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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비학위대학 확대해 대·중소기업간 인력양성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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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직원, 기업 모두 행복해지는 CS 경영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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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은선] 실력은 기본, 인성 갖춘 진짜 리더 숙명에서 자란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발전하고 있다. 더는 우수한 스펙과 화려한 경력이 취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기업들은 인턴제도와 다중 심층 면접 등을 통해 실무능력뿐만 아니라 친화력과 조직 적응력 등 인성까지 갖춘 인재를 찾고 있다. 인력시장이 고급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숙명여자대학교(이하 숙대)는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여성 지도자 발굴에 앞장서고 있다. 함은선 숙대 취업경력개발원 원장을 만나 여성 인재 육성 전략을 들었다.
조직 적응력, 인성 중심의 여성 리더 양성
“ 최근 몇 년 새 기업 인사담당자 사이에서 숙대 졸업생 평판도가 크게 좋아졌어요. 채용설명회나 리쿠르팅을 유치하려는 기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함 원장은 숙대 학생들이 기업에서 환영받는 이유가 인성 교육 중심의 교육 철학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실력은 기본으로 갖추되, 좋은 인품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숙대는 학교에 입학하는 시점부터 인성교육을 합니다. 조직생활 적응력을 기르고 주도적이며 진취적인 리더로 키우고자 글로벌 탐방, 토론식 수업, 교내외 공모전, 사회봉사 프로그램 등을 폭넓게 개발하여 학생 스스로 주도하고 참여하도록 합니다.”
특히 함 원장은 사회봉사활동 참여를 강조했다. 그는 “처음부터 힘들고 어려운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은 없겠지만, 자신보다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웃과 만나고 그들에게 자신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스스로 변화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숙대가 운영하고 있는 리더십 그룹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1학년 때부터 40여 개의 리더십 그룹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단체생활에 적극 임하고 조직 내 구성원들과 원활하게 융합할 수 있는 리더로 성장하고 있다.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인재 목표
요즘 기업은 현장에 바로 적응할 수 있는 전문인을 대학에 요구한다. 숙대는 이런 사회 수요에 맞춰 실전 친화형 인재를 양성한다. 모든 재학생이 최소 한 번 이상은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고,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기존 학과들을 융합한 연계전공 학사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졸업을 앞둔 재학생들은 실습과목으로 산학협동 교육 및 기업 실무 인턴십 과정을 듣는다.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 기업(고용보험 5인 이상 사업장)에서 현장 실무를 경험하게 하고, 기업에는 월 급여 일부와 우수 인력을 지원한다. 총 교육 시간 152시간에 달하는 차세대 금융 전문가 양성과정은 한국생산성본부와 함께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금융업 실무 이해와 자격증 준비, 업계 임원 및 인사담당자 특강을 통해 금융권에 진출하려는 학생들을 돕는다.
국내 최초로 도입한 학사 후 과정은 기업과 졸업자들을 연결해주는 Level-up 맞춤 취업 컨설팅을 운영해 양쪽이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한다.
또한, 학생들이 다양한 전공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 변화에 따른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자는 취지하에 연계전공을 운영한다. 예를 들어 법학과 경제학을 결합해 기업법무 전공을 만들고, 어문학 계열 학부를 묶어 스토리텔링 전공을 만드는 방식이다. 2012학년도 2학기에 개설되는 연계전공은 글로벌 환경학, 안보학, 비서학, 인재개발 등 총 열다섯 개다.
“기업 인사담당자가 고맙다고 찾아와”
숙대는 얼마 전 발표된 ‘2012 아시아 대학 평가(QS-조선일보)’에서 졸업생 평판도 부문 국내 14위를 기록했다. 졸업생 평판도는 전 세계 기업 인사담당자 53,00여 명에게 ‘유능한 사원의 출신 대학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통해 평가한 것이다.
함 원장은 “얼마 전 모 기업의 경우 우리 대학 졸업생을 한 명 뽑기로 되어 있었는데 업무 역량이 뛰어나다 보니 추가로 한 명을 더 추천받아 채용한 경우가 있었다”며 “심지어 인사담당자가 졸업생을 데리고 학교로 찾아와 좋은 인재를 보내줘 고맙다고 인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숙대의 졸업생 평판이 우수한 이유는 학사 전 주기에 걸쳐 재학생들의 역량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여 아픈 곳을 찾아내듯 역량개발시스템으로 재학생의 취약점을 진단하고 보완시킨다.
숙대가 개발한 SM-CLA(Sookmyung-Colligate Learning Assessment,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생역량진단평가시스템)는 학생들의 역량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측정도구이다. 문제해결력, 관계 구축, 창의적 사고 등으로 분류된 역량 영역을 평가하는 시스템으로서, 검사결과를 영역별로 표준화해 장단점을 파악한다.
