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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티오더 HR총괄 디렉터] HR 커리어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글 싣는 순서1. 스페셜리스트 vs 제너럴리스트, 이제는 잘못된 질문이다2. HR 커리어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3. 그렇다면 어떻게 프로듀서형 인재로 성장할 것인가과거의 HR은 각 영역에서 복잡하고 정교했으나 지금 HR 제도들은 점점 단순해지고 있고 또 유연해지고 있다. HR담당자들에게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지식 대신 본질과 철학, 문제 해결 관점에서의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IT 툴의 발달과 AI는 언급한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 수작업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처리하던 일들이 자동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HR 커리어 개발의 지형도 자체가 바뀌었다. 이제 HR담당자들은 단순해진 제도 위에서 통찰력을 발휘하며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필요한 리소스를 유연하게 활용할 줄 아는 프로듀서형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과거의 HR 커리어 개발은 ‘얼마나 많은 제도와 프로세스를머릿속에 담고 있는가’로 측정되었다. 그때는 그게 맞았다.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그만큼의 전문 지식이 필요했고,그 지식을 쌓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됐기 때문이다."과거의 HR은 복잡한 지식의 집합이었다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HR의 각 영역은 제법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를 자랑했다. 채용에서는 인재상 정의부터 역량 모델링, 다양한 검증 기법들이 있었고, 대규모 공채 설명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문 영역이었다. 평가는 또 어떤가. MBO니 KPI니 하는 지표 체계에, 다면평가니 역량평가니 하는 복잡한 양식들과 프로세스가 존재했다. 직급별로 다른 평가 항목을 설계하고, 부서별 특성을 반영한 가중치를 조정하며, 상대평가 비율을 맞추는 작업은 그 자체로 전문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보상 영역은 더했다. 기본급 테이블에 직급별 호봉, 그 위에 수십 가지 수당이 얹혀졌고, 각각의 산정 방식과 지급 조건을 알아야 했다.이런 환경에선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커리어가 필수였다. 각 영역의 지식과 노하우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제도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신입사원이 채용팀에 배치되면 최소 1년-2년은 그 영역의 룰을 배우는 데 쓰였고, 평가나 보상을 담당하는 팀으로 옮기면 또다시 새로운 전문 지식을 습득해야 했다. 당시의 HR 커리어 개발은 ‘내가 얼마나 많은 제도와 프로세스를 머릿속에 담고 있는가’로 측정되었다. 그때는 그게 맞았다. 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그만큼의 전문 지식이 필요했고, 그 지식을 쌓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단순화, 유연화, 통합화의 물결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HR 제도들은 점점 단순해지고 유연해지고 있다. 평가는 복잡한 지표 체계보다는 피드백 중심으로, 연 1회-2회 정기평가보다는 상시 평가로 바뀌고 있다. 과거처럼 10개가 넘는 평가 항목을 채점하고 가중치를 계산하기보다는, 분기마다 간단한 체크인 미팅을 하고 필요할 때마다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채용은 화려한 공채 설명회를 열거나 인재상을 검증하는 형태의 채용보다는, 실제 직무 전문성을 가진 경력직 위주의 채용으로 전환되고 있다. 보상도 마찬가지다. 수십 개의 수당 항목은 기본급과 인센티브, 스톡옵션 정도로 정리되고, 복잡한 급여 테이블 대신 페이밴드 방식으로 단순화되는 추세다. 직급 체계조차 연공서열 기반에서 포지션이나 레벨 기반으로 바뀌고 있다.이 변화를 자동차 산업에 비유해보자. 내연기관 시대의 자동차 정비사는 엔진, 변속기, 배기 시스템 등 복잡한 기계 구조에 대한 깊은 전문 지식이 필요했다. 진입장벽도 높았고, 전문가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배터리나 모터 같은 핵심 부품의 본질은 더 중요해졌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단순해졌고 수리 지식 자체의 진입장벽은 낮아졌다. 복잡한 기계 지식보다는 전기 시스템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HR도 마찬가지다. 형식적, 절차적인 지식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고, 그 대신 본질과 철학, 그리고 문제해결 관점에서의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왜 우리 회사는 이런 평가 방식을 쓰는가?’, ‘이 보상 구조가 우리 조직문화와 맞는가?’, ‘채용에서 정말 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조직 구조와 기술이 만든 변화직무 운영 방식도 이런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과거처럼 채용팀, 평가팀, 보상팀으로 깔끔하게 나뉘기보다는, 특정 사업부나 조직을 담당하는 HRBP 형태로 재편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명의 HRBP가 담당 조직의 채용부터 평가, 보상, 조직개발까지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개발팀에서 사람이 필요하면 채용팀에 요청하고, 평가 시즌이 되면 평가팀이 개입하고, 급여 문제가 생기면 보상팀에 문의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개발조직 담당 HRBP 한 명이 이 모든 이슈를 통합적으로 보면서, 채용-온보딩-성과관리-보상-리텐션까지 일관된 관점에서 지원한다.