포인트가 될 것이다.
▷3단계. 업의 개념 내재화 및 업무 활용 실천
3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본부, 팀, 개인의 업무와 업의 본질의 연계에 있다. 업의 본질에 맞게 전략과 직무의 중점관리 항목들이 선정되고, 이것을 토대로 구성원들에게 교육됨은 물론, 업무에서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
구성원에게 전파하는 역할은 인재개발(교육)부서가 아닌 현장 임원 또는 조직의 장이 담당해야 한다. 중점과닐 항목이 평가지표로 선정되어 최소한 분기별 점검되고, 평가되어야만 한다. 업의 본질은 설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업무를 통해 실천됨이 보다 중요하다.
업의 본질을 파악하여 길을 제시하는 리더
경영층이 업의 본질을 망각하고 사업을 펼치거나, 업무를 추진하다 보면,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신규 사업도 업의 기축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 경영을 하는데 순서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정 자원으로 어떤 것을 선택하여 집중했느냐는 기업의 성패에 결정적 원인이 된다. 그리고 과거의 성공 요인 또는 가치가 현재와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업의 본질도 결국 환경의 변화 속에 바뀌어 가야 한다. 이를 정확히 파악앟여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 리더이며 조직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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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3. 왜 기업은 망하는가? - 정 대리가 되어버린 정 사장
[사례 1] 모든 일에 세심하고 꼼꼼한 정 사장
부사장으로 있다가 CEO로 임명된 정 사장은 부사장 시절, 꼼꼼하고 세심하기로 유명했다. 시간 관리도 철저했고 업무에 있어서 빈틈이 전혀 없었다.
사장이 된 정 사장이 제일 먼저 한 일은 M-day관리체제였다. 매주 금요일이면 한 주간의 실적과 차주의 계획을 적어 내도록 했다. 실적과 계획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작성하고, 프로젝트가 없는 경우에는 적을 수 없도록 했다. 프로젝트 시작 전에는 몇 Man day가 필요하며, 누구와 할 것인지 제안하고 심사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보고서와 함께 몇 Man day가 소요되었는지 평가했다. 구성원의 Man day는 직위에 따라 금액을 다르게 책정하여 추후 평가시에 이 금액과 프로젝트의 질, 그리고 기간을 가지고 평가를 하도록 했다.
매주 월요일는 과장 이상과 회의를 진행한다. 프로젝트별 마감되지 않은 프로젝트와 프로젝트가 없거나 성과가 낮은 담당자는 이 회의에서 많은 질책을 받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인간적으로 심한 이야기까지 오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성원들에게 월요일 회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일의 성과는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와 열정과 즐거움, 도전과 성취감에서 창출된다. 정 사장처럼 CEO가 철저하게 업무를 챙기면 사장 이하 임원들은 일의 방향과 큰 그림을 그려주기 보다는 업무에 잘못이 없는지 오탈자 살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무엇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인지에 대한 생각이 없고, 그들에게는 오로지 CEO에게 지적 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만 있다.
[사례 2] 왜 전결규정이 필요해?
정 사장은 또 1년 가까이 시간을 두고 회사의 전결규정을 정비했다. 지금까지의 전결규정은 5년 전에 작성되어 많은 부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사팀의 제안에 따라, 전 조직의 전결규정을 개정하게 되었다. 이전의 자료를 해당 부서에 배포하고, 전결 사항과 전결권자를 조정했으며, 불필요한 전결규정은 삭제하고, 새로운 규정을 포함시켰다. 매번 경영위원회에서는 각 조직의 전결규정 변경사항을 놓고 최종 의사결정을 했다.
전결규정 정비후 사무용 PC구입을 위해 결재를 올린 이 과장은 팀장의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팀장의 예산 전결권은 1천만 원이었다. 사무용 PC 구입에 소요되는 예산은 750만 원이고, 팀 예산에 기 반영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 과장은 품의서에 팀장 전결로 PC구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팀장은 최종 의사결정자를 상무로 변경하고, 회계팀의 합의를 받으라며 반려했다. “팀장님, 전결규정에는 팀장님 전결사항이므로 상무님까지 갈 필요도 없고, 연초 경영예산이 승인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회계팀에 합의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팀장만이 아니었다. 임원들도 정 사장에게 사소한 업무까지도 전부 보고하고 있다. 간혹 전결사항을 보고하지 않고 실행했다가, “당신이 무슨 권한이 있냐”는 한마디에 속수무책으로 질책 받은 임원들을 여럿 봐왔기 때문이다.
경영설명회 후에는 임직원과의 허물없는 질의응답 시간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통상 질문 없이 끝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 사장의 경영현황 설명이 끝나고, “질문이 있냐?”는 말에 이 과장이 “대표이사님, 임원들과 팀장들이 사소한 보고까지 전부 대표이사님께 올리다 보니,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전결규정에 의거,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 나가는 업무처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다.
순간 좌중이 술렁거렸다. “나는 임원들에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보고받고, 대부분은 각자 책임감 있게 처리되고 있다”는 정 사장의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다음 날도 이 과장은 채용 면접관 선정 안을 들고 정 사장 사무실 앞에서 앞 사람의 보고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사례 3] 사장님, 제발 마지막에 이야기해 주세요.
전략실에 배치된 서 차장의 업무는 경영위원회 운영이다. 매주 월요일 사장님의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10시부터 경영위원회가 열린다. 경영위원회 안건은 각 본부별로 취합하여 2주 전 사장에게 결재를 득한다. 서 차장은 각 본부의 안건들 중에서 파급효과와 영향력 등의 중요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결정된 안건은 주로 팀장들이 발표를 하게 된다. 발표가 끝나면 정 사장의 질문과 코멘트를 듣고 발표를 마친다.
안건의 대부분은 인사 이슈가 많이 차지하고, 본부별 안건은 한 달에 한 건 수준이다. 본부의 안건에 대해서는 일종의 묵계가 있는 듯했다. 타 본부에서는 거의 질문이나 코멘트가 없다. 그렇다 보니 발표를 마치면 질문이 있냐는 의례적 인사도 없다. 이러한 경영위원회의 운영을 개선하기 위해 서 차장은 3일 전 자료를 배포하고, 전사 차원에서 실시여부를 검토하여 토론 중심으로 이끌어 주기를 당부했다.
3일전 자료가 배포되고, 본부장들은 변경되는 승진제도에 대해 회의 전에는 본부 입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인원이 많은 조직은 주로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적은 조직은 반대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경영위원회에서 승진제도에 대한 인사팀장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정 사장은 “이것을 말이라고 하느냐?”며 “세계 어느 기업이 이런 제도를 운영하느냐며 실시되고 있는 회사를 말해 보라”고 역정을 낸다. 성과가 있는 사람이 승진해야 한다며 원점에서 검토하라고 하고, 본부장들에게 의견을 말해 보라고 하자, 역시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금번 경영위원회 안건은 달력제작에 관해서다. 구성원들은 회사 달력이 좀 더 품격이 높아지길 희망하고 있었지만, 내년에도 금년과 비슷한 자연을 테마로 한 사진으로 수량, 금액, 제작기한에 대한 발표를 했다. 이번에는 사장의 좋다는 한마디에 아무도 반응이 없다. 서 차장이 용기를 내 구성원이나 고객의 만족도 조사는 해보았느냐고 물었다. 홍보팀장은 조사는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만족해한다고 한다. 창고에 전년과 올 해 달력이 쌓여 있는데도 말이다.