SM-CLA 검사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역량개발I> 수업 중에 시행되며, 본 수업의 수강생들이 3학년이 되면 <리더십 역량개발 II> 수업에서 SM-CLA 동형검사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역량변화 정도를 측정하여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고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2012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 선정 대학(2009, 2010, 2012)
2011 서울 시내 4년제 여자대학 중 취업률 2년 연속 1위(2010, 2011)
2011 고용노동부 [청년취업진로지원사업] 2년 연속 우수대학 선정
2011 고용노동부 [대학취업지원 역량 인증제] 시범사업 우수대학 선정
2010 고용노동부 청년직장체험프로그램 우수 위탁운영기관(2009, 2010)
2009 교육과학기술부 미취업 대졸자 지원프로그램사업 지원대학(2009, 2010)
인터뷰+사진 김현지 기자 기사 제공 숙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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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스테이플스] 4. 조직변화를 위한 퍼실리테이션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모든 조직은 다양한 변화의 리듬에 맞춰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조직에서는 미션, 비전 및 핵심가치 설정,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기획, 조직설계, 변화시스템과 제도의 설정, 조직문화의 변화 등을 통해 총체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조직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변화전개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고, 계획과 실행 간의 일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조직구성원들을 문제해결과 계획수립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참여를 촉진하는 방법에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고 많은 조직에서 활용하고 있는 GE의 워크아웃(Workout town meeting), 그리고 미래탐색(future search), 오픈스페이스(open space technology), 참여적 전략기획(Participatory strategic planning), 긍정조직혁명이라 불리는 AI Summit(Appreciative Inquiry Summit) 등이 있다.
전통적인 조직개발기법인 미래탐색기법은 시스템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구성원들을 대규모 기획회의에 한데 모아놓고 중심이 되는 과제와 관련된 과거, 현재, 미래를 구체적으로 탐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바라는 미래를 설정하고, 그 미래로 향하기위해 실행가능한 프로젝트를 합의해 나가게 된다.
해리슨오웬이 창시한 오픈스페이스(OST)는 구성원들이 자신들과 관련된 이슈에 심층적이고 독창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변화를 위한 주제가 정해지면, 안건 별로 회의 시간을 명시해서 벽에 게시하고, 참여자들에게 원하는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하도록 한다.
또한, ICA의 ToP(Technology of Participation)기법인 참여적 전략기획(PSP)은 조직 구성원들이 비전을 설정하고, 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을 설정하며, 전력 실행을 위한 액션플랜을 만들게 하는 프로세스다.
쿠퍼라이더와휘트니의 AI Summit은 구성원들이 모여서 조직의 강점들을 발견하고, 이에 근거하여 미래의 비전을 꿈꾸고 조직의 미래를 함께 설계한다면, 이를 실행하기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AI 대표적인 참여형태를 보이고 있다. AI Summit은 조직 전체가 참여하여 조직의 강점을 공유하고 행동의 에너지를 창출하는 아이디어를 도출할 때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직의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전개되며, 그동안 수많은 조직에서 성공적 조직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참여적인 프로세스는 조직 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이끌어냄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시스템 내에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집단적 지혜가 발휘되어 창의성과 혁신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퍼실리테이션은 조직 내 다양성, 포괄성, 차이에 대한 존중을 촉진함으로써 성공적인 조직변화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퍼실리테이션은 구성원들이 자신만의 시각에서 벗어나 전체를 보도록 함으로써 조직의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을 조장하게 한다. 이러한 조직변화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도출, 구성원들의 공감과 합의 형성, 자기주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프로세스, 참여를 통한 실행력 강화의 기반 위에 전개된다. 그런데 성공적 조직 변화를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활용하여 참여를 이끌어낼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참여적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참여형 리더의 개발로 참여적 조직문화 형성
참여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퍼실리테이티브 리더십(facilitative leadership) 즉, 참여형 리더의 개발이 필요하다. 조직문화의 형성에는 리더의 역할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내부 구성원들이 아무리 변화를 바란다고 해도, 또는 변화를 위한 방안이 수립된다고 하더라도, 리더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변화에의 의지가 약하다면 변화 활동은 추진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강조되던 조직 리더들의 역할은 구성원들의 일이 바르게 되도록 관리에 집중하는 ‘매니저’ 역할, 올바른 것을 하게 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에 집중하는 ‘리더’ 역할이었다. 조직변화를 위한 리더로서 조직의 최고 경영자는 명확하고 믿을 만한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하며, 변화에 대한 개인적인 에너지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또한 매니저로서 리더는 변화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새로운 행동을 강화하기 위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변화를 지원한다.
퍼실리테이터형 리더의 역할도 중요
그러나 참여적 조직문화 개발을 위해서는 이 외에도 집단의 지혜를 끌어내고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 관리에 집중하는 ‘퍼실리테이터’형 리더의 역할이 추가되어야 한다. 퍼실리테이티브 리더는 집단의 경험과 지혜에 무게를 두며, 조직의 파워는 다양한 관점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퍼실리테이티브 리더는 조직개발의 계획수립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여 변화를 위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도출되도록 한다.
퍼실리테이티브 리더는 협력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도구들을 활용하여 구성원들이 효과적으로 의사결정 할 수 있도록 돕고, 의사결정한 것에 대하여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갖도록 한다. 변화 활동의 실행 과정에서도 퍼실리테이터들은 구성원들이 서로의 지식과 경험의 공유를 통해 학습하도록 촉진하고, 업무를 지원하여 창조적인 성과를 이끌어내도록 할 수 있다.