이게 가능해진 이유는 제도 자체가 단순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IT 툴의 발달 덕분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수작업으로 처리하던 많은 일들이 시스템으로 자동화되면서,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 급여 계산은 시스템이 자동으로 해주고, 평가 양식도 온라인으로 배포되며, 채용 공고도 버튼 클릭 몇 번이면 여러 채널에 동시에 게시된다. 최근에는 AI 기술까지 더해지면서 생산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채용 공고 작성, 직무기술서 초안 마련, 면접질문 생성 같은 작업들을 AI가 보조하면서, HR담당자는 더 본질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력서 스크리닝도 AI가 1차로 해주고, 면접 일정 조율도 자동화 툴이 처리해준다.결국 HR 커리어 개발의 지형도 자체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복잡한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쌓는 게 커리어 성장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단순해진 제도 위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과, 필요한 리소스를 제때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제도를 외우고 있는 사람보다,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제도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가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프로듀서형 커리어 개발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HR 제도 자체가 점점 단순해지고 있고, 고품질 IT 툴 및 AI가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생산성을 높여주고 있는 세상에서HR담당자들은 통찰력을 발휘하며 조직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필요한 리소스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프로듀서형 인재가 돼야 한다."김동현 디렉터티오더(t'order) HR총괄. 13년 동안 HR, 경영관리, 법무, PR, PI 영역 등을 담당했고, 현대차그룹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토스, 야놀자, 클래스101 등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근무했다. 초기 팀빌딩, 경영 악화 턴어라운드, 급격한 성장에 따른 이슈 등 다양한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회사에 조언도 하고 있으며 브런치에서 ‘이드의 스타트업 HR 모험기’, ‘취중잡담’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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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만 삼성서울병원 인재개발팀장] 경험학습과 변화 도전: 배움을 행동으로 전환하는 마지막 퍼즐
글 싣는 순서1. 학습민첩성의 시대: AI 시대에는 학습 속도가 경쟁력이다2. 자기 인식: 탁월한 성과는 ‘나를 아는 힘’에서 시작된다3. 성장 의지: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의 지속력 공식4. 열린 사고: 관점 전환과 질문의 힘이 혁신을 만드는 이유5. 경험학습과 변화 도전: 배움을 행동으로 전환하는 마지막 퍼즐직장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많은 사람이 비슷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나는 분명 다양한 경험을 해왔는데, 왜 성과나 성장의 폭은 예전 같지 않을까?”라는 질문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해왔지만 커리어의 정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흔히 경험의 ‘질’이나 ‘규모’를 떠올린다. 더 큰 일을 맡아야 하고, 더 어려운 과제를 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오히려 경험이 많을수록 성장이 느려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자주 나타난다. 일은 점점 익숙해지고, 문제 해결 속도는 빨라지지만, 배우고 있다는 느낌은 점점 희미해진다. 경험이 쌓였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부터는 도전의 이유가 아니라, 변화를 미루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판단이 조용히 자리 잡는 순간, 성장은 서서히 멈춘다.문제는 경험의 양이 아니라, 경험을 다루는 방식이다. 같은 환경, 같은 업무를 겪고도 어떤 사람은 분명한 성장을 만들어내는 반면, 어떤 사람은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며 제자리에 머문다. 경험은 자동으로 학습이 되지 않고, 학습은 자동으로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경험이 성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험학습과 변화 도전이 중요해진다. 이는 개인의 학습이 실제 결과로 이어지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자, 앞선 성장 요소들을 현실에서 완성시키는 퍼즐이다. 관련해서 필자는 경험을 성과로 전환하기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같은 환경, 같은 업무를 겪고도 어떤 사람은 성장하지만어떤 사람은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며 제자리에 머문다.이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학습과 노력을 바탕으로경험을 성과로 전환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첫째, 경험을 학습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단순히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성장하지 않는다. 