매 안건마다 사장이 결론을 내다보니, 본부장들은 참석자에 불과하다. 의사결정권이 없는 듯하다. 질문도 없다. 유능한 사람들이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장이 A라고 하면 다 A가 옳다고 한다. 동일 안건에 대해 B라고 하면 다들 B라고 한다. 언제 A라고 했냐는 식이 된다. 서 차장은 경영위원회의 발전을 위해 본부장 토론 후에 사장님의 마지막 결론을 제안했다. 이 역시 정 사장의 좋다는 말에 모두가 찬성한다.
[사례 4] ‘나를 따르라’ 오직 한 사람에게만 충성
정 사장은 매사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다. 그래서 회의에서는 반대의견이 없다. 모두가 펜을 들고 지시사항을 받아 적기에 급급하다. 업무를 추진하면서도 시시콜콜한 지적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대표이사 말만 따르는 임직원들로 거듭났다. 물론 지시가 내려지면 수단과 방법은 뒷전이고, 열과 성을 다해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불씨를 당기는 나를 따르라가 되어야지, 아무 일이나 나를 따르라고 하면 부하직원들은 죽을 맛이다.
정 사장의 성실함은 자타가 인정한다. 매일 아침 6시면 출근해 있다. 임직원들의 주머니에는 사장이 무엇을 질문할지 몰라 제품과 사람에 대한 데이터로 가득하다. 정 사장은 항상 야근을 하고, 그의 일정은 주말도 없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뤄져있다.
그러나 오너인 회장이 오면 모든 분위기가 달라진다. 오너 옆에는 정 사장이 계속 싱글벙글 거리며 따라 다닌다. 어느 날 정 사장은 화장실에서 3시간 동안 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자랑으로 회사에 회자된다. 취짐, 식사시에도 항상 핸드폰을 갖고 있는 정 사장은 두 자녀의 결혼까지는 회사에 있어야 하며, 가장 두려운 일이 퇴직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오너에게 헌신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 사장에게는 오너밖에 없다. 다른 본부장의 의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충성심이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성이라면, 안타깝지 않을 수 있다. 개인적인 이익 앞에 포장된 충성심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 회사가 어렵게 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이익을 쫓아 행동한다. 망해가는 회사보다 자신의 성과급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회사가 잘 나갈 때에는 오너에게 속의 간이라도 다 빼 줄만큼 행동한다.
사장에게는 사장의 역할이 있다.
사장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업의 특성이 있으며, 회사의 규모와 성장 단계,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사뭇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장은 사장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장이 대리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임원들은 사원이 되고 말 것이다. 직원들은 눈치만 보고, 누군가가 구제해 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복지부동의 분위기가 만연해질 것이다.
사장답다는 것은 회사가 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회사를 이끌어 가는 철학이나 원칙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신중하되, 과감하고 신속하게 내려 줘야 한다. 적절한 권한위임이 행해져 임원들이 권한을 갖고 책임감있게 일을 추진해야 한다. 외부 네트워크에 강해야 하며, 변화의 방향을 읽고 이를 주도해야 하는 것이다.
사장이 너무 똑똑하고 부지런하기 보다는, 똑똑하지만 조금은 게으른 편이 낫다고 한다. 가장 최악인 정 대리는 멍청하고 부지런하기 때문에 방향도 없고,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뒤를 향해 달려간다. 달리는 중간에 이탈하는 사람은 과감하게 제거한다.
사장은 회사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없이 많은 이해 관계자 집단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연마하고 고민한다. 그래서 사장은 항상 외롭고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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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4. 왜 기업은 망하는가? - 또 수정하라고? 25개의 버전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말을 잘해서 천냥 빚을 갚을지는 몰라도 당신의 조직에서 말로만 일할 수는 없다. 당신의 상사는 말 대신 보고서를 원할 것이다. 일을 잘해도 보고를 못 하면 소용없다. 멋진 아이디어가 있어서 실행에 옮기려 해도 보고서를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예산을 받을 수 없다. 구두로 전하는 업무 보고 때문에 누군가 당신의 공을 가로챌 수도 있다. 상사는 업무 보고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당신을 평가한다.
상사는 당신의 보고서를 통해 인사고과를 매길 것이다. 같은 일이라도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깎아 먹는다. 보고서를 잘 쓴다는 건 가장 기본적인 업무 능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당신은 어떤가? 혹시 당신의 보고서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난무하고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담겨있지 않은가? 보고서, 이것만 알면 쉽다. 5가지 비결만 지켜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보고서를 작성한다. 보고서는 자신의 얼굴이며, 의사결정의 최종 수단이다. 오죽하면 가장 존경받는 상사는 한번에 CEO에게 결재를 받아오는 분이라고 하겠는가?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 입장에서 보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한두 번도 아니고 열 번 이상 고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처음 한두 번은 “그래, 내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어. 어~ 오탈자네. 죄송합니다” 하며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앞뒤를 바꾸거나, 같은 내용인데 단어를 바꾸고, 결정을 미루다가 이 틀로 해 봐라, 안을 3개 정도 만들어 봐라, 장단점을 분석해라,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나, 일정을 수정해라 등등 수많은 지시를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가 있다. 물론 상사도 신이 아닌 이상, 그 순간에 생각나기도 한다.
직원 입장에서 보면, 고친 횟수가 10회가 넘어가면 포기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해도 고칠 것인데, 굳이 잘해가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지시한 것만 고쳐가다가 또 수정하면 고쳐준다고 생각한다. 심한 경우, 고치고 고친 결과가 25버전까지 가다 보면 처음 작성한 보고서와 유사해지기도 한다. 이러면 담당자가 부서장을 신뢰하겠는가? 내가 부서장이 되면 죽어도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 위의 상사에게 몇 번 당하다 보면, 똑같아진다. 자꾸 상사의 예상 질문에 대한 쓸데없는 자료까지 작성하라고 지시하게 된다. 이러다 보면, 직원들이 짜증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사례1. 이 전무의 미숙한 의사결정
구 과장이 A 과제에 투입된 것은 벌써 6개월이다. 중장기 과제로 추진되는 이 과제는 회사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추진하는 대형 과제이다. 과제 책임은 전략의 이 전무가 총괄하였다. 업무 추진은 이 전무의 지시에 따라 회사 전문가 6명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면 이 전무가 방향을 제시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전무는 업계 초일류 기업들의 자료를 요구하였고, 분야별 전문가들은 회사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자료가 수집되고 분석되길 요구했다. 이 전무는 Catch up(따라잡기)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매출과 이익에서 천문학적인 차이를 보이는 세계 초일류 경쟁업체의 자료를 수집하여 비교하라는 요구가 거셌다. 어렵게 자료를 구해 비교하려고 보니,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 사업의 규모나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위 등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사업, 재무, 인사, 영업, 구매 전략은 글로벌 시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 전무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지시를 내려 그룹이 수동적으로 변하자 그룹을 둘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김 과장에게 일을 담당하게 했다. 다른 그룹은 구 과장에게 책임을 맡겼다. 동일한 내용의 과제를 양 그룹에 시켰다. 양 그룹장이 방향을 잡아 보고를 해오면 항상 ‘사장님 지시사항’이라며, 다른 방향으로 해오라고 했다. 어렵게 보고서를 올리면, 무엇이 빠졌다고 재검토를 지시한다. 앞으로 어떤 방향을 가야 할 것인가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등 지시만 내린다. 이러는 사이 세월은 흐르고 두 그룹 구성원 모두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을 후회한다.