성공적인 조직변화를 이루기 위한 가장 확실한 참여다. 계획수립과 의사결정에의 참여는 구성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이끌어 낸다. 주인의식은 구성원들이 기꺼이 조직을 위해 열정을 다하게 하는 조건이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 구성원들은 자신과 조직 간의 상호 의존성을 느끼게 되며, 이를 통해 조직과 구성원 간의 신뢰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직의 엔진이 바로 퍼실리테이션이다.
글 이영석 ORP연구소 대표(한국퍼실리테이션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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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키지코리아] 받침대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변화관리
과거에 얽매여 이전의 방식과 다른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조직, 미래와 과거 사이에 정체해 있는 조직, 새롭게 시작되는 방식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 조직 중 여러분의 조직은 어떤 조직입니까?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 어쩌면 너무 진부한 얘기일지 모른다. 이제는 그 변화의 필요성을 빠르게 인식하고 준비해나가는 과정이 핵심이다.
항공우주장비 및 방위장치 제작 사업을 하는 L사는 세계 최고의 경쟁자들과 전투기 수주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L사는 외부적으로는 동종산업 내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내부사정은 달랐다. 풍부해 보이는 수주계약들이 급격히 줄어가고 새로운 주문에 대한 준비기간이 3년이나 걸렸으며, 공장은 여전히 1970년대의 낡은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약 8년간 젊은 구성원을 선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고령화 되어갔다. 더군다나 이번 전투기 수주 경합에서 낙오된다면 자칫 도산될 뻔한 위기에 처해 있다. 경쟁에서 승자가 되면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지만, 패자가 되면 이 산업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마디로,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L사의 컨설팅을 맡은 링키지는 분석을 통해 L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지 못했고, 젊은 구성원들은 밖으로 내모는 등 구시대적인 기업사고 방식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이들에게는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받침대와 지렛대 전략 개발
L사는 불투명한 미래를 타파하고자 ‘받침대와 지렛대’ 전략을 개발하여 전략적 프로그램을 적용하였다. 여기서 지렛대란, 고위 리더들이 가진 영향력을 조직 전체에 확대하여 구성원 개개인의 업무 수행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로 링키지는 고위 리더들로부터 이러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L사를 몇 달간 분석하여 변화를 저해하는 반대 행동들을 우선 구분하여 제거했다. 몇개월에 걸쳐 관찰, 인터뷰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행동들을 정리하고, 사업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연쇄적 효과를 내는 행동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우수 집단’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른 조직과는 차별화된 몇 가지 핵심행동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단과정에서 상위 리더들은 주요 주제에 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이 성과의 핵심 행동이라고 결정지었다. 즉, 이러한 핵심 행동이 연쇄적 효과를 낸다면 다른 비생산적인 행동을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며 결국 받침대라는 주요 역할을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어 실질적인 행동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상위 리더에게 책임을 부여했다.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상위 리더가 책임을 지게 하는 명확한 행동변화가 필요 하다. 리더들은 훈련받은 사람의 수와 실행한 시험 프로젝트의 수와 같은 것에 대해서만 평가하기 때문에 리더는 그들의 노력들이 충분히 느리게 돌아가게 할 수 있었다. 10%의 달성목표가 정해지고 리더십에서 상위 두 계층의 변화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일정 기간이 주어졌고, 인센티브나 보상은 직접 측정 가능한 목표 달성에 따라 시행했다. 그러자 변화가 고위 리더들의 레이더 스크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 번째로 받침대 격인 고위 리더들이 자신을 재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위 리더들은 ‘무엇이 과거의 행동으로 돌아가게 하는가?’ 그리고 ‘새로운 행동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등을 자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일종의 변화촉진 차원에서 현 평가 시스템에 내재한 가치를 변화시키고 조직 내 문제를 개선하며, 피드백을 확대하여 핵심행동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후 고위 리더들에게 지렛대의 역할을 교육훈련 시켰다. 지렛대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지렛대1, 교사로서의 역할
행동 변화의 필요성을 그들의 직접 Report 라인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확실하게 이해하도록 하였다. 고위 리더는 직접 Report 라인에 있는 사람들에게 교사와 학생의 역할을 번갈아 하는 지도를 실시하였다.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 행동의 변화를 이끄는 요인들은 교육과정 동안 이루어졌던 ‘대화’였다. 교육과정 동안 리더가 직접 Report 라인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배웠던 기술을 사용할 것을 유도하고, 기술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이 레슨은 주요 주제에 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에 관한 개념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 교사의 역할을 한다. Report 라인 구성원들과 개방적 의사소통을 통해 대화할 뿐만 아니라, 리더 역시 교사라는 역할을 부여받게 됨으로써 중요한 행동을 단순히 전달하는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강조하고 상기시키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직접 Report 라인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즉 상사의 행동 변화를 발견한 구성원들은 전체 문화의 변화를 좀 더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변화를 촉진하기 시작한다.
지렛대2, 파트너로서의 역할
고위 리더들의 참여 외에 비공식적 리더들의 참여 또한 필요했다. 비공식적 리더는 ‘오피니언 리더’로 불리며 오피니언 리더의 말과 행동은 다른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 링키지는 오피니언 리더를 통해 변화에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하고 그들로부터 직접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변화확산이론을 바탕으로 고위 리더들은 그들의 노력 40%를 변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집단에 쏟기 시작했다. 경영진들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고, 오피니언 리더들 또한 경영진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긍정적인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조정하였다.