경험을 학습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이 과정을 ‘경험학습’이라고 하며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경험’인데 개인의 행동과 생각, 감정이 포함된다. 2단계는 ‘성찰’인데 경험하는 도중이나 이후에 그 내용을 돌아보며 무엇을 배웠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3단계는 ‘결과’인데 경험이 성찰을 통해 변화로 연결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김 과장이 발표하면서 실수를 했는데, 그 경험을 돌아보며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분석한 다음 부단한 연습을 통해 발표 실력을 향상시켰다면 김 과장은 경험학습을 통해 성장한 것이다.둘째, 경험을 성찰하는 것이다. 성찰은 단순한 반성이 아니라, 경험을 해석하는 작업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어떤 판단이 효과적이었는지, 무엇이 한계를 만들었는지를 차분히 돌아보는 과정이다. 필자는 성찰 방법 가운데 ‘사후 검토(after action review)’를 소개하고자 하는데 어떤 업무가 끝나면 ‘기대했던 결과는 무엇인가?’,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무엇인가?’, ‘무엇이 잘 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부분을 개선할 수 있고, 그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토론하는 방법이다. 사후 검토에서 중요한 부분은 과거의 잘못을 비난하지 않는 가운데 미래의 개선 방안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 해석이라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성공 경험에도 성찰은 중요하다. 성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원인을 해석하지 않으면 재현 가능한 역량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실패 경험을 회피하지 않고 분석할수록 다음에 하는 선택의 질은 높아진다. 성찰 없는 경험은 반복을 만들고, 성찰이 있는 경험은 성장을 만든다.셋째, 피드백을 보약으로 생각한다. 경험학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들 중 하나는 피드백에 대한 방어적 반응이다. 많은 사람이 피드백을 평가나 비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장하는 사람들은 피드백을 자신들의 맹점을 알려주는 보약으로 인식한다. 아무리 좋은 피드백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그렇기에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특히, 스스로 보지 못했던 패턴을 드러내는 피드백일수록 학습 가치는 높다. “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까?”, “이 피드백이 말해주는 나의 반복 패턴은 무엇일까?”를 묻는 순간, 피드백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의 재료가 된다. 피드백은 입에는 쓰지만 건강에는 좋은 보약과 같다. 처음에는 마음이 쓰리지만 미래를 향한 성장에는 도움이 된다.넷째, 안락지대의 편안함에서 벗어난다. 사람들은 익숙한 환경을 선호한다. 편안한 안락지대여서 그렇다. 일이 익숙해지고 실수가 줄어들면 성과는 안정되지만, 배움의 밀도는 급격히 낮아진다. 안락지대는 안전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큰 정체를 만든다. 경험학습은 기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 순간,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는 역할과 과제를 만날 때 다시 작동한다. 의도적으로 익숙함을 깨는 선택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인공지능을 포함한 기술의 발전은 현재의 안락지대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안락지대를 벗어나는 연습을 시작하면 어떨까? 관심 있는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업무를 경험하거나 현재 업무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들을 실천한다면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다섯째, 도전을 즐긴다. 도전은 실패 가능성을 동반하기에 회피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은 도전을 위협이 아닌 학습을 검증하는 기회로 인식한다. 그리고 도전의 크기보다 도전의 빈도가 중요하다. 작은 도전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다시 성찰과 학습으로 연결할 때 성장의 속도는 빨라진다. 아울러 도전을 즐긴다는 것은 실패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실패 속에서도 배움을 찾을 수 있다는 신뢰를 갖는 것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실천은 각각 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경험을 학습으로 연결하고, 성찰을 통해 의미를 추출하며, 피드백으로 시야를 넓히고, 안락지대를 벗어나 도전할 때 경험은 비로소 성장과 성과로 전환된다. 이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경험은 반복되지만 정작 필요한 성장은 멈추게 된다.HRD 관점에서 보면, 경험학습과 변화 도전은 개인의 태도 차원의 문제로만 남겨둘 수 없다. 경험은 조직 구성원을 현장에 배치한다고 저절로 학습이 되지 않는다. 성찰을 촉진하는 구조, 피드백이 안전하게 오가는 환경,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따라서 HRD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역할을 넘어, 경험이 어떻게 해석되고 다음 행동으로 연결되는지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경험학습과 변화 도전은 개인의 성장전략을 넘어, 조직이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진화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는 핵심적인 기준인 까닭이다.지금까지 5회에 걸친 연재는 학습민첩성을 갖춘 패스트 러너의 다섯 요소를 단계적으로 살펴보는 여정이었다. 이 여정을 되짚어보면 왜 지금 학습민첩성이 중요한지에서 출발한 다음,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탁월한 성과를 위한 방향을 세우고, 성장 의지를 골자로 지속성을 만들고, 열린 사고로 관점과 질문을 확장하며, 경험학습과 변화 도전을 통해 가능성을 실제 성과로 연결하는 방법을 살펴봤다. 