사례2. 저는 중학생이 아닙니다
사내에서는 김 부장과 일하면 죽음이라는 말들이 무성하다. 야근은 기본이고 일요일에 나와 보고서 수정을 한다고 한다.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은 좋으나, 우유부단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이 과장이 김 부장과 일을 하게 된 것은 2주 전이다. 영업현장에서 좋은 성과를 창출하여 본사 기획부서로 스카우트되었다. 이 과장은 오랜 현장 생활 때문에 기획력이 부족하다고 주위 동료에게 말하고 협조를 부탁하였다. 김 부장은 이 과장에게 A 프로젝트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이 과장은 과거 자료, 주위의 도움을 통해 보고서를 작성해 갔다. 배경-현황-추진방안-기대성과-향후 일정 순이었다. 김 부장은 배경-기대성과-현황-추진방안-향후 일정 순으로 작성해 오라고 했다. 이 과장이 수정해 오니, 경쟁사 사례를 담으라고 한다. 어렵게 경쟁사 자료를 입수하여 포함하니, 현황 자료를 3개년 실적 분석을 포함하라고 한다. 수정하니, 추진방안을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생각해 차별성을 가져보라고 한다. 그 후로 몇 번의 보고가 끝난 후, 문장을 바꾸고, 오탈자를 수정하고, 다시 새로운 자료를 포함하였다. 주위 동료들이 처음 시작한 것이 버전 1이라면 최소 버전 20은 간다고 해서 과장해서 말한다고 생각했다. 이 과장은 보고서 끝에 버전을 명시했다. 오늘 가져가는 보고서는 버전 25이다. 처음 지시받은 날로부터 15일, 보고 시작한 지 5일만의 일이다. 이 과장은 수정분을 가져갔다. 꼼꼼하게 보고서를 살피던 김 부장은 문장 2~3개의 위치를 바꾸며, 예상 질문 5가지를 만들어 가져오라고 한다.
이 과장은 김부장에게 ‘25이며, 저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덧붙여 중학생 수준의 일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 앉았다. 상사에게 화를 낸 것은 큰 잘못이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영업에서 활기 치던 지난날들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이 과장은 부서 이동 요청서를 작성한다.어떻게 한 번의 보고서 작성으로 승인받을 수 있을까? 앞서 가는 회사의 공통점은 보고서가 1매라는 점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목적, 기대효과, 추진방법, 기한, 담당자 정도의 수준이다. 이 일을 왜 하며, 얻고자 하는 결과가 분명하며, 언제까지 누가 하느냐가 명확하다. 보고서 중에서 수정해야 할 사항도 적어
진다. 한 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설명이 필요 없다. 만약 상세한 설명이 필요할 때에는 품의서가 아닌 보통 자료를 가지고 설명하면 된다. 보고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5가지 비결을 제시한다.
비결 1 ▶ 제대로 지시를 받아라
지시를 잘 받기 위해서는 첫째, 지시사항을 끝까지 듣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사가 이야기하는데, 중간에 의견을 말하거나 끼어들면 자칫 지시가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지시가 끝난 다음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물어봐야 한다. 셋째, 요점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숫자나 사람 이름과 같은 주요사항은 반드시 메모해야 한다. 기본이지만, 이것부터 잘못되어 불명확한 지시와 수정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결 2 ▶ 보고와 기안을 구분하라
보고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신속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고의 키워드는 현황 중심, 정보 전달, Fact 중심, 실행에 초점이 우선이다. 그러나 기안은 업무 실행 전에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성과가 중요하다. 기안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초점, 의사결정, 논리 중심, 기대 성과에 초점이 우선된다.
비결 3 ▶ 보고의 원칙 숙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보고의 3원칙은 적시성, 간결성, 명확성이다. 아무리 훌륭한 보고서도 기한을 넘기면 의미가 없다. 그만큼 납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그리고 간결함이 없이 장황하다면, 상사는 찡그리게 된다. 마지막, 명확성이 떨어져 숫자와 내용이 명확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보고의 3원칙을 고려하여, 보고자는 충분히 고민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 지난 보고서를 그대로 활용하기보다는 좀 더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고서를 작성하되, 신속한 일정을 가져가는 담당자가 인정받는다.
비결 4 ▶ 보고 Flow를 지켜라
보고의 Flow는 다음 4개 사항에 대해 반드시 담아야 한다.
① 기대 성과물 :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왜 해야 하는가)?
② Scope : 어느 범위까지 다루어야 하는가?
③ 마감기한 : 언제까지 완료할 것인가?
④ 보고 대상 : 최종보고를 누가 받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최종 결재자의 수준, 성격 그리고 의사결정 시 주안점을 두는 부분을 명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보고해야 한다. 보고서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확신을 더 신뢰하는 경영자에게는 화려한 보고서보다 합리적이며 체계적인 열정에 찬 보고가 더 도움된다.
비결 5 ▶ 보고서 구성의 묘를 살려라
모든 보고서는 예뻐야 한다. 그렇다고 내용보다 보고서의 형식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는 구성원의 불만은 없어야 한다. 또한 보고서는 요약의 묘가 필요하다. 결론을 맨 앞에 둔다거나, 각 장마다 맨위에 한두 줄로 결론을 작성하는 등의 세부 요약이 있다면, 경영자의 의사결정 시간을 많이 줄여 줄 것이다. 또한, 문장으로 꽉 채워진 보고서보다는 보고서 형태, 그래프 또는 도표 등으로 시각적 표현을 하면 더 호감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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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5. 왜 기업은 망하는가? - 이 상무, 2등에 안주하다
기죽고 사는 건 싫다. 그 상대가 동료든, 거래처 사람이든, 한번 보고 말 사람이든 심지어는 상사라도 기죽는 건 싫다. '폼 난다'는 건 사전적 의미의 '멋있다'와는 다르다. 1등이 되고, 최고가 되면 멋있지만, 폼 나는 건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는 마음이다. '명확한 목표'는 물론 이러한 목표를 향해 모든 구성원이 목표지향의 행동과 자신감을 갖는 것, 그 준비된 1등 주의를 가져보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정확한 예측과 실행력으로 적어도 하나쯤 누구나 인정해 줄 만한 폼 나는 무언가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서왁를 창출하자. 그것이 곧 삶의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신도, 2등에 안주하지 말고 특화된 장점을 더욱 강화하고 창조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조하는 1등 주의자를 준비하기 바란다.
[사례 1] 김 사장의 고민 : 2등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김 사장은 그룹의 총수로부터 만년 2등에서 1등이 되어 보라는 엄명을 받고 A기업 CEO가 되었다. 김 사장은 20년 넘게 M/S에서 2등을 하고 있는 회사의 근본 이유가 무엇인가 전략팀장을 불러 조사토록 하였다. 1개월이 지나 발표된 보고서는 패배주의에 젖어 있었다. 원인은 무수히 많았으나, 1등이 되기 위한 전략이 없었다. 모든 보고서는 원인도 중요하지만, 대책이 더 중요하다. 전략팀의 보고서에는 추종전략은 있지만, 1등 전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부, 경쟁업체, 나아가 고객마저도 2등 회사가 1등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더 심한 것은 우리가 1등을 하려 하면, 3위 업체가 우리를 뛰어넘기 위해 가격경쟁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수익 악화로 회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김 사장은 계층별 간담회를 실시하였다. 주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1등 기업이 될 수 있는가?’였다. 임원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우려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회사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M/S의 변동은 없었으며, 보이지 않는 선에서 유지됐으며, 이것이 안정 성장의 토대라고 했다. 자칫 우리로부터 경쟁이 시작되면, 1등 기업과 3등 기업의 협공을 받아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 강했다.
