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홍주] 레크리에이션의 파릇한 청년, 문화에 뛰어들다
▲ 문홍주 대표는 대한노래 부르기중앙회 지도교수, 공동체개발원 원장,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 현재 (재)하남문화재단 대표이사,
(사)한국투명성기구 부회장, 경기도교육청 청렴옴부즈만 대표로 활동중이다.
문홍주 하남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만나, 그의 약 60여 년간의 삶을 통해 산업교육을 하게 되기까지의 여정과 활동 내용을 들어봤다.
문 대표는 6·25 전쟁이 발발한 해에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5세쯤 경남 밀양으로 이사한 것을 비롯하여 경북 흥해, 대구 등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세 번째 이사한 대구에서 중, 고, 대학을 다녔다.
그의 아버지는 재력가인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시절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한국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의 길로 접어든다. 아버지는 청빈한 목회자의 길을 고집하며 할아버지로부터 일체의 도움을 거절하였기에 중?고등학교 시점 문 대표는 청빈한 목회자의 삶으로 늘 학비 걱정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기에 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목회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미션스쿨을 우선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레크리에이션의 초석을 다지다
과외로 일하며 학비를 벌던 중 문 대표는 사회복지보육시설인 ‘새볕원’에서 합창단 지휘자로 요청받고 첫 지휘자가 되었다. 당시 교회 성가대를 비롯한 대학 음악동아리 ‘도레미하모니클럽’과 ‘대구YMCA 알핀로제요들클럽’ 등을 조직하여 회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었고, 교회 어린이 성가대를 지도하긴 했으나 아르바이트 성격이며 보육시설 어린이 합창단 지휘는 처음이었다. 그 무렵 ‘한국아카데미합창단’ 단원으로도 활동하였는데 전문합창단에서의 합창경험은 대학 합창단 지휘를 맡는 데 초석이 되었으며, 아리아 오르간 제조업체에서 창단한 ‘아리아 합창단’ 지휘 요청을 받고 첫 실업합창단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하여 ‘대구YMCA소년소녀들국화합창단’과 사회복지시설의 어린이 합창단인 ‘베다니합창단’과 그 당시 꽤 활발한 활동을 하던 선명회재단 소속의 ‘어린이집합창단’을 맡아 지휘하기도 하였다. 합창지휘와 더불어 그들의 인성 프로그램이나 상담지도 등 자원 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쏟아왔던 문 대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제도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참길회’라는 자원 활동 단체를 만들었는데 40년이나 지난 지금도 복지시설의 어린이와 노인들을 지원하는 자원 활동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회문제에 눈을 뜨다
문 대표의 20대는 앞서 소개한 활동들을 비롯하여 당시 건전가요 운동을 펼치고 있던 ‘대한노래부르기중앙회’ 전석환 회장으로부터 대구를 대표한 지도자로 위촉받아 그는 전국을 누비며 건전가요 지도활동에 힘을 보태었다. 또한, 대구YMCA 청소년지도자 활동을 통하여 지도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학습과 어린이, 청소년 수련활동 지도 경험을 비롯한 문 대표의 수많은 대학 시절 경험은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 시기였다. 이는 훗날 문 대표에게 MBC 음악 PD, YMCA 총무, YMCA 간사, 모 기업 전무 등 다양한 러브콜의 기회로 이어졌다. 그러나 졸업 후 군대 영장을 받아놓은 문 대표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군 제대 후 전석환 회장의 부름에 오랜 시간 심사숙고 끝에 서울 본부에 가기로 하고 거처를 옮겨 노래 부르기 운동을 직업 삼아 본격적으로 활동해왔다. 그로부터 2년 후 전공분야인 실크의류 제조업체인 삼구통상(주)에서 인력난 극복과 함께 당시 5백여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프로그램 담당자가 필요하여 경력 많은 문 대표가 특별 초빙되기도 하였다. 이 후 문 대표는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되는데, 고 강원용 목사님의 ‘크리스천아카데미’와 연이 닿아 새로운 분야의 소임을 수행하게 된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동안 교회와 농촌, 여성, 노동 등 사회의 제 문제에 눈을 뜨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고, 특히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면서 재충전을 위한 기회를 가지고자 하여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레크리에이션에 고천문을 도입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문 대표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본격적 활동을 시작한다. 레크리에이션 지도자로서 강좌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하는 때가 1984년 전, 후를 기점으로 하는 이때이다. 초기에 레크리에이션을 시작했기에 많은 후배가 생겨났고, 그 인재들을 육성하며, 강의에 열심히 불리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강의의 주된 주제는 일체감, 공동체, 한마음이었다. 합창과 레크리에이션을 시작으로 점차 문 대표의 교육 영역을 넓혀 한마음 체육대회, 미니 올림픽 대회 등을 하며, 조직이 하나 되는 것에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여 레크리에이션 중의 하나인 촛불의식, 캠프파이어 진행을 맡았다.