지렛대 리더가 긍정 영향 전파
받침대와 지렛대 원리를 통해 기업 문화를 혁신시킨 L사는 결국 경쟁에서 전투기 계약에 성공했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 문화를 변화시킨 L사의 성공적인 시도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 Best Practices를 찾아볼 수 있다. 그 주요 내용은, 소수의 헌신적인 리더가 궁극적으로 ‘지렛대’의 역할을 하여 수천 명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받침대와 지렛대 전략
· 성과 개선에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행동을 규정
·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목표 설정
· 상위 계층 리더에게 핵심행동에 대한 명확한 책임 부여뿐만 아니라 지렛대를 설정
지렛대 1. 공식 리더가 ‘교사’의 역할을 하며 그들이 가르친 학생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
지렛대 2. 비공식 리더인 오피니언 리더를 발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며 그들을 의사소통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냄(비공식 리더에 대한 목록 만들기).
조직의 전략적 목표에 대한 공감대가 성공요인
도산 위협에 몰렸던 L사가 조직문화 혁신을 통해 생존 전쟁에서 승리한 사례에서 우리는 변화관리의 중요성 인식과 변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에 대해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통해 명확하게 전달하여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조직이 나아가고자 하는 변화의 방향과 전략적인 목표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았더라면 잘못된 출발임과 동시에 경영진의 만족으로만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감대 형성에 리더의 역할과 그 성공의 가능성을 결정짓는다. 리더는 배의 선장인 동시에 소통의 마술사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리더의 명확하고 신뢰감 있는 소통은 혼돈과 불확실성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키가 될 것이다. 물론 리더의 솔선수범하는 실행이 기본적으로 함께 동행 할 경우라는 것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글 ㈜링키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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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4. 조선왕조 창건의 리더십
14세기 말 한국사회는 또 한 차례 역사적 전기를 맞았다. 공민왕 때부터 시작된 개혁의 기운이 드디어는 조선왕조의 창업으로 발전하였다. 그 변화의 중심에 정도전이 있었다. 정도전은 성리학적 이념을 토대로 정의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암초에 걸려 그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무언중에 그 뜻을 계승하여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제시한 이가 세종대왕이었다. 세종은 무슨 일을 하든지 백성을 위해 온 힘을 다했고, 마침내 한글까지 창제하였다. 새로운 문자를 통해 백성이 마음껏 자신들의 뜻을 표현하게 하고 싶었던 세종의 깊은 뜻은 한국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세종의 리더십은 백성의 세계관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정확히 말해 그는 노비였다. 그 어머니에게 노비의 피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4세기 후반 고려에서는 정도전처럼 신분에 하자가 있는 사람들도 관리로 출세할 수 있었다.
정도전을 발탁한 것은 공민왕이었다. 왕은 유능한 젊은이들을 등용해 고려사회를 과감하게 개혁하려 하였다. 정도전은 정몽주, 이숭인 등과 함께 공민왕의 개혁정책에 찬동했다. 왕은 그들에게 유학진흥의 임무를 부여하였다.
공민왕이 죽고 구 귀족들이 집권하자 정도전은 용납되지 못하였다. 그는 멀리 회진현(전남 나주)으로 유배되었다. 거기서 정도전은 백성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를 몸소 경험하였다.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속속들이 이해하게 된 정도전은 민본(民本)의 유학자가 되었다.
국가는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민본사상은 《경제문감》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중략) 옛날 사해를 다스리기 위해 천자가 관작을 설치해 봉록을 지급한 것은 신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 백성을 위해서였다.” 국가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그는 확신하였다. 지배층은 백성의 수고에 힘입어 의식주를 해결하므로, 백성에게 옳은 정치로 보답하는 것이 옳다. 이것이 성리학의 가르침이었고, 정도전은 이를 적극 수용하였다.
정도전이 꿈꾼 조선은 왕과 지배층의 나라였지만, 그것은 백성을 위한 국가라야 하였다. 그의 정치사상은 14~15세기 세계 어디 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급진사상이었다.
정도전, 이성계를 선택하다
구 귀족들 때문에 권력에서 소외된 정도전은 정치적 모험을 감행했다. 이성계라는 전쟁 영웅과 힘을 모아 새 나라를 건국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전제(田制)개혁, 즉 경제개혁을 중시하였다. 개인 소유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같은 규모의 농토를 나눠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가 빈부의 차이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라도 출발점이 공평한, 기회균등의 사회를 바랐다. 정도전은 지주제도 반대하였다. 소출의 절반을 소작료로 가져가는 것은 착취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정의를 추구하였던 정도전의 꿈은 그러나,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위협하는 것이라 하나의 개혁구상에 머물렀다. 그래도 정도전이 그처럼 웅대한 포부를 가졌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을 설계하다
1392년 마침내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새 왕조를 열었다. 정도전은 자신의 이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그는 새 도읍 한양의 얼개를 짰다. 가령 남쪽 대문을 ‘숭례문’이라 하여, 조선이 예(禮)를 숭상하는 유교 국가임을 밝히는 식이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두 정도전의 손길을 거쳐 조선 500년의 수도 한양이 탄생하였다.
