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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스테이플스] 5. 지역사회개발을 위한 퍼실리테이션
지금까지 퍼실리테이션은 학교나 조직에서의 변화 주도, 팀빌딩, 회의, 워크숍 등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앞으로는 지역사회의 변화와 같은 넓은 영역으로 그 활용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화, 각종 이해관계의 상충, 지역주의의 한계, 일방적 정부 정책 시행과 이에 대한 지역주민의 반발 등 오늘날 지역사회에는 수많은 갈등이 존재하므로 이러한 갈등상황을 조정하고 공동의 승리를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의 개발과 변화를 위한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커져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퍼실리테이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Bill Staples가 기고한 글을 정리하였다.
1977년, 나는 인도의 Chikhale라는 마을의 개발을 위한 ICA(The Institute of Cultural Affairs International) 인도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Chikhale는 쌀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뭄바이 근처의 외딴 마을이었다. 마을의 미래에 대한 주민들의 꿈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주민들과 우리 팀은 연못 근처의 공터로 가서 작은 팻말을 세웠다. 그 팻말에는 ‘미래의 Chikhale 학교’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2010년, 나는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Chikhale를 다시 방문했다. 그곳에서 나는 2층짜리 큰 학교가 세워진 것을 보았다. 그 학교에서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400명의 지역 학생들이 생활하며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이에 감탄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퍼실리테이션은 지역사회 개발의 ‘끓는 솥’에서 탄생했다. 전 세계의 도시와 마을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의 땅, 사업, 가정, 아이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가치 및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쉽다. 그러나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는 서로 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다른 이와 협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실 지역사회 개발을 통해 ICA가 개발한 것은 바로 그러한 가치, 의견, 감정의 ‘끓는 솥’이었다. 또 가끔은 사람들이 그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는 데 협력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활용된 기법, 도구, 접근법을 집대성한 것이 퍼실리테이션 방법론의 시작이었다.
1970년대부터 발전해온 퍼실리테이션
1970년대, ICA는 전 세계적으로 1만여 개의 타운미팅을 퍼실리테이션 했고,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도록 하는 데 있어서 퍼실리테이션이 큰 효과가 있음을 증명했다. 1970, 80년대의 ICA 직원들과 봉사자들은 미국, 페루, 인도, 케냐, 필리핀, 한국, 일본에서 1천여 개의 지역사회 개발 프로젝트를 퍼실리테이션 했으며, 가능한 모든 상황들에서 새로운 퍼실리테이션 스킬의 효용을 시험했다. 혁신적인 공공기관과 회사들은 퍼실리테이션을 통해 촉발되는 파워와 모티베이션을 발견했고, 즉각적으로 그 가치를 인지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에는 IT, 성인 교육, 코칭, 갈등 조정 및 교육 분야에서 더 많은 접근법들을 가미하여, 퍼실리테이션의 파워와 유연성도 커졌다. 퍼실리테이션은 컨설팅과 비슷하지만, 퍼실리테이터가 중립성을 지키며, 참여자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전문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그들 안에 축적된 전문성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늘날 전문 퍼실리테이터는 정부, 회사, NGO 등에게서 계획을 수립하고, 중요한 결정에 집중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의 많은 요청을 받고 있다.
지역사회 개발의 퍼실리테이션 영역
지역사회 개발은 언제나 퍼실리테이션을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퍼실리테이션은 최소한 아홉 가지 영역에서 지역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왔다. 지역사회 내의 집단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사용하여 그들의 미래를 창조하고 함께 협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퍼실리테이터는 모든 관계자들을 모으고, 모든 이슈가 다루어지도록 하고,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지역사회 개발의 아홉 가지 영역에는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개입에서부터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다양한 수준이 있다.
1. 긴급구호 ? 재난 해결, 식량 구호 등에 나서 고통을 경감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고통을 당한 피해자를 돕기 위해 세심한 퍼실리테이션이 필요하다.
2. 물질적 및 기술적 지원 ? 거주지, 우물, 의약, 등 사회·경제적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가장 필요한 물질적 재정적 자원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지원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퍼실리테이션이 필요하다.
3. 기초 인프라 구축 ? 위생, 식수, 교통, 통신, 교육, 보안 등을 위한 인프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계획 프로세스에서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퍼실리테이션이 필요하다.