당시는 북, 장구, 징, 꽹과리 사물놀이 등의 전통놀이를 교육으로 도입하는 시기였는데, 문 대표는 전통 방패연으로 하는 매니지먼트 게임을 개발하였다.
또한, 캠프파이어 프로그램에서는 문 대표만의 독특한 형식을 도입했는데, 캠프파이어 의식할 때, 하늘에 고하는 고천문을 낭독하고 고천문 용지에 직접 불을 붙여 태우는(소지) 방식을 도입해 캠프파이어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크리스천아카데미’에 재직하며 우리 사회의 모순된 현상을 직시하고 이에 맞서는 실천 방안을 고민하던 중 80년대 민요연구회, 민족음악협의회, 민예총 등의 진보적 문예활동을 통하여 문화운동에 동참해왔다. 당시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민요연구회 창립발기인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운영위원과 회장을 역임하며 ‘돌아가리라’, ‘그리움 가는 길 어디쯤’, ‘빈쇠전’, ‘어기야디야’ 등 창작민요 작곡에 열정을 받치며 노래운동을 전개하였다.
독특한 색깔의 공동체 프로그램
젊은 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해오는 동안 계속되는 변화에 잘 적응하며 90년대 제2의 전공인 교육과 취미활동인 문화예술이 결합한 내용과 형식을 바탕으로 공동체개발원을 설립하고, 그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교육에 적용한 공동체 프로그램 중심의 교육 사업을 시작하였다. 80~90년대 왕성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색깔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80년대부터 틈틈이 대학에 출강하며,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로 다시 대학에 몸을 담게 된다.
문 대표는 2010년 8월에 하남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부름을 받아 열심히 소임 중이며, 하남역사박물관을 새로 편입하여 지난 3월에 하남문화재단으로 승격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 이제 그는 삶 대부분이자 취미이기도 한 문화예술 분야에 정착했다. 지난 2년의 임기 중에 신명을 받친 결과 재임을 눈앞에 두고 있다. 70~90년대 왕성한 공동체 프로그램 활동으로 모두를 하나 되게 했던 그의 눈에는 문화예술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글+사진 김현지 기자
-
[홍석환] 7. 왜 기업은 망하는가? - 내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임원이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고, CEO의 추종자가 되어 버리면 그 임원을 바라보는 직원들도 어느 순간 누군가 구제해 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시키는 일에만 충실한 경쟁력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조직과 구성원의 역량을 강화하여 회사의 성과를 창출하고,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사람이 ‘임원’이다. 임원이 자신의 역할을 모른다면, 그것은 회사와 구성원 모두에게 재앙이다.
[사례 1] 모든 길은 CEO에게 통한다
경영층이 모여 회사의 비전 달성 방안 마련을 위한 회의를 한다. 이 회사는 ‘3년 후까지 현재의 매출을 2배로 늘리자’는 과감한 비전을 발표했다. 회사의 사업은 외부 여건의 변화가 없는 한, 매출이 크게 변동되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CEO인 회장 옆으로 각 사업부장이 앉아 침묵을 지킨다. 아무도 먼저 비전 달성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회장은 격한 음성으로 “내가 3년 후까지 매출을 2배 늘리자고 신년사에서 그렇게 강조했으면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느냐!”며 호통이다. 사업부장들의 머리는 더욱 책상을 향해 숙여지고, 그 누구도 안을 내지 못한다. 결국, 이 회의는 2주간 각 사업부장이 전 임원 앞에서 비전 달성 방안을 발표하기로 하고 마쳤다.