부장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협력을 해왔는데, 괜한 경쟁 때문에 관계가 깨지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리급 이하의 대화에서는 우리 회사는 결코 1등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강했다. 전략도 없고 무엇보다 경영층과 관리자들이 이겨야 한다는 의식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만약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상사에게 잘못 보이게 되어 승진은 고사하고 평가에서 하위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인사팀에 지시하여 평가와 보상 그리고 승진제도를 검토해 보라고 했다. 평가는 5단계의 상대평가를 실시하고 있었다. 평가 결과가 보상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했다. 연봉이 8천만 원이 넘는 팀장 레벨에 있어, 가장 높은 등급의 팀장과 가장 낮은 등급 팀장의 금액차이는 불과 200만 원 수준이었다. 승진도 평가와 무관하게 사업부장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아 쓰는 보직 Draft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 사장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2등 주의는 결국 자신의 정년까지는 아무 일 없이 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한가운데 경영층과 관리자가 있었고, 그들의 현실 안주의 생각이 바꾸지 않는 한, 이 회사는 서서히 망해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사례 2] 김 과장의 좌절 : 자네, 가족을 먼저 생각하게
40대 남성 직장인에게 미래의 꿈을 물으면 결례라고 한다. 어느 순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꿈이 사라졌다고 한다. 신입사원 교육을 하면서 직장생활의 꿈이 무엇이냐고 적으라고 하면 대부분 CEO이다. 일부 직장에서 임원까지 하다가 개인 사업을 하겠다는 글을 남기는 사원도 있다. 그들 중 누구도 최대한 정년까지 직장생활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5년만 지나면 외부시장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 직장에서 여러 잡다한 일을 하다 보니 익숙해진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직장에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사라진다. 10년 이상이 되면, 직장인이 되어 버린다. 이미 임원이 되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기에는 이미 시기를 놓쳐버렸다고 스스로 결정해 버린다. 머물 수밖에 없고, 이 직장에서 뼈를 묻는다고 다짐한다.
임원이 아닌 주어진 일을 수행하면서 정년까지 가는 문화가 아닌데 하는 걱정을 한다. 이런 즈음에 미래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답해지기만 한다. 이미 오래전에 경영자가 되겠다는 허황한 꿈은 접었고, 그래 이제 남은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내 자식들이 좋은 대학 들어가고,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입사하여 훌륭한 배우자 만나 행복하게 살도록 지원해 주는 일’이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무리한 도전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도전하다가 실패하면 오래 근무해야 하는 자신의 목표에 차질이 생긴다. 그렇다고 창업으로 눈을 돌릴 수도 없다. 자식교육과 생활비 등으로 저축해 놓은 것이 없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회사뿐이다. 오래 남아야 하기에 그들은 조직의 분위기에 민감하다. 결코, 앞에서 선동하지 않는다. 잘 나가는 경영자, 관리자에게는 철저하게 고개를 숙인다. 동료와 후배 관계에 있어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 유지에 민감하다. 회의, 교육과 공식 행사 등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는 일이 없다.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킬 뿐이다.
어느 날, 김 과장은 복지부동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대학생부터 갈망한 미국에서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자신이 해 보고 싶은 교육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고민 사항이 많아, 선임 선배인 이 부장을 찾아갔다. 이 부장의 첫마디는 “자네, 가족부터 먼저 생각하게”였다. 김 과장은 자신의 나이가 40이며, 아내는 전업주부이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아버지라는 점을 상기했다.
10년 후를 그려본다. 일이 잘 풀리면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세네 개의 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리더십 등의 한 분야에서 주목받는 전문가로 우뚝 서 있을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에서 학위를 받지도 못하고, 전업주부인 아내의 이어지는 잔소리, 아이들은 대학진학의 꿈을 포기했고,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은 벌써 수년 동안 건강이 좋지 않다. 재입사하기에는 나이가 가장 큰 제약요인이다. 월 200만 원 준다는 곳도 많지 않다. 김 과장은 외국대학에서 학위과정을 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용기가 없다. 갈수록 김 과장은 도전도 아이디어도 열정도 없이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는 자신의 모습에 한심스러우면서도 수용해 간다.
왜 1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A기업은 매년 종업원 의식조사를 하고 있다. 최근 김 사장은 고민이 깊다. 회사의 미래 성과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이 최근 2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 치열한 경쟁 그리고 친환경에 따른 영향 등으로 매출과 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이를 반영하듯, 2~3년 후 회사 성과는 작년 15% 하락에 이어 이번 조사에서는 무려 17% 하락하였다. 더 우려되는 점은 팀장과 임원의 인식이 더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재무 상황이 악화되면, 1등이 아닌 기업은 1등에 대한 열정은 급격하게 저하된다. 1위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를 구성원들에게 질문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첫째, 경영층에 대한 불신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경영층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있으면, 위기의 시기라 할지라도 곧 기회가 찾아와 이익을 창출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경영환경이 안 좋은데, 경영층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누군가가 구제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별다른 일을 추진하지 않는다.
둘째, 현재 사업구조에 대한 우려도 큰 몫을 차지한다. 안정적이고 중후 장대의 산업이라면, 이러한 경향은 더 두드러질 수도 있다. 사업구조가 미래지향적이고 고부가가치의 성장사업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전통 제조산업이며 저성장, 저부가가치의 단순사업이 주력이라면, 우려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셋째, 미래 성장동력의 미흡도 큰 원인이다. 구성원들 입장에서 볼 때, 미래 성장동력으로서의 신사업, 신수종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한다고 하지만 가시적 성과가 없고 실패했다는 소리만 들리면 1등에 대한 꿈을 접을 것이다.
넷째, 사업영역의 다각화 부족도 원인이다. 단일 사업 단일 제품이라면, 정부의 보호 또는 규제산업이 아닌 이상, 사업 경쟁력은 매우 떨어지게 된다.
다섯째, 재무성과의 지속적 저하도 1등이 되고자 하는 열정을 식게 만든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매년 매출과 이익이 하락하고 있다면 힘이 솟지 않는다. 물론 회사 현황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기인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재무 성과가 매년 갈수록 하락하고 최근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면 1등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2등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2등 주의의 장점도 있다. 1등이라는 확실한 목표로 구성원들을 한마음 한 방향으로 이끌며 지속적인 노력을 하게 한다. 신시장, 신사업과 관련하여 후발주자로서 선발주자의 시행을 지켜보며 적절한 조치를 통해 위험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틈새시장을 파악하기 쉽다. 2등 주의의 단점은 도전의식의 결여로 목표수준이나 성과의 달성도가 낮아진다. 신시장, 신사업에 안정 지향적 따라가기 의사결정을 한다.
준비된 1등이 되어야 한다
삼성중공업의 해상 Floating Dock의 사례가 있다. 삼성중공업은 건설규제와 부지부족으로 Dock의 추가건설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해상 Dock를 건설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 최초로 해상 부유 Dock 건설을 통하여 작업 공간을 확보하였고,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였다.
준비된 1등이 되어야 한다. 준비된 1등은 첫째, 명확한 목표가 있다. 이러한 목표를 통해 모든 구성원이 목표지향의 행동과 자신감을 갖게 한다. 둘째, 신성장동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구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정확한 예측과 실행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성과를 창출한다. 셋째, 특화된 장점을 더욱 강화해 나간다. 이들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조한다.