4. 공개적 지지 ? 지역사회가 공공 정책에 의해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 혹은 정부 단체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할 때, 퍼실리테이션을 통해 사람들의 지지를 모으고 주목을 끌 수 있다.
5. 개발 교육 ? 성, 주거, 환경, 법적 접근권, 안전 등과 관련해 그들 자신이 갖는 권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퍼실리테이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줄 수 있다.
6. 인적자원 개발 ? 시민 스스로가 역량 개발을 통해 확장된 지식과 스킬을 갖고 실행가이자 리더가 되기 위해, 외부 의존성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지식과 스킬의 전이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가능하게 한다.
7. 자체적 개발전략 수립 ? 지역사회의 집단은 스스로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이슈를 위해 방향성을 결정할 때에 가장 혁신을 발휘할 수 있다. 퍼실리테이션은 이 과정에서 창의성과 동기부여를 높인다.
8. 조직적 역량 강화 ? 지역사회는 그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고, 상호 협력하는 조직 및 구조를 필요로 한다. 퍼실리테이션은 조직 내의 리더십과 협력적 역량을 키우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9. 시스템 개발 ? 지역사회는 그 안팎에서 민간과 공공 부문이 상호작용하며 개발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미래에 지역사회가 스스로 발전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퍼실리테이션은 그 자체로 이러한 복잡성을 안고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앞서 사례로 든 Chikhale의 학교 설립은 ‘기초 인프라 구축’의 수준에서 시작되었으나, 이후 전 지역의 ‘시스템 개발’ 수준까지 발전하였다. 모든 지역사회 개발 계획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믿든 안믿든 간에, 바로 이것이 지역사회 개발에 대한 퍼실리테이션의 파워이다.
현재 내가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퍼실리테이터들이 지역사회 개발 과정에서 학습한 것들을 공유하도록 하기 위해 그와 관련한 정보들을 온라인상으로 모으는 작업이다. 다음 주소에서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정보들이 지역사회 개발을 퍼실리테이션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글 Bill Staples(CPF: Certified Professional Facilitator, CToPF: Certified Technology of Participation Facilitator)
정리 이영석 한국퍼실리테이션센터 대표(ORP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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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5.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향한 선비의 리더십
16세기 한국사회를 지배한 것은 성리학이었다. 조광조(趙光祖, 1482-1519, 호는 靜庵)와 이이(李珥, 1536-1584, 호는 栗谷)는 그 시대 성리학계의 큰 별이었다. 그들 말고도 서경덕과 이황 등 기라성같은 성리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조광조를 스승 또는 선배로서 높이 떠받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이는 현실정치에서 조광조가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하기 위해 정성을 쏟은 것으로 정평이 있다.
조광조는 한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조할아버지 조온(趙溫, 1347-1417)은 태조 이성계의 조카로 조선 건국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개국공신(2등)이 되었다. 조온은 정도전을 살해하는데도 앞장섰다. 잘 나가던 조광조의 집안은 할아버지 조충손 대에 이르러 갑자기 기울었다. 조충손은 안평대군과 가깝다는 이유로 유배형을 받고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조광조의 일생에 하나의 분수령이 된 것은 김굉필(金宏弼, 1454-1504, 호는 寒暄堂)과의 만남이었다. 역시 한양출신인 김굉필은 영남사림의 영수 김종직(金宗直, 1431-1492, 호는 畢齋)의 학맥을 이어받은 대학자였다. 김굉필은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되었다. 그때 조광조는 이 대학자를 찾아가서 제자가 되었다. 그 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김굉필은 사형을 당하였고, 청년 조광조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낙망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 정진한 결과, 조광조는 중종의 조정에 등용되었다.(1515년) 그는 중종의 신임을 바탕으로 개혁정치의 꿈을 한껏 펼쳤으나 왕의 신임은 4년 만에 끝나버렸다. 그리하여 1519년 겨울, 조광조는 38세의 젊은 나이로 사약을 마시고 유배지 능주(전남 화순)에 눈을 감았다.
