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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조직활성화 교육은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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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강의로 현대인을 ‘힐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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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 및 근로복지 분야 최고의 HRD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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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여성으로서의 대처, 그리고 대처리즘이라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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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중소기업 근로자 직업훈련 지원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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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1. 국가미래전략을 수립한 광개토대왕의 창의적 리더십
이야기 시작은 멀리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서 삼국통일의 군주 김춘추, 국토재통일의 지혜로운 명군 왕건, 조선왕조의 설계사 정도전을 넘어 한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손꼽히는 세종과 정열의 성리학 지상주의자 조광조로 이어진다. 역사상의 탁월한 지도자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우리의 역사적 산책길은 풍운의 구한말을 거쳐 현대사를 주름잡은 박정희와 민주적 리더십의 가능성을 보여준 노무현 대통령에까지 뻗친다.
이 글은 한국역사 속의 다양한 리더십을 깊이 통찰하는데 목적이 있다. 우선 역사적 사례들을 이해하기 위해 간략하게나마 리더십의 개념과 종류 및 내용을 정리해보자.
리더십(leadership)이란 무엇인가
원래 ‘리더십’은 정치학과 사회학의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영학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논의되면서 대형서점마다 ‘리더십 코너’가 설치되었을 정도다. 한 마디로 말해, 리더십이란 어떤 조직 내에서 특정인물이 조직의 목적을 위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능력 또는 기술이다.
스토그딜(Ralph Melvin Stogdill)은 리더의 자격을 5가지라고 주장했다. 지능이나 판단력과 같은 능력, 체력과 경험 따위의 소양, 신뢰?인내력을 골자로 하는 책임감, 활동성과 사교성으로 대표되는 태도, 인기와 사회적 영향력 등으로 나타나는 지위가 그것이다. 다양한 조건 가운데서도 특히 공정성과 성실성을 통해 얻어지는 신뢰감이야말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리더십은 종류도 다양하다. 학자마다 범주의 설정이 다르지만 레빈(Kurt Lewin)은 그것을 3가지로 구별하였다. 즉, 전제적, 민주적, 자유방임의 리더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조직의 목표달성이다. 이것은 조직 구성원들이 각자의 목표를 조직의 목표를 일치시킬 때 가능하다. 둘째, 자원의 동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인적·물적 자원과 상징적 수단을 적절히 배분하여 충족감을 느끼게 해야 달성되는 목표다. 셋째, 조직 활동의 통제·통합·조정도 역시 리더십에 속한다.
리더십에 관한 이론은 날로 폭과 깊이를 더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이 처한 문화적 여건 또는 다양한 상황이 리더십의 해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는 서구의 이론적 이해를 중시하면서도 한국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리더십을 더욱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것이 한국적 리더십 연구로 발전을 거듭하게 해야 한다. 회수(淮水) 이북에서는 탱자라도 회수 이남에서는 귤이 되는 법이다. 역사와 문화적 풍토를 무시한 일방적 수용은 실질적인 통찰과는 거리가 있다.
국가미래전략을 수립한 광개토대왕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374~412, 재위 391∼412)이라면 다들 ‘왕 중의 왕’이라 생각한다. 그는 생전에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불렸다. '영락(永樂)'은 고구려 최초의 연호였다. 이런 연호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왕 자신이 스스로를 중국의 천자와 동격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18살 젊은 나이에 즉위한 광개토대왕은 오랜 정복전쟁을 수행해, 드넓은 영토를 개척하였다(64성 1400촌). 그리하여 당시 고구려의 국경선은 북으로 연 나라, 남으로 백제와 마주하였다. 바다 건너 일본도 고구려의 국력에 풀이 죽었다. 북방의 숙신과 동부여도 그 위력에 떨었다. 광개토대왕 이룩한 고구려의 영광은 이른바 광개토대왕비에 비문으로 남았다. 39세로 일생을 마감한, 단명했던 이 영웅의 위업은 알렉산더 대왕과 견줄만하다.