글 홍석환 KT&G 변화혁신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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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6. 왜 기업은 망하는가? - 승진하는 사람을 보며 처신을 배우다
매년 12월이면 임원들은 초긴장 상태가 된다. 승진하는 사람도 있지만, 퇴직하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원의 처지에서 보면, 퇴직하는 임원은 공표되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승진하는 임원은 전 직원에게 승진 사실이 공유되기 때문에 누가 신규 임원이 되고, 누가 승진했는지에 대한 사항이 조직문화와 구성원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례 1) 정 상무가 전무가 되다니…
구성원들은 더 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팀장이 임원이 되면, 당연히 될 사람이 됐다고 생각한다. 팀장 중에서도 합리적이며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자신의 결정에는 책임을 지며,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임원이 되면, “회사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들 한다. 넓은 외부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소신을 지키며 자사의 제품을 소개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팀장이 임원이 된다면, 상사의 눈치에 의존하기보다는 성과 중심의 문화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자신의 의사결정이 없고, 상사 눈치 보기에 급급한 사람이 임원이 된다면, 그 조직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정 상무의 별명은 무(無) 대리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장에게서 받은 지시사항을 곧바로 팀장에게 전해주며, 기한에 맞춰 보고하라고 한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입으로 방향을 제시해 주거나, 함께 작성해 보자는 말이 없었다. 오죽하면 징검다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 상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사내 정치다. 임원들의 회식에는 빠진 적이 없다. 특히 회장이 참석하는 모임에 배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직원들 앞에서는 웃음이 없는 정 상무지만, 임원 모임이나 사장과의 미팅에서는 큰 소리로 웃는다. 타 부서 사람들은 “저렇게 호탕한 상사와 함께 근무해서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한다.
또 보고는 철저하게 혼자 담당한다. 무슨 말을 어떻게 전했는지 모른다. 결과에 대한 통보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고를 올리고 2일 정도 지나면 반드시 확인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정 상무는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한다. 무엇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모른다. 결정해야 할 순간이 임박하여 부탁하면, 그 보고서를 다시 가져오라고 한다.
이런 정 상무가 상무 중 가장 빨리 전무로 승진했다. 직원들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이
제 전무가 되었으니, 얼마나 거만하고, 업무 수행하기가 더 어려워질지 고민이 앞선다. 반면에 이번 승진을 계기로 업무만 잘해서는 절대 승진할 수 없다는 문화, 인식을 심어 주었다.
사례 2) 아니 임원이 맞긴 한 건가?
공장은 이번에 공장장으로 승진 발령이 난 엄 전무 때문에 말이 많다. 엄 전무는 부임하자마자 3대 혁신안을 발표했다. 모든 서류는 1페이지로 보고하고, 매일 아침 출근 시간 1시간 전인 8시에 관리자 미팅을 하며, 저녁 회식은 각자 비용으로 한다고 선언하였다.
1페이지가 넘는 서류는 그대로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는 결재를 받으러 온 관리자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며, 1장으로 하라는 말만 던진다.
8시 미팅에서는 온갖 질문이 쏟아진다. 평소 현황을 모르는 관리자에게는 “그것도 모르고 무슨 관리자냐?”는 호통이 이어진다. 직원의 인적 사항은 필수 항목이다. 엄 전무가 어제 김철수 사원을 만났다면, 다음 날 부서장에게 김철수 사원에 대해 묻는다. 엄 전무가 알고 있는 것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인데, 관리자가 이 대답을 하지 못하면 그는 무능한 관리자가 된다. 현장을 방문하여 표어나 사진을 봤다면, 이에 대해 반드시 물어본다. 대답하지 못하면, 역시 현장경영을 못 하는 관리자가 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리자들은 공장장이 어제 어디에 갔고, 누구를 만났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직원들도 자신의 돈으로 저녁을 먹고, 술자리를 가져야 하므로 정(情) 문화가 조직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회사 일로 저녁을 함께해야 하는데, 누구나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어 저녁을 사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 전무는 한 관리자에게 어제 현장에서 일어난 주요 이슈 세 가지를 말하라고 했다. 관리자가 특별한 이슈가 없다고 하자, 생각과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날 이후로 모든 관리자는 일일보고를 받는다. 현장의 주요 분위기와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를 일일 보고서에 적게 하였다. 한 부서에서 이렇게 실시하자, 모든 부서가 이를 따라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모든 부서는 일일보고를 하게 되었다. 휴게실에서 누구든 회사에 관해 이야기하면 일일보고에 기록되었다.
결국, 공장은 급속히 대화가 줄고, 업무에만 몰입하게 되었다. 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고,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한 명 이외에는 절대 만나지 않았다.
1년 후, 엄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공장의 조직문화를 공포 분위기로 만들었지만, 구성원들이 불평불만 없이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고 보고됐기 때문이다. 공장장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바로 실행된다. 안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도 사무실에 들어가 못다 한 일을 보고했는데, 요즘 사원들은 일을 끝내지도 않고 무슨 Work & Life balance를 주장하며 퇴근해 버리는 거냐”며 한심해한다. 자신은 임원이 되기 전에는 휴가라는 것을 가본 적이 없다며, 이를 또 휴가 가는 관리자에게 강조한다. 공장의 구성원들은 업보라고 생각하며, 엄 전무가 다른 조직으로 발령이 나기를 속으로 기원하고 있다.
사례 3) 이번 CEO가 지나면 다음 CEO에게 승부하면 되거든
매년 임원인사가 있으면, 희비가 엇갈린다. 잘나가던 김 전무가 한순간에 한직으로 물러나고, 한직에 있던 이 전무가 핵심부서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있다. 음지에 있었던 이 전무의 라인들이 한 명, 두 명 전략 보직을 차지한다. 자금, 전략, 인사와 기획부서는 어느 순간 이 전무가 전에 근무하던 후배들로 채워지고, 대신 소위 한직이라는 운영부서는 김 전무의 후배들로 배치되었다.
새롭게 CEO가 된 구 사장은 김 전무와는 항상 의견이 맞지 않았다. 김 전무는 구 사장이 부사장으로 있던 전임사장 때, 전략과 재무를 총괄하면서 영업을 총괄하는 구 부사장과 의견충돌이 많았다. 전임사장은 김 전무의 의사결정을 따르는 편이었고, 당시 구 부사장은 묵묵하게 영업실적 올리기에 주력하였다. 생산 공장의 안전사고, 자금부서의 부정들 때문에 전임사장이 물러나고, 구 부사장이 새로운 CEO가 되면서, 김 전무의 부서이동은 누구나 예상했던 결과였다.
1년의 기간이 흐르고, 회사의 경영실적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사 내부에는 외부에서 CEO가 영입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연말이 되자 그룹에서는 대대적인 감사가 이루어졌다. 구 사장의 잘못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병폐가 하나 둘 지적되었다. 이 가운데 금전부정이 밝혀지고, 영업현장에서 거래처와의 부정도 적발되었다. 규모가 상당하였고, 많은 관리자가 연류되어 구 사장은 자발적 사임을 하기에 이르렀다. 조직에는 일찌감치 김 전무가 다시 기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외부에서 온 CEO는 김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기획관리본부장으로 선임하였다. 김 부사장이 승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1년 동안 고생한 자기 후배들을 승진시키고 전략부서로 배치하는 일이었다.
구매전략팀에 배치된 이 팀장은 팀원들이 자신의 지시에 시큰둥하고, 기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명씩 불러 면담을 하면, 죄송하다며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팀 내 최고선임자인 김 부장은 입사 20년이 지났지만, 구매전략팀에 온 지는 2년밖에 되지 않았다.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이 3년이고, 평균 팀장 근속도 2년 남짓이었다. 김 부장마저도 업무에 임하는 열정이 없었다.