조선을 철저한 성리학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해 그는 불교와도 이념적 대결을 사양하지 않았다.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공박하였던 것이다. 《조선경국전》이라는 일종의 법전도 만들었다. 재상중심 국가를 이상으로 여기는 동시에, 그는 기회균등을 보장할 수 있는 공교육 체제의 완비를 강조하였다. 현대적인 처지에서 보더라도 수긍이 가는 탁견이었다.
잊지 못할 정도전의 리더십
명나라의 간섭이 커지자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에게 명나라의 정벌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 왕권의 강화를 위해 사병(私兵)혁파를 추진했다. 그러자 이방원(태종)은 자신의 권력기반이 잠식되는 것이 두려워,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세자 방석 등을 살해한 끝에 정도전까지도 처형해버렸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역적으로 몰아 일체의 관직과 재산을 몰수했다. 그러나 정도전을 죽이고도 조선왕조는 그의 공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의 열정과 지략이 없었다면 조선왕조의 개창은 아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펼친 민본사상은 새 시대의 복음이었다. 그것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시민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우리의 염원에도 들어맞는다. 정도전의 굳센 각오와 지략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처한 열악한 처지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창제로 이어진 세종의 소통 리더십
세종(재위 1418~1450)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왕 중 왕이다. 통상 그에게는 대왕이라는 존칭이 붙는다. 이상한 일이 결코 아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은 4군과 6진을 개척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의 영토를 확정지었다. 우리의 음악인 향악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도입한 아악도 정리했다. 정간보(井間譜)라는 우수한 채보 법도 왕이 직접 창안하였다. 한글도 손수 창제하였다. 예를 들기로 하면 그의 업적은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그토록 다양한 업적이 불과 30여 년의 재위 기간에 다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과연 어떻게 통치하였기에 그것이 가능하였을까.
‘민본’만이 왕자의 길이다
소년 시절 세종은 누구보다 기회에 민감했다. 그는 정치적 야욕에 불타는 욕심 많고 탐욕스런 왕자이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양녕대군과 효녕대군을 따돌리고 조선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왕이 되자 그는 달라졌다. 왕위를 보전하기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다,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왕이 되기란 더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에 고심한 결과였다. 왕은 민본 즉 백성을 위한 정치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았다. 세종은 책에서 그 답을 얻었다. 그의 애독서는 유교경전과 역사서였는데, 왕은 같은 책을 수십 번, 또는 수백 번씩 되풀이해 읽었다. 그러면서 왕 자신을 변화시켰다. <서경>에 나오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그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다가 끝내는 자신의 통치 지표로 삼았다. 왕이 존재하는 이유는 백성의 요구를 해결해주는 데 있다. 위대한 지적 발견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억울한 백성이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였다. 이러한 세종의 민본사상은 맹자의 혁명사상을 방불케 하였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백성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무지하나 하늘의 뜻이 그들을 통하여 나타나므로 영험하다.’ 이것이 성리학의 가르침이었다. 이보다 백성의 양면성을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공감한 세종은 ‘백성의 무지’라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뒀다. 그리하여 그들의 무지를 방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지한 백성이 잘잘못도 가릴 줄 모르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벌을 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자! 세종의 마음은 그쪽으로 나아갔다.
왜, 무엇은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를 백성에게 일깨우는 것이 세종의 급선무가 되었다. 그런데 백성의 대다수는 글을 읽지 못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은 직접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놀랍게도 한글창제는 세종의 성리학적 통치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백성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알려면 문자가 있어야 했다. 왕이 직접 백성을 만나서 의견을 듣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이 일상생활에서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가 필요했다. 세종의 시대, 즉 15세기에는 이미 일본사람, 몽골사람, 여진 사람들도 제각각 고유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조선의 백성만 아직도 문자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세종이 보기에는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 탁월한 언어학자이자 성리철학자이기도 하였던 세종은, 민본의 철학을 실천하는 방편으로 ‘훈민정음’의 창제에 몰두하였다.
사회적 약자인 백성을 보호하라
그의 민본사상은 추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정책을 입안할 때마다 왕은 그것이 백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따져보았다. 공법(세제)을 바꾸기 전에는 십만 명도 넘는 백성에게 일종의주민투표를 시행하였다. 투표 결과 과반수가 찬성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나, ‘아직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왕은 십 년 넘게 더욱 연구 보완하였다.
전국의 감옥도 자신이 직접 설계를 변경하였다. 당시 감옥은 위생조건이 열악해, 거기서 죽거나 몹쓸 병을 얻는 사람들도 많았다. 왕은 감옥의 이러한 참상이 법의 취지에서 어긋났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국의 감옥을 개축하기로 했고, 마침내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또한, 그는 세상 사람들이 천시하는 관청 여종(官婢)들의 근무조건까지도 일일이 따져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장기간의 출산휴가를 지급하였다. 역사상 위엄을 자랑하는 제왕은 많았지만, 세종처럼 백성을 내 몸처럼 보살핀 왕은 없었다.