이렇다 할 죄목도 없이 사약을 받았지만, 그는 죽음을 거부하거나 억울해하지도 않은 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태연하였다. 가족에게 보낼 마지막 편지를 쓸 때도 그의 붓끝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조광조의 죽음은 비참하고 초라했지만, 후세 사람들은 거기서 광명정대한 도덕군자의 참모습을 목격하였다. 이윽고 조광조의 삶과 죽음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이황이나 이이 조광조 같은 석학들에게도 조광조는 감히 다가설 수 없는 사표가 되었다
열정의 리더 조광조의 도덕적 리더십
조광조의 리더십은 도덕성에 토대를 두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뚜렷한 명분이 있었다. 공명정당하지 못한 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도덕성이 높은 선비는 깐깐하기만 하고 추진력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광조는 달랐다. 그에게는 정열이 있었다.
중종에게 경전을 강의할 때도 여간해서 중도에 그만두지 않았다. 중종은 조광조의 열성 때문에 식사시간을 놓치기도 하였고, 피로를 이기지 못해 하품을 하고, 졸다가 팔꿈치가 팔걸이에서 미끄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중종은 조광조의 열성과 달변에 눌려 그가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추진력도 뛰어났다. 반대파의 잘못을 그는 추상같이 질타했다. 적의 실체를 뚜렷이 드러냄으로써 동지를 결집하는 응집력도 탁월하였다. 그는 동지들과 이념을 공유하였고, 그에 배치되는 집권세력을 가차 없이 공격하였다. 정적들에게 조광조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광조에게 인간적 향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동지들과의 우정도 대단하였다. 때때로 그는 한충, 김정 등과 밤새껏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 세 선비는 베개도 하나, 이불도 하나를 사용하였다. 조광조는 벗들에게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고, 그들은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하였다. 과연 그들은 평생 서로를 배신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신의를 지켰다. 그들은 외롭지 않았다
이상주의자 조광조 vs 현실주의자 중종
조광조는 유교적 황금시대의 도래를 확신하였다. 증광문과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는 “공자에게 3년의 기회를 주었더라면 요임금과 순임금이 펼친 중국 고대의 이상정치를 실천할 수 있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황금시대의 구현이 당대에도 가능한 일이라고 믿었다.
이상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조광조는 끊임없이 중종을 설득하고 교육했다. 왕도정치의 성패가 왕에게 달려 있다고 믿어서였다. 중종이한 사람의 위대한 군사(君師), 즉 철학적 군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조광조의 목적이었다. 그는 조정의 도덕 교사였다. 그러나 한 가지 큰 문제가 잠복하여 있었다. 중종이 문제였다. 세종처럼 탁월한 군주라면 모를까 중종처럼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왕도정치의 실현가능성이 적었다.
조광조가 이상주의자였다면 중종은 현실주의자였다. 왕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만한 포부와 능력을 갖지 못하였다. 그가 왕이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왕은 조광조의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왕은 조광조를 배신하였다. 그를 죽인 것은무능한 조선의 왕, 중종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지나치게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길게 바라보고 공적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너무나 드물다. 조광조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이상정치의 실천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이가 우리들 가운데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현실적 욕망으로 가려진 우리의 두 눈을 번쩍 뜨게 할 그의 날카로운 음성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이이의 조화와 실용의 리더십
이이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였다. 실무에도 밝아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지냈다. 일본의 침략을 염려해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였고, 민생을 염려해 사회적 폐단을 파헤친 「만언봉사」를 선조에게 올린 일도 있었다. 이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지양하고 늘 조화를 꾀하였으며, 실용정신에 입각해 나라 일을 정성껏 보살폈다. 그의 개혁안은 조광조의 수정판이었다.
조광조의 학맥을 이은 조선 최고의 엘리트
그는 평생 아홉 번의 과거 시험에 연달아 장원을 차지했다. 1564년(명종 19)의 문과시험에서는 초시, 복시, 전시에서 모두 장원을 기록하였다. 진사시험은 13살 때 합격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문학박사학위를 13살에 획득한 셈이었다. 요샛말로, 이이는 ‘공부의 신’이었다.