언급한 다섯 요소는 각각 독립적인 역량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며 작동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런 만큼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성장은 멈춘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성장하는 인재가 되고 싶다면 민첩하게 변화를 파악하고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패스트 러너가 되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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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성우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관대: 나의 몫을 너그러이 내줄 수 있는 어른의 넉넉함
글 싣는 순서1. 존중: 함부로 훈수 두지 않는 어른의 태도2. 책임: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사람을 책임지는 자세3. 관대: 나의 몫을 너그러이 내줄 수 있는 어른의 넉넉함어른다움은 자기 몫을 지키는 데만 있지 않다. 때로는 정당한 나의 몫도 나누어 주고 때로는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도 용서할 줄 아는 관대함이 참된 어른의 품격을 만든다. 관대함은 유약함이 아니라 여유에서 나오며 손해가 아니라 더 나은 관계를 위한 큰 걸음이다. 함께 살아가는 삶에는 서로의 나눔과 용서를 가능하게 해주는 넉넉한 그릇이 필요하다. 어른다운 어른은 바로 그 여유를 자기 안에 길러낸 사람이다. 더 많이 움켜쥐는 대신 더 많이 내어줄 줄 아는 것, 그리하여 더 넓은 세상을 함께 얻는 것,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어른의 넉넉함이다.어른다운 삶에 꼭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관대함, 즉 나의 몫을 너그럽게 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다. 우리는 각자 정당한 권리로 주어진 ‘자신의 몫’을 지키며 살아간다. 자기 몫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일 수도 있고 계약으로 얻어낸 시간이나 공간일 수도 있으며,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을 기본적 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늘 서로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 몫만 철저히 챙기며 남의 몫은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로는 어려울 때 누군가의 신세를 지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넘치는 몫으로 타인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우리는 더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어 간다.---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기 몫의 확보와 권리의 행사에 사로잡혀 심화된 개인주의 속에서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이런 각박함에서 벗어나려면 더 가진 쪽에서 덜 가진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선순환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대개 사회에서 더 가진 쪽은 ‘어른’이다. 그렇기에 어른의 관대함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관대함은 자신의 몫을 나누는 넉넉함과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너그러움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관대함이나 감사와 같은 덕목이 윤활유가 되어줄 때 비로소뜻대로만 되지 않는 우리의 삶도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다."자신의 몫을 기꺼이 나누어 주는 관대함우리는 각자가 가진 몫을 지키려고 애쓰며 살아간다. 물론 자기 몫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권리란 본래 안 쓰면 만료되어 손해보는 ‘쿠폰’보다는 타인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보호해주는 ‘방패’에 가깝다. 때로는 단지 권리라는 이유로 무조건 행사하는 대신 너그러이 놓아두는 편이 바람직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어느 부자가 가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기한이 되었는데 그 친구가 사정이 생겨 딱 일주일만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했다고 해 보자. 물론 제때 돈을 돌려받는 것은 그 사람의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여유가 있고 친구의 사정은 절박하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단지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는 이유만으로 강경하게 행사할 필요가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함께 얽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권리와 의무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관대함이나 감사와 같은 덕목이 윤활유가 되어줄 때 비로소 각자의 뜻대로만 되지 않는 우리의 삶도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어른은 자기가 가진 권리보다 더 큰 그릇을 가지고 있다. 위의 사례에서도 성숙한 어른이라면 상대의 절박한 사정과 그동안의 우정을 고려하는 넉넉한 그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릇이 큰 사람은 비록 그것이 정당하게 자기에게 속한 몫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더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관대함을 실천한다.하지만 이러한 관대함을 몸에 익히기는 쉽지 않다. 