그런데 1대 1 면담 과정을 통해 이 팀장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임팀장들이 오게 되면, 성과를 내기 위해 도전적으로 일하는데, 지나고 나면 고생만 할 뿐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 대충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만약 문제가 되면, 팀장이 가거나, 본인이 다른 부서로 옮기면 그뿐이라고 한다. 직무순환이 직무의 전문성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피곤하면 피해버리면 된다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조직장으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고, 똑같은 급여 받으면서 왜 나만 고생하느냐는 정서가 가득 차 있었다.
이 팀장은 회사의 인사제도가 바로 서지 않고는 현장의 이런 정서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인사팀을 찾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담당자는 다 알고 있다고만 한다. 알고는 있지만, 해결방안이 없다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떠한 이유 때문에 안다고 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 팀장은 선임자인 김 부장을 잘 설득하여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글 홍석환 KT&G 변화혁신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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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8. 왜 기업은 망하는가? - 계획은 거창한데 결과가 없다
왜 기업은 망하는가? - 계획은 거창한데 결과가 없다
실적을 기준으로 목표를 설정한다. 심한 경우 3개년 평균 실적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는 사고가 만연하다. 어느 회사가 연평균 10% 성장한다고 하면 그곳은 우리 회사와 다르다고 한다. 목표를 높이는 일은 바보나 하는 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급여가 동결되면 난리가 난다. 물가 인상을 이유로 그 이상 급여 인상을 이야기한다. 또한, 복리후생 축소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식당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자신의 이익에는 민감하고 회사의 목표와 이익에 대해서는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사례 1)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라고?
인사팀 김 부장은 오늘도 각 팀을 돌며 목표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좀 더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해 열정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목표가 낮으면 100%를 달성하더라도 성과의 크기가 작지만,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면 비록 90%만 달성하더라도 낮은 목표를 모두 달성한 것보다 성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각 팀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오히려 우리 회사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팀장에게 좋은 평가를 한 적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낮은 목표라도 상사가 승인한 것이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달성한 사람이 인정받는 것이지, 처음부터 무모하리만큼 높은 목표를 잡고 달성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바보지!”라며 김 팀장이 외부에서 입사해 아직 우리 회사 현실을 모른다고 덧붙인다.
구매팀 이 부장은 매우 적극적이고 의욕이 강한 고참부장이다. 그러나 팀장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그는 매사 일벌이기를 좋아했다. 그룹 구매 통합, 구매 시스템 개발, 구매 선진화 방안 등이 모두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룹 구매 통합은 그룹 전산시스템 구축과 함께 원가절감에 큰 기여를 했지만, 또 하나의 도전과제인 글로벌 구매 전략 보고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애초 3개의 과제 중에 2개를 끝냈다. 지금까지 구매부서가 해오지 못한 2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큰 성과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2개 과제만 성공한 것이다. 작년에도 이 부장은 선진 구매기법을 도입하여 구매 선진화를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해를 넘겨 마무리했다. 다른 팀원들이라면 1년 이상 해야 하는 어려운 프로젝트였음에도 회사는 이런 상황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안정적인 목표 달성이 더욱 중요함을 보여준 사례로 회자된다.
사례 2) 뭐 제대로 끝내 놓은 것이 없잖아?
최 전무의 요즘 심기는 불편하다. 작년 말에 지시한 사안이 해가 바뀌고 4월이 되었는데도 보고서가 올라오지 않는다. 사실 그 보고서는 사장의 지시사항이기 때문에 2월 이전에 실행을 해야 했다. 몇 번이나 빨리 초안이라도 가져오라고 해도 소식이 없다. 담당자를 직접 불러 작업을 지시했건만 아무런 결과가 없다. 최 전무는 결국 전체 관리자 회의를 소집했다. 모든 관리자를 모아 놓고 일의 취지와 기대하는 보고서의 결론을 설명하고 응모를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모두 책상만 바라본다. 정적이 흐른다. 결국 기획팀장이 아무리 늦어도 2주 안으로 보고서를 올리겠다고 한다. 6개월을 기다린 보고서이기에 2주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목차부터 하나 하나 꼼꼼히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회의를 마쳤다.
1주일 후, 30여 페이지의 초안을 들고 기획팀장이 들어왔다. 보고서에는 방향과 전략만 있을 뿐 구체적 방안이 없었다. 그 많은 전략을 다 수행하려면 현재의 재원과 인력으로는 할 수 없는 계획뿐이었다. 최 전무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보고서를 놓고 가라고 했더니 마치 보고를 마쳤다고 생각하는 듯 무엇이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최 전무는 보고서를 하나씩 수정하기 시작했다. 네 시간여를 수정한 후 기획팀장을 불렀다. 처음부터 다시, 자신이 작성한 초안을 기초로 업무를 추진하라고 했다. 지시를 내리면서도 언제까지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사례 3) 계획은 거창한데 결과가 없다
사장의 지시가 있으면 본부장이 팀장에게, 팀장은 곧바로 담당자에게 그대로 업무를 지시한다. 팀장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기대수준은 어떠한지, 어떤 방안을 도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언제까지 하라는 말만 전한다. 이 대리는 A프로젝트를 지시 받아 방향과 전략을 수립했다. 혹시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팀장에게 이런 방향에서 이러한 전략을 도출하면 되겠느냐고 물으니 그대로 하라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팀장이 자료를 달라고 한다. 구체적 방안이 없다고 하니 그냥 달라고 한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 온 팀장은 누가 이렇게 거창하게 계획만 세웠느냐고 질책한다. 하나의 전략이라도 제대로 실행되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그 하나의 전략이 무엇이라는 이야기는 없다. 무조건 다시 하라고 할 뿐. 이 대리는 여러 전략 중에 중요도와 긴급도를 비교한 후 하나의 전략을 선정해 팀장에게 가져갔다. 팀장은 다 해서 가져오라는 한마디만 한다.
이 대리는 구체적 방안까지 마련하고 향후 추진일정까지 보고서에 담았다. 본부장은 누가 이런 전략을 선정했느냐고 역정이다. 겨우 이런 수준의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몇 개월을 낭비했느냐고 한다. 우리 회사는 미래 A사업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도 기존 사업의 틀에서 머물고 있다며 이런 사고를 하니까 매출이 제자리라고 급기야 보고서를 던져 버린다. 이 대리는 자리에 돌아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한다.
사례 4) 쉬운 목표만 설정해라
김 상무의 목소리가 사무실의 정적을 깬다. 순간 모두가 오늘은 또 누구냐는 표정으로 김 상무의 방을 응시한다. 입사 2년 차의 이순진씨다. 김 상무는 “네가 아무리 잘나고 뛰어나다 해도 어떻게 이 목표를 다 달성하느냐? 만약 한다고 해놓고 달성하지 못하면 누구 책임이냐? 책임지지 못할 계획을 세워 너뿐만 아니라 조직에 폐를 줄 생각이냐?”며 혹독하게 질책한다. 이순진씨는 어찌할 바 몰라 말 한마디 못한다. 보기가 안되어 보였는지 이 부장이 들어가 다시 검토하고 보고하겠다고 한다. 김 상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 부장에게 화살을 돌린다. “부장이 되어 후배가 기획을 잘못하면 고쳐줘야지 어떻게 남의 일인 양 내버려 두었느냐? 옛날에는 후배들이 한 일에 대해 선배들이 하나하나 조언해 주고 고쳐줘서 후배들이 일을 올바르게 하도록 했는데 요즘은 관심이 없고 제 일만 챙긴다”고 나무란다. 이 부장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순진씨를 데리고 나온다.