이이의 벼슬길은 순탄했다. 조광조와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고속승진을 이어나갔다. 삼십대에 벌써 승정원 동부승지, 우부승지를 역임했고,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사십대 초반에는 이미 장관급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수명이 길지 못해 49세로 세상을 떴다. 그래도 굵직한 벼슬은 다 지냈다. 예문관 대제학, 홍문관 대
제학에 이조와 병조의 판서를 두루 지냈다. 이미 젊은 시절에 사신으로 중국 명나라를 다녀왔으며, 공무로 늘 바빴는데도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소년시절 이이는 조광조의 제자 백인걸에게 수학하였다. 그리하여 이 수재는 조광조를 가슴에 품고 청년시절을 보냈다. 23살에는 예안 (현재 경북 안동)으로 당대의 석학 이황을 찾아가 성리철학에 관하여 심오한 문답을 나눴다. 그때 이황은 이이의 학식에 감탄하여 “후생이 가외(可畏)다(즉 후배라도 두려워할만하다)”고 말하였다고 전한다. 이이의 철학적 깊이는 이미 노대가를 감동시킬 만하였다.
조광조를 극복한 이이
조광조와 이이에게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조광조는 실무에 종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이는 실무에 두루 밝았다. 특히 그는 인사실무에 정통하였다. 철학자였지만 군사적인 사무에도 밝아 병조판서까지도 지냈을 정도다.
더욱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조광조는 현실을 뜯어고쳐 당장에 성리학적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이는 지금은 개혁을 시작할 때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경장(更張)을 주장했던 것이다.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경장하는 것이 옳다. 그대로 놔두면 조선왕조는 썩어
무너진다. 날마다 어느 한 구석이라도 뜯어고치자”는 것이 이이의 생각이었다.
이이는 복잡한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문제점을 일일이 기록하여 개선책을 제안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거칠게 접근한 것이 아니라, 실천가능성을 염두에 둔 구체적인 개혁방안을 궁리하였다. 그는 조광조처럼 불타는 정열로 덤벼들지 않았다.
이이는 차분하면서도 집요했기 때문에 퍽 옹골찼다. 동시대의 석학 이황은 현실문제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이황은 조광조가 보여준 실패의 역사를 통해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또 자신에게 주어진 천품은 한 사람의 성리학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황은 항상 몸가짐을 엄숙 단정하게 지키며 성리철학을 궁구하여, 제자들에게 진리를 전해주는 것에 만족하였다. 이황은 시대의 양심이었고, 타고난 천성대로 산 순수하고 지고한 인물이었다.
이황에 비하면 이이는 실천적이고 기민했으며 날카로웠다. 그가 쓴 「석담일기」에 그런 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누구도 이이의 날카로운 인물평을 무사히 통과하지 못했다. 이이에게 단점을 들키지 않은 경우가 퍽 드물었다.
경장’을 위한 이이의 헌신
이이는 저술을 통해 조선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였다. 그의 개혁안은 「동호문답」, 「만언봉사」,「성학집요」 등에 실려 있다. 「동호문답」의 핵심은 결국 하나였다. 나라를 옳게 다스리려면 도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광조와도 같은 생각이었다. 「만언봉사」에서는 현실사회의 폐단이 매우 구체적으로 거론
되었다. 그는 민생에 초점을 둔 부국강병을 꿈꾸었다. 끝으로 「성학집요」에서는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의지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이는 자신의 견해를 실천하는 데 보다 큰 관심을 가졌다. 한마디로 그의 리더십은 조화와 실용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현실과 이론을 조화시키되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자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이이는 점진주의자였던 것이다.
점진주의 노선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그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도 있었다. 가령 그는 일본의 침략위협을 깊이 통감한 나머지 ‘10만 양병설’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여러 대신들은 이를 두고 민심을 소란하게 하는 부당한 처사라며 반대하였다. 식견이 높은 유성룡까지도 반대한 바람에 이이의 주장은 좌절되고 말았다. 안타까
운 일이었다.
이이가 제시한 개혁안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오늘날에도 빛을 잃지 않았다. 국가의 기강은 여전히 어지럽고, 관료주의로 인해 민생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매사에 흑 아니면 백만 외치는것이 우리사회의 큰 문제점이다.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였으면서도 시종일관 조화를 추구한 이이가 더욱 그립다. 우뚝 선 성리철학자였으면서도 누구보다 실무에 밝았고, 굵직한 현안을 한 가지씩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를 도모하였던 그에게서 배울 점이 너무도 많다.