그렇다고 세종의 시대가 황금시대였다는 말은 아니다. 그 시대에도 흉년이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었고, 크고 작은 불상사가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다스렸다 해도 왕은 시대와 제도의 한계를 다 넘어 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초극하기 위해 세종이 보여준 정성과 노력은 후세 역사가들을 감동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인재들에게 믿고 맡긴다
왕은 이른바 ‘독불장군’이 아니었다.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그들에게 실무를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왕은 누구보다 인재를 아꼈다. 인재라면 출신도 가리지 않았고, 과거 행적도 불문에 부쳤다. 일단 등용한 인재는 끝까지 신뢰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세종은 주장하기를, 나라의 쓰임을 받지 못한 인재가 길거리를 배회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였다. 만약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당장에 대통령으로 모셔도 좋은 분이다.
인재를 골라내는 세종의 안목은 특이하였다. 자신에게도 인간적 결함이 많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한 세종은, ‘나도 이러한데 너희도 당연히 그러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견해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신하들에게 일을 맡길 때 그들의 단점을 보지 않고 장점만 취하였다. 그렇게 발탁한 대표적인 인물이 황희였다. 황희에게는 불법과 부정부패사건으로 얼룩진 과거가 있었다. 또 공신 박포가 유배되었을 적에는 그 아내와 간통했다는 소문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왕은 그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이 있다고 확신해 버리지 않았다. 나중에 황희가 정승을 그만두고 은퇴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입 모아 그를 ‘훌륭한 재상’(眞宰相)이라 칭송하였다. 세종의 리더십은 황희의 인생을 바꾸었고,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세종의 소통 리더십
세종이 즉위할 당시 조선은 아직 초창기라 변변한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세종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자 거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졌다. 성공의 열쇠는 세종의 리더십에 있었다. 왕은 백성에 대한 사랑(仁)과 정의감(義)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그 중심에는 소통능력이 자리하였다. 소통의 달인 세종이 창제한 한글, 각종 문물과 제도, 그가 키운 인재들이 조선왕조를 떠받칠 기둥이었다. 전 세계의 어떤 제왕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왕이었다. 약점과 고난을 극복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그는 표본이 될 만하다. 세종처럼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글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전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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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형] 편법이 아닌 상식과 원칙에 집중하는 HRD 경영환경 조성
최민형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상무는 “거듭되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세계 일류 국가, 일류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지켜지면서 원칙과 합리가 통용하는 노사문화와 인적자원관리의 정착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1970년 창립 이래 시대변화의 흐름에 맞춰 꾸준히 인사노무 전문단체로 성장해온 경총에서 다양한 HRD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최 상무는 오랫동안 인사노무 전문가로 살아온 노하우와 연륜으로 ‘시장경제원칙에 기반을 둔 생산적 노사관계 구현’에 힘쓰고 있다.
경총은 인사노무 전문단체로 회원사에 대한 임단협 지원, 노동법률 상담, 교육·연수, 인적자원관리 및 안전보건활동 지원, 조사협력 프로그램 등을 개발,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 노동관계법 제·개정,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해 경영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국제노동기구(ILO),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용자단체로 참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경총의 주 업무가 인사, 노무 관리 쪽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순히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을 넘어서 기업이 효율적 HR 시스템을 구축하고, 투명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할 수 있도록 앞장서고, 기업의 변화와 혁신을 지원하는 데도 적극 노력할 계획입니다.”
기업의 효율적인 HRD 환경 구축에 역점
최 상무는 20년 가까이 인사관리, 인재개발원 담당임원, 외부자문역(인적자원개발 컨퍼런스) 등 다양한 대내외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안으로는 경총, 밖으로는 회원사와 국내기업의 HRD 교육에 대한 관심과 집중이 깊어졌다.
“인사노무관리뿐만 아니라 인재개발에도 집중하면서 경총의 인사노무관련 업무를 HR사업영역으로 확대해야 함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회원사에 대한 서비스 강화와 기업경쟁력 향상에 일조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방위 HR 실현을 위해 경총은 교육연수 실무를 담당하는 인재개발원과 연구조사를 수행하는 HRD팀에서 기업(회원사)들의 HR을 지원하고 있다. 최고위자과정(전국최고경영자연찬회, 경총포럼 등)부터 실무자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다룬다. 또한, 최신 HRD 동향에 관한 연구조사와 정책사업을 시행하여 기업의 HRD 환경이 효율적으로 구축, 운영되도록 하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경총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중 최고위자과정에서는 CEO들이 학습으로 HRD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HR 트렌드 전파, HRD 전략 구축 과정 운영 및 인사임금사례총람 등 HR 관련 서적,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발간함으로써 기업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HR 관련 사업과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최고경영자의 인식전환으로 고성과의 HRD 경영환경 조성
경총이 최고위자과정을 지속적으로 개발, 운영하는 것은 최고경영자들이 가진 HR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해서다.
“최고경영자의 입장에서는 투자, 업무의 우선순위가 마케팅, 영업, 기술 측면인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결국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인재 육성을 해야 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능한 인재개발을 위한 최고경영자의 인식전환이 절실합니다. 실제 기업현장에서 교육 기관 및 교육 프로그램은 무수히 많지만, 최고경영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많지 않습니다. 최고경영자의 인식 전환을 위한 HR 관련 교육 개발 및 운영이야말로 경총의 또 다른 역할이라고 봅니다.”