가령 아이들에게 교육을 할 때에도 각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정의를 가르치는 일보다 자기 몫을 내주는 너그러움을 가르치기가 훨씬 어렵다. 가령 생일 선물로 과자를 잔뜩 받은 아이에게 오빠에게도 조금 나누어 주면 어떻겠냐고 묻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내 건데 왜 나눠줘야 해?” 아이가 볼멘 소리로 되묻지만 부모는 대답이 궁색해진다. 만약 그 과자가 애초에 오빠의 몫이라면 “오빠 것이니까.”, “그게 공평하니까.”라고 말하며 권리와 정의의 언어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 것이 맞지만, 그래도 오빠에게 주면 참 좋을 거야.”라고 말하며 설득하기는 훨씬 어렵다. 정의의 감각은 비교적 이르게 배울 수 있지만 관대함은 한층 더 성숙한 어른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도덕에서 내 몫을 기꺼이 나누는 관대함의 덕으로 나아가는 데 어른다운 마음의 핵심이 있다.상대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관대함관대함이 가진 또 다른 얼굴은 ‘용서’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거나 자기 몫을 빼앗기기도 하는 경험을 종종 한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용서할 자격’과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동시에 부여받게 된다. 그럴 때 관대함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는 성숙한 어른의 아름다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용서는 자신의 너그러움을 보여주고 상대의 인격에 남아 있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주는 넉넉한 선택이다. 용서의 볕이 비치는 순간 분노의 괴로움이 녹아내리고 상대의 죄책감도 누그러진다. 그래서 적절한 용서는 나와 너를 함께 살리는 행위가 된다.물론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마음 넓은 사람의 용서가 정의를 무너뜨리는 값싼 면죄부가 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안일한 용서보다 단호한 책임 추궁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가령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상습적으로 폭행당한 학생이 조용히 용서만 반복한다면 가해자의 반성에도 문제의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될지 모른다. 다만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보일 때마저도 권리만을 앞세워 끝까지 용서를 거부하는 태도가 항상 최선의 선택인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 용서하지 않는 것이 나의 권리라고 하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실수는 인간적이지만 용서는 신적이다(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라고 말했다. 서로가 관대하게 용서하는 분위기가 마련된다면 우리는 한 번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생이 나락에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용서를 받으면 죄책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감사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시 은촛대를 훔친 데 대한 미리엘 주교의 너그러운 용서가 없었다면 시련 속에서도 선의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용서는 감사와 성찰의 기회를 주며 동시에 그러한 용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길러준다. 만약 장발장이 차가운 감옥으로 직행했더라면 용서보다는 처벌이 어울리는 좀도둑으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는 용서가 최고의 교육이 되기도 한다.나아가 용서는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는 사람에게도 선물이 된다. 그렇기에 용서하지 않고 상처를 마음에 계속 품는다면 피해자는 분노와 상처를 계속 짊어진 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내게 상처 준 상대를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면 그 상처는 상대의 악의가 아닌 내가 지닌 너그러움의 상징이 된다. 마음 넓은 사람이 마음 편히 살아가는 이유이다. 가해자에게도 감사한 마음으로 새 삶을 시작할 기회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자신의 큰 그릇과 관대함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용서는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려진 것도 아니고 자신의 무력함에 체념한 것도 아닌, 어른의 관대함에서 우러나오는 적극적 용서를 말한다. 그런 의미의 용서는 하는 사람에게도 분노와 상처라는 과거의 사슬을 끊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자유를 선사해준다."관대함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는성숙한 어른의 아름다운 선택이 될 수 있다."진정한 어른이 가진 마음의 그릇결국 관대한 어른은 마음의 그릇이 크고 넓어 자신의 몫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이다. 때로는 자기 몫도 넉넉히 나누고 때로는 남이 자기 몫을 침해해도 너그러이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 몫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성벽은 어느 순간 남과 나누지도 못하고 남을 품어주지도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자기 몫을 지키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기꺼이 내어주고 상대를 너른 마음으로 품어줄 때 우리는 비로소 더 큰 행복을 함께 누리고 나눌 수 있다. 더 많이 움켜쥐는 대신 더 많이 내어줄 줄 아는 것, 그리하여 더 넓은 세상을 함께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어른의 넉넉함이다.