글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전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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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 사파드네커] 채용툴로 활용하는 링크드인, 200% 활용법
전 세계 200여 개의 국가에서 1억 6천만 명 이상의 사용자와 2010년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의 경영진들을 회원으로 보유하고 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인 링크드인이 직장인뿐만 아니라 대학생, 전문가 집단 등 다양한 계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링크드인은 특히 인사담당자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이다. 인사담당자는 고급 인재를 찾을 수 있으며, 인재는 더욱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디파 사파트네커(Deepa Sapatnekar) 링크드인 한국?인도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말하는 파워 인맥 구축, 채용 툴로 활용 가능한 링크드인의 무한 매력과 활용 팁을 살펴본다.
2011년 12월 링크드인이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국내에도 이미 수십만 명의 전문 인력들이 링크드인 상에 개인 프로필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여 개 이상의 링크드인 그룹이 한국어로 개설되어 있다. 또한, 국내 대기업들 또한 링크드인 상에 회사 페이지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많은 한국 기업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는 물론 미주, 유럽 및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고급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링크드인은 넓은 글로벌 네트워크 기회 및 자원을 이용해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링크드인은 온라인에서 고객들이 프로필을 공개하고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했다. 링크드인의 인맥을 통해 전문직 종사자들은 새로운 직장과 사업 기회 및 다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으며, 또한, 링크드인은 전문직 인력들이 신뢰가 기반이 된 환경에서 과거나 현재의 동료, 고용주, 고객, 파트너들과 뜻이 맞는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과 쉽게 소통하도록 해준다. 나아가 그들은 그룹에 참여해 활동함으로써 서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마케팅 담당자들 또한 영향력 있는 전문 인력의 세계 최대 규모의 전문 네트워크인 링크드인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현재, 100만 개 이상의 기업들이 링크드인에 ‘회사 페이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들의 브랜드와 상품을 더 잘 관리할 뿐만 아니라 링크드인의 고객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지인과 동료를 연결해 일상 등을 공개하는 인맥기반형 SNS라고 할 수 있고, 트위터는 지인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글을 받아보고, 몇 가지 관심사에서 활동하는 SNS지만, 링크드인은 전문가 인맥형성 SNS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고급 인력 채용, 링크드인으로 고민 해결
“링크드인의 가장 큰 매력은 전문가와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과 구인?구직 비즈니스에 있습니다. 인사담당자들은 ‘수동적인’ 구직자 중 현직에 있는 고급 인력들을 찾기 위해 링크드인의 방대한 인적 자원망을 이용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수동적 후보자(잠정적 구직자)들은 적극적으로 새 직장을 찾지 않을 수도 있으나, 오히려 핵심 인력이 되는 최적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사담당자는 공고를 통해 자신의 기업에 관심 있는 구직자에게 지원을 받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링크드인에서는 이와 함께 적임자를 인사담당자가 직접 검색할 수 있다. 적임자의 경력, 과거 프로젝트 참여 여부, 현재 상태, 관심 분야, 인맥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색할 수 있으므로 원하는 인재를 적절하게 검색하고, 입사를 제안할 수 있다.
또한, 채용 담당자와의 직접적인 연결 및 개인 PR이 가능하고, 다양한 회사에 대한 팔로잉이 가능하며, 자신의 희망 업체와 직업에 대한 북마크 기능이 더해져 비즈니스 전문 네트워크로써 활용될 수 있다.
“링크드인의 프로필은 이력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카테고리가 세분화되어 있으며, 해당 유저의 경력과 관심 분야 등을 모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구인 구직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프로필을 100% 완성하면, 링크드인 검색에서 상위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인맥 구축 및 인사담당자의 눈길을 끄는데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링크드인의 채용 서비스는 채용정보 조건 저장이 가능하므로 메일로 검색결과를 보내주고 있어서 365일 상시 구직활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디파 사파트네커가 전하는 링크드인 활용 Tip!
1. 자신만의 고유 프로필을 만들어라
링크드인 프로필은 잠재 고객, 직원, 업계 파트너가 여러분을 찾을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링크드인 공개 프로필의 고유 URL 설정을 통해 자신의 성과 이름을 하나의 단어로 조합하여 링크를 편집하게 되면(예. AlexLim), 당신의 프로필은 웹 검색 결과 최상위에 나타나게 된다.