경총은 앞으로 HRD 경영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급속하게 발달하는 스마트 HRD 관련 연구조사 및 트렌드 전파에도 힘쓸 계획이다. 우리 기업들이 변화를 선도하는 학습조직을 구축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전망이다.
“일순간의 노력을 통해 무언가의 열매를 얻으려는 생각을 줄이고, 인사의 기본으로 돌아가 인재선발, 육성에 집중하고 그에 걸맞은 조직환경을 구축하는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가 가장 큰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속적인 경쟁우위는 인재가 좌우한다
최 상무는 “인재육성을 위해서는 기업 자체의 전사적인 공유가치 설정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재관이 명확하게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며 “인재 선발 및 유지·육성할 수 있는 제도(시스템)와 문화의 정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순간의 노력, 한때의 변화로는 인재육성이 불가능하며, 만에 하나 가능하다 할지라도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가지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지속적인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서는 일순간의 편법적 대응보다 사태의 근본을 직시하고, 바른 길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인재를 선발,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재는 결국 강한 도덕성으로 무장한 고도의 전문인력입니다. 능력과 품성 두 요소는 덧셈관계가 아닌 곱셈관계에 있어 상호간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를 촉진시키기 때문입니다.”
상식과 사실에 기반을 둔 HR 커뮤니케이션
인사관리는 특히 인사제도와 임금수준 등에 대한 구성원들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수십 년간 인사관리를 해온 최 상무에게 무언가 특별한 커뮤니케이션 비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노하우를 물었더니 “상식과 사실”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전 인사관리라는 것이 모든 게 상식선에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인사 평가를 하더라도 제도나 시스템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평가 결과는 상식적인 수준으로 도출되더라는 겁니다. 인사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사람과의 문제는 상식선에서 타협이 되고, 상식선에서 결론이 납니다. 또한, 직원들과의 대화 역시 인간관계에 기반하므로 사실에 기초한 솔직한 대화를 통해 오해를 줄이는 것이 긍정적인 조직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사진 김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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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언] 한국 산업교육의 시초 그 뿌리를 알아보다
74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과 성실, 꼼꼼함이 묻어나는 교육자. 그가 이성언 한국능력개발원 회장이었다. 이성언 회장은 우리나라 산업교육 역사의 산 증인이다. 산업 교육의 체계 없이 1969년도에 영업 사원들만 교육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교육자의 인생을 걷고 있는 그의 기억으로부터 산업교육 43년 역사를 되짚어본다.
내가 1969년 종로2가에서 한국능력개발원을 설립하고 ‘산업훈련, 교육상담, 심리치료’ 이 세 가지 업무를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했을 때, 나중에 알고 보니 4개의 산업교육 단체가 있었다.
한국생산성본부(’57)와 한국능률협회(’62), 한국(공업)표준협회(’62), 한국산업훈련협회(’67) 였다. 그래서 그 세 곳에 나도 강사로 또 지도위원 등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내가 지적, 인격적으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은 은인들이다.
그 당시 강사가 여러 명 있었는데, 강사가 따로 오피스를 열고 활동한 것은 공교롭게도 내가 처음이다 보니 ‘오피스 강사 1호’, ‘최연소 강사(31세)’, ‘마이카 강사 1호(’73)‘ 등의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니까 ’능력개발의 대부‘ 혹은 ’한국 산업교육의 산 증인‘이라는 말도 듣게 됐는데. 어느덧 74세로 43년째 일하고 있으니 현장의 산 증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원로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외람된 생각이다. 강의는 나중에 시작했더라도 더 많은 연세는 물론 해박한 지식과 인격적으로 나보다 훨씬 위에 계신 분이 많이 계신다.
기업교육의 태동기 6~70년대
우리나라 6~70년대는 기업교육의 태동기여서 몇몇 재벌회사에서 사장이 훈시하는 조회시간이나 토요일 업무를 마치고 단발적으로 대학교수 또는 사회명사들을 초청해서 한 두 시간씩 교양강좌를 듣다가, 필요에 따라 영업사원의 세일즈 교육, 신입사원 입문 교육으로 교육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 선도적인 단체도 일본생산성본부, 일본능률협회, 일본규격협회, 일본산업훈련협회를 모델로 “한국기업도 교육을 해야 한다”고 열심히 계몽하는 정도였었다.
나는 한국민주학생기구중앙위원회 의장(4.19)에서 청양군 농촌자원(自願)지도자 연합회 초대 회장, 충청남도농촌진흥위원(위원장: 도지사. 독농가 대표), KBS 아나운서(대전방송), 동운교역주식회사 영업담당 상무 등으로, 학생운동에서 농업화의 기수로 4_H클럽 지도자로 일했고, 산업화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다시 상경, 말하자면 ‘변화/변신’ 소리가 없을 때부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서 능력개발원을 창설한 셈이다.
잠재능력 개발 지도로 능력개발 붐 일으켜
또, 일본최면과학원에서 최면을 배웠는데 특히 산업능률대학의 ‘자기최면에 의한 간부자질개발세미나’와 ‘독창성개발 리더코스’에서 큰 감명을 받아 한국 기업에 창조성의 위력을 소개할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 한국기업 입장으로는 신기술 도입기였으니 모방선취 기법이나 배우고 싶었을 시기였다고 할까.