순진씨는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는 더욱 부가가치가 높은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보다는 보다 큰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 일에 몰입하고 싶었다. 그가 제안한 것은 메가 프로젝트로서 최소 2~3명이 1년간 집중해야 할 2개의 대형 도전과제였다. 이러한 과제를 해낼 때 회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뿌듯한 기대를 안고 올해 목표로 잡은 것이다. 목표설정부터 전략과제까지 명시하고 1년의 2/3를 이곳에 매진하겠다고 했으며, 지원도 요청했다. 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대리급으로 1명의 멤버를 지원해 준다면 8월까지는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제안을 김 상무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네가 무슨 능력으로 이 일을 다하겠다고 하느냐”는 핀잔과 함께 말이다.
이 부장은 이순진씨에게 쉬운 목표를 설정하라고 조언한다. 회사는 어려운 도전목표를 설정하여 성공하면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실패하면 그 책임을 묻고 성과평가 최하위가 된다고 한다. 쉬운 목표를 120% 달성하면 최고 평가인 S등급을 받게 되지만 도전과제를 목표로 해 90% 달성하면 최하 등급인 D등급을 받게 된다고 한다. 회사에 미치는 성과는 후자가 훨씬 크지만 목표 달성을 못 했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쉬운 목표를 설정해서 적당히 높게 성과를 내라고 한다.
또한, 조직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조직이 목표를 100% 달성하면 B등급을 받지만 110% 달성하면 A등급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몇 % 달성이라고 한다. 왜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경험에서 나오는 소중한 이야기이니 잘 간직해 들으라고 조언한다. 순진씨는 김 상무로부터 왜 질책을 받게 되었는지 이유는 알게 되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자랑스럽고 성취감을 느낄 만큼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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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9. 왜 기업은 망하는가? - 좋은 것이 좋은 거야, 보상은공평하게!
A기업으로부터 조직 문화를 평가하고, 중장기 문화구축방안을 수립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50년 전통의 제조업으로 급여와 복리후생 조건이 매우 좋았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평생직장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초기, 여러 집단과 인터뷰를 실시했다. 그런데 경력사원들과의 집단 인터뷰 결과가 시선을 잡았다. 3~5년차 경력사원 15명은 전 직장과 비교한 현 회사의 특성을 ‘좋은 것이 좋은 거야’, ‘하던 대로’, ‘시키는 대로’, ‘알아서 해’, ‘우리끼리만’ 5개로 요약했다. 오랜 안정적 성장과 문화로 외부인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업무적인 것은 물론 직원까지도. 좋은 것은 ‘우리끼리만’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기업은 망하는가? 조직 문화를 들여다 보면 답이 보인다.
[사례 1] 김 과장, 좋은 것이 좋은 거야
김 과장은 회의 때만 되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왜 그것을 해야 하느냐, 그것을 통해 얻고자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게 그의 질문이다. 그에게 타협이라고는 없다.
이러한 김 과장에게 영업 업무가 부여됐다. 매출과 M/S 목표가 부여되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목표를 달성하라는 일방적 지시가 떨어졌다. 영업이 처음인 김 과장은 점주들을 찾아 다니며 자기소개를 하고, 제품 판매를 시도했다. 그러나 점주들은 전혀 움직임이 없다. 본부장은 매일 지점의 실적을 체크하며, 가장 낮은 목표를 달성한 지점장에게는 공식석상에서 질책을 했다. 김 과장이 속한 지점은 항상 하위권이었고, 그 중에서도 김 과장의 실적이 가장 낮았다. 지점장은 김 과장을 불러 실적 부진의 이유와 개선 방안에 대해 A4 한 장씩 작성하고 퇴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김 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으면 실행하지 않는 성격도 문제가 됐다.
결국 김 과장은 지점장에게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의견을 물었다. 지점장은 김 과장을 데리고 점주 의장인 조사장을 만나 저녁을 함께 했다. 김 과장을 소개 한 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부탁한다며 봉투를 건넸다. 다음 날 지점장은 김 과장에게 다섯 곳의 대형 점주를 찾아가 준비된 선물을 주고 정중하게 인사, 처신하라는 조언을 했다. 김 과장은 이러한 행동은 정도경영에 어긋날 뿐 아니라 회사 경비로 개인적 관계를 맺는 것은 잘못된 조치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어제의 일도 꺼내며 이 부분은 정도경영팀에 이야기하여 시정토록 하겠다고 했다.
지점장은 잠시 넋이 나간 모습으로 가만히 김 과장을 응시했다. 누구를 위해 이런 행동을 했는데 철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지점장은 김 과장에게 다 너를 위한 일이고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한 일이라며 설명한 후, 조언한다. “너무 튀지 마라. 좋은 것이 좋은 거다.”
[사례2] 말로만 외치는 성과주의
90년 초부터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라는 말처럼, 조직과 개인의 성과 차이가 심해졌다. 연봉제가 도입되고, 성과급이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되었다. 동일 회사의 같은 직급이지만, 성과가 높은 조직과 개인의 성과가 낮은 조직과 개인에 비해 연봉 2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A회사의 임직원들은 “우리 모두가 똑똑해서 입사했고, 파이를 키워 나눌 생각을 해야지 왜 조그만 파이를 놓고 누구는 더 주고 누구는 덜 주려고 하느냐?”며 성과 차등을 심하게 반대했고, 연공에 따른 호봉인상을 주장했다. 이 회사의 임원들도 직위가 같으면 동일한 급여를 받는다. 아무리 성과가 높은 임원이라 하더라도, 연봉을 더 받는 경우가 없다. 성과가 낮은 최하위의 임원도 동일한 금액을 받는다. 이들은 내가 근무하는 동안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없다.
또 “후배를 위해, 회사가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해야 하며, 임원인 자신이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정작 후배에게 업무를 가르쳐 주고,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평가와 보상제도의 변경에는 무관심이다.
[사례3] 왜 야근을 해요? 성과 높다고 더 받는 것도 아닌데
A기업에서 감사업무를 하다가, B회사의 감사팀장이 된 김 팀장은 평소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면 높은 성과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 팀장은 업무 영역을 직원의 부정행위에 대한 적발 감사, 사전 예방 감사, 그리고 조직을 진단해 컨설팅 해주는 조직 진단 감사로 나누었다. 그리고 팀의 고참인 이 부장은 예방 감사를, 미국 MBA출신인 한 대리와 감사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김 과장에게는 조직 진단 감사 업무를 수행하도록 업무 분장을 했다. 또 이 부장에게는 팀의 중장기 전략과 호칭 변경 작업을 지시했고, 한 대리에게는 진단 모델과 점검 양식을 작성하라고 요청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건만 이 부장과 한 대리에게서 그 어떤 보고가 없다. 김 팀장은 이 부장을 불러 진행 상황을 물었다. 타기업 자료를 조사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대리 역시 아직 목차도 잡지 못했다고 한다. 서둘러 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매일 오후 여섯 시만 되면 퇴근을 한다.