그 후 2주의 시간이 흘렀다. 각 사업부장의 발표가 이어진다. 모두가 3년 후까지 투자를 통해 매출을 3배 늘리겠다고 한다. 투자해야 할 금액을 보니 지금 투자하고 있는 금액의 10배가 넘는다. 자금운영계획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없다. 서로가 자신의 계획만 살폈지, 타 사업부와의 연계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답답함이 밀려온다. 사장에게 회의진행을 부탁하고, 잠시 자리를 떠났다가 20여 분 후 자리에 돌아왔다. 그러나 진행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발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사 결정자가 없으면 발표를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사례 2] 무조건 사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경영환경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영전략실의 발표가 끝나고, 어떠한 전략을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었다. 참석한 임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장이 A안을 가져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김 전무는 A안은 이러 이러한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화답했다. 김 전무에 이어, 이 전무도 A안으로 할 때의 기대효과에 관해 이야기했고, 대다수의 임원은 A안으로 가는 듯한 이야기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사장이 A안으로 했을 때의 부정적 측면을 이야기하며 이런 측면에서는 B안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 전무는 “저도 그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A이 실패하면, 회사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지만 B안은 장기적 측면을 고려했기 때문에 중간 점검이 가능하며, 안정적인 우리 산업에 더욱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응수한다. 이 전무도 비슷한 의견을 내며 B안을 지지한다. 어느 순간 A안을 지지하는 임원은 한 명도 없다.
사장이 경영전략실장에게 어느 안을 하는 것이 이익과 위험부담 측면에서 효과적이냐고 묻는다. 사실 경영전략실장은 A안을 1안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B안으로 흐르자 B안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사장이 B안으로 했을 때, 결정적인 결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경영전략실장은 장기적 대안이기 때문에 중간에 점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경쟁사보다 발 빠르게 추진하기에는 불리하다고 이야기했다. 자금적 여유 속 경쟁사보다 빠른 대응에 사장의 결심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업계 2위를 유지해 왔는데, B안으로 가면 영영 2위에 머물게 된다. 사장이 결국 위험부담은 있지만 A안을 택하자고 결정하자, 참석한 모든 임원은 1위가 되자 하며 결의를 다진다.
의사결정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며 마치 싸움을 하듯이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에 CEO의 의견을 따라 좌지우지된다면, 임원은 CEO를 보좌하는 사람일 뿐 결코 보완해 주는 사람은 되지 못한다. 무조건 사장님 말씀이 옳다는 식의 추종은 본인뿐만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바라볼 때, 모두를 망치는 원인이 된다.
임원은 어느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가?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국내 기업 임원들은 ‘검토 및 체크(27%)’,
‘조정 및 합의(26%)’ 등의 업무에 절반 이상의 시간을 투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임원으로서 보다 중요성이 증대되는 ‘전략 구상 및 개발(4%)’,‘학습 및 성장(3%)’ 등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임원의 바람직한 역할은?
민영진 KT&G 사장은 “임원은 원칙에 근거하여 길고 멀리 보는 경영을 통해 조직성과를 창출하는 사람” 라고 임원의 역할을 정의한다. 민 사장이 임원의 역할로 강조하는 것은 3가지다.
첫째, 임원은 방향 설정을 해야 한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원칙에 근거하여 길고 멀리 보는 경영을 해야 한다. 둘째, 일 관리를 해야 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스마트하고 생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직원의 업무수행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하는지 제대로 챙겨줘야 한다. 업무를 통한 직원의 능력개발과 육성, 조직학습에 시간의 70~80%를 써야 한다. 셋째, 사람관리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바뀔 때까지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올바른 가치관을 바탕으로 역량과 열정을 키워 육성하는 것이 리더이지만, 따라오지 못한다면 버리는 것도 리더다.
이렇듯 민 사장은 “궁극적으로 임원의 역할은 조직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임원의 역할은 크게 두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째는 직책에 따른 역할로서, 임원은 담당 조직의 CEO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사장을 보좌하는 것이 아닌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 줘야 한다. 자신이 담당하는 직무에 대해서는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주고,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고민하고 실행을 주도해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임원은 회사를 대표하는 의사결정자로서, CEO가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보완해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는 환경변화에 따른 임원의 역할이다.
임원이라면 미래를 예견하고 역산하여 현재를 이끌 수 있는 전략적 사고를 하고, 담당 직무의 부가가치를 높이며, 성과를 창출해야만 한다.
글 홍석환 KT&G 변화혁신실 실장
-
매일 신선한 우리 먹거리를 책임질 인재여 오라
-
-
사람다운 사람 양성 ‘후마니타스 칼리지’
-
-
뷰티로 취업률 UP! 대입 문이 뻥! 영주권 CATCH!
-
-
자연이 만든 다시 찾고 싶은 곳, 한바다연수원
-
-
웃음의 힘으로 깨끗한 세상 꿈꾼다
-
-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HRD의 역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