어쨌든 나는 우리나라의 ‘최면술’ 시대를 ‘최면법’, ‘최면학’으로 바꾸는 작업과 동시에 전 서울시의사회 이사장 박충진 박사와 함께 한국 최초로 한국심신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한국최면의학심리학회 초대 회장), 안에서는 카운슬링 및 심리요법과 더불어 ‘능력개발세미나’를 개강하고, 밖에서는 회사와 대학 등에서 ‘창조적 사고’ 대신 ‘적극적 사고방식’ ‘잠재능력 개발’ 등으로 내용을 바꿔서 지도함으로써 이 땅에 ‘능력개발 붐’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또 생산성본부 공개강좌에서 세일즈 테크닉을 강의를 계기로 삼성생명(동방생명) 성기종 과장이 찾아와 출강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보험회사 1위의 수많은 ‘보험모집인’을 계속해서 교육하게 되고, 영업사원을 위한 판매기법과 정신력 강의는 보험사, 제약회사, 신세계, 롯데 등으로 퍼져나갔다.
1970년대, 불황타개 의식개혁 교육 실시
한편, 공군사관학교에서 전역한 분들이 미군의 교육기법과 노하우로 기업교육을 선도했다. 1973년에 유철종 선생과 (故)김응삼 선생이 함께 한국조직개발협회를 만들어 나는 그 자문위원으로 참가했다. 기업들이 오일쇼크로 힘들어졌을 때 신영철 능률협회부장께서 찾아와 프로그램을 부탁했는데 KMA가 어려워졌을 때라 추진을 못하던 것을 유철종 선생과 함께 불황타개 의식개혁을 위한 교육 ‘능력개발세미나’ 공전의 히트, 3박4일, 4박5일씩 1년에 94회 실시했다. 그리고 김응삼, 이범규 선생이 산업훈련원을 개설, 나를 포함해 3인이 조인트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 회사를 맡으면 임원부터 공장까지 계층별교육으로 전 사원을 교육하기도 했다.
경영학의 핵심인 심리학
경영학은 경제학과 달리 기업의 인간 관리를 다루는 학문이므로 그 핵심이 심리학이다. 창의력 교육, 경영관리와 정신건강, 이미지 연출, 대기업 임원의 회의 진행법까지 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사람을 상대하는 다양한 분야를 다룬 것은 10년, 20년, 기업의 환경변화가 빨라지면서 교육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새로운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한 분야만 전문으로 고집하는 분은 시대와 함께 사라진 경우가 있다.
인재는 영문자로 T형 인간이 돼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한글로 ㅜ, ㅠ, ㅡ, ㅣ 형 인간을 이야기 한다. ㅠ형 인재는 폭넓은 교양과 2가지 이상의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하다고 하지만 내가 펼쳐 가는 전공 분야는 심리학과 경영학을 기반으로 한 ‘조직의 인간적 측면’, 크게 보면 한 분야이다.
창의력은 아까 얘기한 대로 ‘창조를 업적으로 연결하는 것’이고, 정신건강은 회사에서 육체적인 건강검진만 할 게 아니라 심리진단이 필요해진 것이 오늘의 새로운 의학조류 심신의학이다. 직장의 심리적 스트레스 대책으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프로그램과 시스템으로 직장과 가정의 심신건강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인재육성·기업문화 재창조의 방아쇠, HRD
그래서 기업교육의 목적을 세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첫째, 인재를 육성한다. 그것도 자주적인 인재를 기르는 것이 기업교육의 목적이다. 사람에게는 각자가 잠재적으로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자주적으로 노력하는 만큼 그 성과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런 욕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서 그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그 기회를 주고 지원하는 것이 기업의 연수?교육이다.
둘째, 기업이 존속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의 개혁과 사원의 의식개혁이 요구되는데, 교육연수가 그 조직개혁과 의식개혁의 방아쇠가 되는 것이다.
셋째,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조직과 의식을 개혁하려면 구조조정이나 지식교육, 극기훈련 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조직의 풍토, 기업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 HRD’의 그 궁극적 목표는 기업문화를 창조하고 건전한 기업문화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일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미 400년 전에 이렇게 갈파했다.
“사람은,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스스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또한 현대에 사는 나의 교육관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아마 앞으로 40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방법이야 시청각, 교육공학, e-Learning 등등으로 계속 발전해 가야 하겠지만.
이성언 회장 프로필
전 한국최면의학심리학회 초대 회장, 한국창조성개발본부 자문위원, 서울대 외래 강사 등을 역임하며 기업교육과 최면의학, 심리학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현재는 한국능력개발원(KADI) 원장, 창조경영컨설턴트그룹 대표, Smart-Vision연수원(원주) 이사장, 서울심리상담?치료센터 원장, 한국발명개발원 상임고문, 특허청 선정-신지식특허인으로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서로는 <병은 마음으로 고쳐라>, <창조능력개발법>, <자기최면 법>, <NO라고 말하고 싶을 때 YES라고 말하지 말라(역서)> 등 다수가 있다.
정리 김현지 기자 사진 성무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