2. 프로필을 100% 완성하라
간단한 프로필 및 경력 사항을 모두 완성해야 한다. 자신의 프로필에 최소한 한 개의 경력 사항을 올렸을 경우, 잠재적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 일람(조회) 가능성이 12배 높기 때문. 여러분의 프로필에 고객들이 검색할 만한 핵심어 및 어구와 보유 기술도 포함하고, 사진을 올리는 것도 필수다. 사진이 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일람(조회)될 가능성이 7배 높다.
3. 정기적으로 상태를 업데이트하라
정기적인 상태 업데이트를 통해 당신의 현황과 사업의 진행 사항을 알리고, 신상품 소개, 흥미로운 기사 게재, 고민 중인 비즈니스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 모색에 있어 상태 업데이트를 활용하라. 트위터와 링크드인 계정을 연동하여 양쪽으로 업데이트가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하면 효과는 더 확실할 것이다.
4 가까운 지인 중 최소 50명과 인맥을 맺어라
최소한 50명의 직원, 고객, 비즈니스 파트너, 친구, 가족 등과 인맥을 맺게 되면, 사업 발전에 대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개인 또는 회사와 연락을 취할 경우 도움을 줄 수 있는 1, 2, 3촌의 인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메일 주소록에서 지인 찾기’를 활용하면 간단하다.
5. 인맥을 통해 추천서를 요청하라
추천서를 통해 직업 신뢰도를 향상하고 당신의 프로필을 읽는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추천서에 언급하면 좋을 주요 사항을 미리 알려준다면 더 좋을 듯.
6. 그룹활동으로 정보를 파악하라
당신이 몸담은 업계 또는 국가와 관련된 그룹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를 통해 잠재 고객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인맥을 형성할 좋은 기회가 된다.
7. 인재 검색도 쉽고, 빠르게
스타급 영업사원을 채용하고 싶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를 찾고 싶을 때, 링크드인의 ‘고급 사람 검색(Advanced People Search)’에 직위(예: 광고업계 부사장), 회사명(예: RIM), 심지어 우편번호를 입력하여 찾고자 하는 사람을 쉽고 정확하게 검색할 수 있다.
8.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사용하라
링크드인 안드로이드, 블랙베리, 아이폰 등을 사용하여 이동 중에도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회의 시간이 촉박한데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면 앱을 통해 상대방의 프로필을 확인해 볼 수 있고, 앱을 활용하여 컨퍼런스 및 행사에서 만나게 될 상대방과 서로 아는 인맥을 찾아 소개 및 대화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9. 다양한 정보 소스를 활용하라
링크드인에 매일 접속하여 여러분의 인맥과 그들의 활동에 대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링크드인 Today에 매일 올라오는 기사를 읽고 업계 소식에 항상 앞서 나갈 수 있으며, 링크드인 Signal을 통해 여러분의 관심 주제 또는 브랜드에 대한 공개 상태 업데이트를 확인할 수 있다.
글 김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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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근] 교육과 현장 밀착, 중소기업 HRD 활성화에 주력
중소기업은 전체 사업체 수의 99퍼센트, 전체 근로자의 8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전체 고용 및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HRD는 여건상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 종사자의 희망서포터, 강성근 중소기업인력개발원 원장이 대기업과의 HRD 격차를 줄이기위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벌이는 다양한 노력을 담았다.