한 대리와 먼저 면담을 했다. 조직 진단이 얼마나 중요하며 한 대리가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한 대리는 “왜 팀장님은 위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느냐? 새로운 일을 해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부장과의 면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부장은 “왜 야근을 하느냐? 우리 회사는 현 업무가 2~3개월 늦어진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 야근을 하라면 하겠지만 야근 수당도 없고 밤새워 일해도 급여가 똑같은데 불필요하게 야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B회사는 성과 평가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최고등급인 S와 최하등급인 D의 급여 차이는 연봉 8천 만원인 팀장 계층 기준으로 겨우 100만원도 되지 않는다. 직원들은 이렇게 적은 금액의 차이에도 불만이 많다. 때문에 ‘야근을 하고 성과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성과가 높다고 더 받는 것도 아닌데’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글 홍석환 KT&G 변화혁신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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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10. 왜 기업은 망하는가? - 봤다는 것이지 책임진다는 말이 아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경영자로 생활하는 시간보다는 경영자를 모시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아랫사람 입장에서 가장 존경하는 상사는 어떠한 일이라도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해주며, 최고경영자에게 승인을 얻어 추진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품성이 어질고 실수를 너그럽게 용인해 주는 상사라 할지라도 의사결정이 늦거나(혹은 잘못하거나) 최고경영자에게 주눅이 들어 결재를 받아 주지 못하면 담당자는 매우 힘들게 된다. 이번 호에서는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담당자로서 업무를 하다 보면, 보고 및 의사결정에 있어 다음과 같은 현실을 종종 접한다.
1) 중요한 안건일수록 단독 보고해라.
2) 전결규정, 웃기지마. 사소한 것도 보고해.
3) 잘된 것과 내용을 보다 예쁘게 포장해 보고해라.
4) 보고서는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
5) 세상에, 하나의 보고에 버전이 25개.
6) 또 수정하라고? 언제 실행하라고.
7) 3개의 대안에 장단점을 분석하여 최적안을 제시해라.
8) 담당자가 다 하는 거야. 나는 담당자일 때 상사를 피곤하게 안 했다.
9)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야지 왜 그래.
10) 내가 승인했어? 참고하라고 준 것 아냐?
위의 모든 경우, 담당자는 죽을 지경이 된다. 망하는 기업의 경영자는 의사결정에 있어 허점이 많다. 대부분은 멀리 보지 못하고 단기 실적에 밝고 사소한 사항에 세심하다. 더 심한 경우는 무책임한 경영자이다.
[사례 1] 중요한 안건일수록 단독 보고해라
이 전무는 아래 팀장에게 업무 담당자와 함께 보고하라고 늘 강조한다. 담당자와 함께 보고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신속해지며 불명확한 지시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보고할 때는 항상 혼자이다. CEO도 경영회의에서 여러 번 담당 팀장과 배석하라고 했지만, 보고는 자신의 역할이라고 고집한다.
이 전무는 CEO 보고 후 팀장을 불러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 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그제야 승인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보고서를 다시 한 부 출력해 달라고 하거나 어디에 놓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 보니, 보고서는 종종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 보고서의 결론이 달라지면 이 전무는 팀장을 질책한다. 그러면서도 주제와 기간만 말할 뿐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고심하고 프로세스를 만들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팀의 몫이다. 보고서에 대해 CEO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하면, 한참을 가지고 있다가 자신의 생각인양 수정을 지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문제점과 장애요인을 제시해도 일단 작성하라고 막무가내이다.
[사례 2] 나는 실무자이지 전략가가 아닙니다
구성원 의식조사 결과, 임직원의 스트레스 정도가 높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작년에 비해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영위원회에서는 결과가 심각하다며 경영지원본부에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김 상무는 인사팀 조 과장을 불러 구성원 의식조사 결과와 관련하여 안을 만들어 일주일 내에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조 과장은 조사를 실시한 전략홍보팀장을 만나 문항과 부서, 직급별 응답률을 확인하고, 타 조직에 비해 현격하게 차이가 있는 두 조직과 가장 응답률이 낮은 대리 계층 10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인터뷰 결과 원칙 없는 정책, 눈치보기식 야근, 결론 없는 회의, 관계 중심의 관행이 문제였다. 조 과장은 의식조사와 인터뷰 결과 그리고 대응책을 포함하여 세 장 정도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김 상무는 보고서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조사한 내용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한다며 주제인 자부심 감소에만 초점을 맞추라고 했다. 조 과장은 알았다고 말을 하고 자리에 돌아왔지만, 도무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조 과장은 김 상무에게 가서 보고서의 방향 또는 다른 방법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김 상무는 원인을 찾아 대응책을 고민해 작성하면 된다는 원칙적 이야기와 사장님이 질문할 만한 사항을 적고 답변도 생각해 보라고 했다. 조 과장은 원인을 찾기 위해 인터뷰를 하여 원인을 밝혔는데, 다시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김 상무는 조 과장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결국 김 상무에게 아무런 조언을 들을 수 없었다.
[사례 3]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
평소 꼼꼼하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여 고속 승진을 한 김 팀장은 회사 내에서 미래가 촉망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각종 프로젝트가 김 팀장에게 떨어졌지만 단 한 번도 납기를 어긴 적이 없고, 보고서의 내용은 깔끔하였다.
그러나 김 팀장이 속한 부서의 팀원들은 표정이 밝지 않다. 다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출근하는 모습이다. 책상에 앉아있는 그들에게 활기는 찾아 볼 수 없다. 반면 김 팀장은 매일 야근이다. 모든 보고서를 일일이 김 팀장이 점검하고 꼼꼼히 수정한다.
김 팀장은 어수선하게 정리되지 않은 팀을 성실히 일하는 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업무 분장을 새롭게 하고, 주어진 업무의 납기와 보고서의 수준을 제시해 주었다. 보고서의 수준이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하나하나 지적하여 수정을 요구했다. 팀원 중에 수정을 지시 받았지만 다른 내용을 고민해 보고하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이 지시한 사항으로 수정해 오라고 역정을 냈다. 이런 상황이 항상 발생하다 보니, 자율과 창의의 팀 문화는 사라지고, 시키는 일만 하는 팀으로 전락하였다.
[사례 4] 봤다는 것이지 책임진다는 말이 아니다
A본부장인 전 부사장은 대표이사에게 보고할 사안이 아니면 절대 결재를 하지 않는다. 구두 보고를 받고 알았다고만 한다. 대부분의 본부 관리자들은 본부장이 알았다고 하면 승인된 것으로 알고 일을 추진한다. 다른 부서에 업무협조를 받아야 할 경우에는 승인된 보고서가 없기 때문에 메일이나 직접 찾아가 협조를 구한다. 꼭 결재된 보고서가 필요한 경우, 팀장의 전결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전달해 준다. 이 팀장도 본부장에게 보고 후, 자신의 전결로 타 부서와 외부에 업무협조를 보냈다.
3개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추진되는 A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김 부장은 이 팀장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추진하다가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이해관계가 상이하다 보니, 결정된 내용이 당초 약속과 다르다며 한 업체가 일방적으로 결정에 따를 수 없다며 공사를 중지하였다. 김 부장도 이 팀장에게 당초와는 다르게 결정되어 내려온 결정사항에 의문이 있었지만, 본부장 지시사항이라는 말에 그냥 넘어갔던 사안이었다. 김 부장은 이 팀장에게 현장 상황을 보고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었다.
이 팀장은 자신이 검토한 보고서를 들고 본부장을 찾아 갔다. 당초 김 부장이 제시한 2안 대신 이 팀장이 판단하여 작성한 1안으로 했을 때 장점이 많아 수정한 보고 내용의 추진 과정에서 업체의 반발로 현재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설명했다. 전 부사장은 내가 승인한 사안이 아니며 이 팀장이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한 사안인 만큼 현장에 내려가 잘 수습하라고 한다. 이 팀장은 사안이 중요하고 시급한 만큼 본부장님이 내려가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전 부사장은 그 사안은 이 팀장의 책임 하에 이루어진 만큼, 결정의 모든 책임은 이 팀장에게 있으니 잘 해결하라고 한다. 보고서의 내용을 봤을 뿐 승인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글 홍석환 KT&G 변화혁신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