“왕의 은혜는 하늘에까지 닿았고, 그 위엄은 온 세상에 떨쳤다. 악한 무리를 제거하여 온 백성이 생업에 힘쓰며 평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가 부강해졌으며, 모든 곡식이 잘 여물었다.” (‘광개토대왕비문’ 중에서)
어느 역사가의 말처럼, 한 구절도 치밀하게 역학관계를 계산하지 않은 구석이 없는 명문장의 비문이다. 아들 장수왕이 재위 3년(414년)에 건립한 그 비석은 높이가 6.39미터나 된다. 덕분에 우리는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여기서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낱낱이 열거하고 분석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필자가 할 일은 왕이 남긴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따져보고, 그러한 업적을 이룬 리더십의 실체를 탐색하는 것이다. 광개토대왕이 만주 또는 북중국에서 거둔 승리는 물론 값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귀중한 것은 왕이 국가경영의 중점을 한반도 내부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국가전략에 있어 엄청난 지각변동을 의미했다.
고구려를 잉태한 만주지방은 기후가 한랭한 북부지방이다. 자연히 농업생산성이 낮아 국가발전의 가능성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물론 서남쪽으로 진출하면 건조한 북중국 평원에 이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온난하고 비옥한 한반도 남부지방에 비하면 여건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의 북중국 및 만주지방에는 고구려의 지배층과는 혈통과 문화를 달리하는 여러 종족들이 뒤섞여 살았다. 그런 점에서 보아도 말이 통하고, 그 당시로서는 가장 귀한 곡식인 벼가 재배되는 한반도 중부 이남으로의 진출은 고구려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는데, 광개토대왕은 바로 그 길을 선택하였다.
한반도 진출을 국운개척의 임무로 인식한 광개토대왕은, 당시 한반도의 최강자였던 백제와 싸워 한강이북의 영토를 상당부분 차지하였다. 따지고 보면 광개토대왕이란 영예로운 칭호도 그가 백제의 땅을 많이 빼앗은 데서 유래하였다. 고구려 역사상 최초로 왕은 평양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여 신도시 개발을 시작하였다. 그 아들 장수왕이 평양으로 고구려의 도읍을 옮길 수 있게 된 데는 아버지의 뜻이 작용하였다.
영토의 크기에 연연하는 후세 사람들은 광개토대왕이 국가의 장래를 드넓은 만주 벌판이 아니라, 비교적 협소한 한반도 내부에서 개척하려 했다는 사실을 아쉬워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편파적이고 다분히 현재적인 시각이다. 당시로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든 또는 문화적으로 보더라도 한반도를 선택하는 편이 고구려의 안정과 성장에 유리하였다.
마침 광개토대왕의 시대에는 여러 북방민족이 융흥하여 이른바 5호 16국의 시대가 전개되었다. 그들 가운데서도 특히 위나라와 연나라는 매우 강력한 국가였다. 그들은 고구려가 중국 쪽으로 진출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당시의 고구려는 이를테면 다종족 국가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고구려의 지배층은 우리민족이었지만, 북방의 여러 유목민족들도 엄연히 고구려의 일부였다. 따라서 그들 여러 종족과 지속적으로 강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이 고구려의 국가발전에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광개토대왕의 성공요인은 ‘창의적 리더십’
필자가 보기에 광개토대왕의 성공에는 몇 가지 전략이 주효하였다.
첫째는 왕이 고구려인들의 자부심에 호소했다는 점이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천제의 아들’이라고 명백히 주장하였다. 이로써 그 자신도 신성한 혈통임을 내세웠다. 이러한 역사의식을 굳건히 하려고 광개토대왕은 선대의 모든 왕릉에 비석을 새로 세웠다. 또한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들을 일일이 임명하고 비석에 기록해 두었다.
둘째, 수묘인들은 고구려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고구려의 지배를 받는 여러 종족들 가운데서 고루 차출되었다. 이로써 고구려 중심의 새로운 천하관이 동북아에서 기정사실로 간주되었다. 고구려는 말갈이나 숙신은 물론 동예, 동부여, 백제 및 신라도 지배한다는 의식이 보편화 될 수 있었다.
셋째, 왕은 능란한 외교전술을 구사하였다. 막강한 군사력을 무기삼아 남북 중국의 여러 나라와 강온양면의 외교를 펼쳤다. 한반도에서도 신라를 도와서 백제와 그 동맹국인 왜를 집중 공략하였다.
넷째, 내치에도 힘써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새로운 전략요충인 평양성 개발에 노력했다.