대기업에 비해 HRD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계 내에서도 HRD의 중요성을 인지한 기업이 늘고 있다. 특히 혁신형 중소기업, 즉 범용기술이 아닌 고기술 사업을 펼치는 중소기업에서 HRD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강성근 원장은 이에 대해 ‟이런 기업일수록 인재유치가 중요한데, 그 해답을 HRD에서 찾았다고 볼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하며,중소기업의 HRD는 무엇보다 최고경영자와 고위관리자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EO의 역량 자체가 바로 중소기업의 기능과 성과를 나타내는 상황이며, CEO의 역량과 인식에서부터의 차이가 조직 내 하부구조에 대한 인적자원개발의 수요 구조를 결정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에 중소기업 CEO를 위한 HRD가 중소기업 HRD 활성화의 큰 축을 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 종사자의 희망 서포터
이를 위해 강 원장은 중소기업 CEO의 역량향상과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최고위과정, 차세대 가업승계 교육과정 등 양질의 CEO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중소기업 종사자의 희망 서포터를 자처하고 나섰다. 특히 중소기업인력개발원이 올해로 개원 15주년을 맞아 강 원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중소기업 CEO부터 현장 실무자, 중소기업 취업준비자까지 중소기업 관련자들 연 105만 3천여 명을 대상으로 현장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등 명실상부한 중소기업 인재양성의 메카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선진국에 비해 직업교육훈련 투자가 저조하고, 대중소기업 간 HRD 격차가 심한 우리나라 근로자에 대한 교육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 핵심직무능력 교육, 수출기업역량강화 교육 등의 정부지원 교육과 기업별 맞춤형 특화과정 등을 통해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필요한 교육들을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대기업과의 HRD 격차해소를 위해 관련 사업에 대한 정책적 사안등을 정부에 제시하고, 협의하여 개선하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중소기업에서 요구하는 교육훈련 수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 개발원 직원들에 대한 역량 강화와 새로운 HRD 트렌드 등의 지식 함양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교육과 현장이 밀착되는 HRD 강조
강 원장은 ‟중소기업의 인재육성을 위해서는 기업이 직접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중에는 많은 훌륭한 교육기관이 존재하지만, 각 개별 기관이 해당 직무별로 커스터마이징된 교육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사실상 많지 않은것 같다”고 현 상황을 꼬집었다.
‟기업 내에서 교육, 인재육성의 목표는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므로 교육 내용이 업무의 특성을 잘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인재육성의 기본은 업무 현장에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거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 원장은 ‟현장을 교육으로 가지고 와야 한다”는 해답을 제시했다. 교육과 정의 내용, 그리고 강의장에 현장의 문제와 현장의 사람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교육생을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중소기업 HRD에서 경영자와 조직이 더 강조해야 할 부분은 바로 교육과 현장이 밀착되는 것입니다. 교육기관은 궁극적으로 해당 기업이 필요로 하는 특화된 교육 내용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틀을 제공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직무교육은 기본, 업무능력 향상 위한 교육과정 개발
사실 강 원장은 오랫동안 HRM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해 왔다. 그래서 평소 조직에서의 핵심인재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핵심인재의 개발과 활용이
사업성과와 직결된다는 생각으로 HRD 업무를 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강 원장이 생각하는 인재의 자질은 무엇일까. 인적자원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 풍부한 강 원장이기에 더욱 그 답이 궁금해진다.
‟어떤 문제에 대해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열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창의성과 열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Timely와 Quality, 즉 때와 질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강 원장이 강조하는 Timely와 Quality는 본인의 업무에 대해 혹은 새로 지시받은 프로젝트에 대해 상사, 고객이 만족할 만한 아웃풋을 내면서 기한 내에 마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때’와 ‘질’을 갖춘 인재여야 창의성과 열정을 발현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사실 이런 능력은 꾸준한 교육훈련을 통해 갖추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직무교육뿐만 아니라 성과창출을 위한 조직활성화 과정, 효율적 업무를 위한 스마트워크 과정 등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HRD 시장생태계 형성, 운영 이뤄져야
강 원장은 중소기업 HRD 활성화를 위해서 ‟기업, 근로자, 전체시스템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업 차원에서는 중소기업 사업주와 관계자의 HRD 인식 제고, HRD 인프라 강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근로자 차원에서는 교육훈련 필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 교육훈련을 위한 시간 확보, 교육훈련비 부담 해결이 문제다.
또한, 중소기업 HRD 생태계 개선, 중소기업 특성에 적합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보급 및 활용성 제고 등이 전체시스템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사실 개별 기업과 근로자, 직업교육 훈련기관만으로 작동하는 HRD 시장은 중소기업 전반의 HRD 활성화를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시장 친화적이면서도 전체 중소
기업의 수요에 부합하는 HRD 시장생태계를 형성하고 운영하는 중심에 중소기업사업주 단체가 자리잡고, 주어진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계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
입니다.”
글+사진 김보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