요컨대 광개토대왕은 철의 정복군주만이 아니었다. 그는 다종족 국가였던 고구려의 결속을 위해 효율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국가의 미래를 온난 비옥한 한반도를 무대로 개척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의 정치적 식견은 넓었다. 그리하여 고구려의 문제를 동북아시아의 총체적인 틀 속에서 통찰할 줄 알았다. 다양한 외교 전략이 가능하였던 이유가 그것이다. 광개토대왕은 굳센 의지와 결단력의 소유자였음은 물론, 역사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창의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5세기에 빛난 고구려의 찬란한 영광은 광개토대왕의 이러한 리더십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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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익] 진정한 소통으로 모두를 껴안는 길을 제시하다
세상에 다시없는 괴팍한 성격을 지닌 소설가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화려해 보이는 대도시의 삶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의 소통과 화해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철저히 개인주의화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관계에 있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
영화의 주된 무대는 미국의 대도시 뉴욕이다. 이 같은 거대한 도시를 지배하는 관계의 특성은 ‘단절’이다. 사람들은 모두 철저히 계획된 공간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만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이 단절된 도시를 대표하는 인물이 곧 영화의 주인공인 멜빈 유달이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결벽증을 지닌 멜빈은 내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의 관계를 확장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려는 인물이다.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이지만 일상에서는 전혀 로맨틱하지 못하는 멜빈은 바로 극도의 개인주의로 무장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단면이기도 하다.
멜빈씨, 캐롤양을 만나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이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타인과 벽을 쌓아가려는 사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치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철저히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었던 멜빈은 웨이트리스 캐롤을 만난 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캐롤은 멜빈과는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천식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에 자신의 삶을 누릴 여유는 없지만 강인한 생활력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여성이다.
멜빈은 좁은 세계에 갇혀서 살았던 삶이 얼마나 편협하고 불행했었는지를 캐롤에게 기우는 애정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즉, 타인에 대한 애정을 경험하면서 내가 아닌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다. 세상과 인간을 적대했던 멜린의 마음이 캐롤에 대한 연심을 통해 조금씩 풀려나가자, 그는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까지 애정을 쏟기 시작한다.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사이먼의 개 버델을 대신 길러주는가 하면, 게이라고 무시하던 사이먼과 우정을 나눈다.
관계 맺기의 기본은 타인을 인정하는 것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세 주인공 멜빈, 캐롤, 사이먼은 모두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캐롤 역시 생존을 위해 힘든 노동을 해야 하고 천식을 앓는 아들을 돌보는 그녀의 환경 또한 불우하다. 사이먼 또한 ‘게이’라는 성적 소수자의 정체성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이처럼 동병상련 처지에 놓인 세 사람이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소통하였기에 가능하였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단절된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들의 관계가 진전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소통과 이해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세 주인공들은 각자 특수한 상황에서 힘겨워하는 서로를 향해 소통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서로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였을 때, 그들은 각자의 섬에서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혼자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외로운 섬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으려는 소통이 없었다면 영화 속 주인공들은 외롭고 소외된 삶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조직사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사람들의 외모가 제각기 다르듯이, 성격과 가치관 또한 다를 수 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또 다른 이에게는 엄청난 짐이 될 수 있다. 멜빈과 캐롤의 관계는 이 같은 관계의 상대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캐롤은 만인에게 친절하고 호감을 주는 상냥한 여성이지만, 멜빈은 사람들에게 혐오와 미움이 가득한 비호감형 인물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며, 부족함을 채워주고, 진정한 소통에 이뤄냈다.
둥근 못을 네모난 구멍에 넣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둥근 못이 튕겨져 나가거나, 네모난 구멍이 찢어질 것이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생각에 억지로 맞추려 하면, 당연히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각각의 고유한 섬을 지니고 있다. 그 섬을 인정하며 침범하기보다는 다리를 이어주는 소통이 먼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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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대] 인재관리와 다양성, 글로벌 인재양성을 현안으로
박용대 전무는 해외영업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나,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바이엘코리아에 입사한 후 직무분석 및 평가, 조직 설계 업무를 담당하면서 HR 분야에 첫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HR 업무를 시작하면서 참가하게 된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해 무한 매력을 느끼게 되어 글로벌 프로그램을 한국화하고, 교육하는 글로벌 트레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게임, 케이스 스터디로 교육 효과 높여
HR전문가로서의 삶을 살게 해준 계기가 됐던 리더십 프로그램의 내용은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협력, 갈등관리 등 관리기술에 관한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십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발휘되며, 커뮤니케이션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프로그램 속 평범한 진리가 박 전무의 마음에 의미 깊게 다가와, 그 이후에도 그의 HRD에 대한 관점, 인생의 가치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HR 직무를 소명으로 여기고 실행하는데 큰 기반이 됐다.
또한, 이 리더십 프로그램 중에는 게임,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진실과 거짓이 신뢰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체득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시간은 깊게 자신을 돌아보고 가치관이 변화했던 계기가 됐다. 박 전무가 많은 교육에서 게임, 케이스 스터디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났던 것처럼 교육생들에게도 변화를 이끌어주고 싶어서다. 박 전무의 이러한 강의기법은 교육생들뿐만 아니라 박 전무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 번은 아시아의 사업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전략적 판매 교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전략적 판매에 대한 고도의 전문적 내용, 국가별 특성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 등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 참가자들이 서로 토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함으로써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교육생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박 전무는 교육 참가자들이 모두 코치라고 말한다. 한 주제에 대해 화두를 던지면, 교육 참가자들이 각자의 생각을 말하며 자연스럽게 토론하게 돼 서로를 코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전무 역시 “강의자는 그들이 코칭을 잘할 수 있도록 팁을 제공하고, 어떻게 코칭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며 교육진행자 역시 단순 강의자의 역할이 아닌 퍼실리테이터, 코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재관리(Talent management)와 다양성(Diversity)을 현안으로
바이엘 크롭사이언스의 HR은 인재를 어떻게 선발, 검증, 개발, 보유하여 사업의 성공에 이바지할 것인가, 즉 Talent Management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Talent Management를 위한 HRD 프로그램으로는 커리어패스맵(Career Pathmap)과 트레이닝로드맵(Training Roadmap) 등이 있다. 각자가 커리어개발을 위한 커리어패스맵을 그리고, 이에 따른 단계별? 맞춤형 교육시행 계획이 트레이닝로드맵이다. 또한, 글로벌 인재양성에 대한 이슈도 중점사항 중의 하나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진단센터 (Assessment Center)를 운영하고 있어요. 참가자들은 프레젠테이션, 집단토론, 역할토론에 참가하고, 전문가들이 각 참가자의 강점과 개발 분야를 진단하여 참가자들에게 알려줍니다. 이후 참가자, 참가자의 상사, 인사책임자가 참여하는 사후 조치 회의(followup meeting)를 통해 전문가들이 제안한 개발계획을 On the Job과 Off the job으로 구분하여 수립,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양성(Diversity)의 관리도 이슈가 되고 있다. 다양성을 조직 내에서 효과적으로 융화시키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박 전무는 이 프로젝트의 한국지역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다.
“4월부터는 Assessment Center 사후조치의 일환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멘토와 멘티로 연결시키는 멘토링/코칭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교육 관리자들을 위한 멘토링/코칭 교육과 직원들을 위한 관리자 코칭 스킬 등이 이에 포함됩니다.”
박 전무는 코칭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국가 및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를 인식, 조화시킴으로써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바이엘 구성원을 하나로 모으고, 다양성의 이슈도 함께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바이엘 크롭사이언스는 관리자들을 위한 가치중심 면접 스킬 교육도 새롭게 실시한다. 바이엘의 핵심가치인 ‘LIFE(Leadership, Integrity, Flexibility, Efficiency)’를 중심으로 가치 기반의 행동사건면접(Behavioral Event Interview) 가이드를 개발해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앞두고 있다.
가치관 변화를 통한 주도적인 인재양성이 과제
박 전무의 최종 목표는 올바른 가치관과 원칙을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 개발에 있다. 글로벌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고, 바이엘 크롭사이언스에서 HR을 이끌어오면서 ‘교육을 통해서 사람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사실 교육을 통해 가치관을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박 전무는 가치관의 변화를 통해 주도적인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올바른 가치관과 원칙을 바탕으로 개인의 꿈과 조직의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그들의 꿈과 목표를 열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HR전문가로서의 최종 과제로 삼고 있다.
“경영자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직원, 지시에 따르기 보다는 주도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추진하는 직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겉핥기식이 아닌 개인의 가치관과 내면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또한, 가치관의 변화로 그들이 주도적인 삶을 살고, 개인의 꿈과 조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다른 이들의 꿈과 성공을 돕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