엄성우 교수옥스퍼드대에서 철학석사, 듀크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생명윤리과 박사후연구원을 역임했다. 연구분야는 윤리학, 생명윤리학 등이며 주로 좋은 삶에 필요한 덕목과 인간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고, 제15회 세계생명윤리학대회 최우수논문상과 제3회 모하 분석철학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당신에게』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 ‘What is a Relational Virtue?’, ‘Honesty: Respect for the Right Not to be Deceived’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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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 첨단융합학부의 실리콘밸리 거대 전환 프로젝트
초지능·초융합 시대에서 교육은 ‘생태계 체득’으로 진화해야 한다. 관련해서 2024년에 신설된 서울대학교 첨단융합학부는 올해 1월, 5박 7일간의 ‘실리콘밸리 글로벌 연수’를 통해 미래인재 육성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는데, 이번 연수는 대한민국 첨단 산업을 이끌 인재들이 글로벌 생태계와 ‘동기화’되는 과정인 동시에 ‘배움의 전이’가 어떻게 실질적인 혁신으로 이어지는지를 증명한 살아 있는 실험이었다. 우리 산업과 HRD의 다음 페이지는 대학과 기업이 같은 질문 앞에 서서 함께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때 열린다. 그런 만큼 필자는 사전 문제의식 설계부터 빅테크 리더와의 심층 토론, 아이디어톤에 이르기까지 실리콘밸리 글로벌 연수가 일으킨 거대 전환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다.기획 배경: 왜 지금 실리콘밸리인가?서울대학교 첨단융합학부의 탄생 목적은 명확하다. 학문의 칸막이를 허물고 기술과 산업을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의실 안에서의 융합 교육만으로는 현장 감각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다. 우리는 학생들이 기술과 자본, 그리고 인재가 가장 역동적으로 충돌하며 혁신을 만들어내는 현장, 즉 실리콘밸리의 ‘산학연 생태계’를 직접 호흡하기를 바랐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현시점에서, 기술이 어떻게 비즈니스로 전환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실패가 어떻게 거대한 성공의 자산이 되는지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하는 것이 이번 연수의 핵심 기획 의도였다. ---첨단융합학부는 개설 첫해인 2024년부터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연 2회에 걸쳐 실리콘밸리 연수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특히, 참가 대상을 첨단융합학부 소속 학생에 한정하지 않고 서울대학교 각 단과대의 학부생 및 대학원생도 지원할 수 있도록 공개선발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이를 통해서는 ‘함께 참여’를 바탕으로 캠퍼스 전체의 융합적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런 거대 전환(Great Transition)의 경험은 강의실에서는 결코 얻을수 없는 차원의 학습을 학생들에게 선사하고자한 것이다.사전 교육: ‘보는 여행’이 아닌 ‘푸는 여정’으로의 구조 설계HRD 관점에서 교육의 성패는 현장에 도착하기 전 이미 결정된다. 우리는 이번 연수가 단순한 ‘관람’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8주간의 밀도 높은 사전 교육 프로세스를 가동했는데, 문제기반학습(PBL)과 액션러닝 방법론을 접목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 의제를 설정하고 팀 단위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이 프로세스를 밟은 학생들은 방문 예정인 기업들의 기술적 계보와 최근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를 팀별로 심층 분석했는데 단순히 정보를 취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지 리더들에게 던질 ‘Critical Question’을 도출하는 워크숍도 진행했는데, 이 워크숍을 통해서는 “이 기술은 왜 시장에서 실패했는가?”, “엔지니어로서 마주한 가장 큰 윤리적 딜레마는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준비하며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닌 ‘현장을 분석하는 연구자’로서의 관점을 확립했다. 이상의 철저한 사전 설계는 현장에서의 몰입도를 극대화하고 학습 전이를 촉진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제가 되었다.산업 현장에서의 배움: 5박 7일간의 치열한 혁신 탐구와 소통1월 26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발을 내디딘 연수단은 7일 동안 밀도 높은 일정을 수행하며 실리콘밸리의 심장부를 파고들었다. 먼저 학술적 토대를 다지기 위해 UC 버클리와 스탠퍼드 대학교의 D.school, Robotics Lab 등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대학이 어떻게 지역 산업의 엔진 역할을 수행하는지 확인했다. 특히, 현지 재학생들과의 자유로운 토론은 우리 학생들에게 학업적 자극을 넘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 우위와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산업 현장에서의 배움은 더욱 뜨거웠는데 Google, Apple, Meta, NVIDIA 등 컴퓨팅 혁명을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을 방문해 현지 재직자들과 심층 네트워킹 세션을 가졌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기업들의 인재 육성 방식이었다. NVIDIA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직원을 평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파트너’로 대우하고 있었는데 정형화된 성과 지표(KPI)에 매몰되기보다, 예컨대 분기별 정량 평가 대신 프로젝트 단위의 실시간 동료 피드백(Peer Feedback)과 1:1 코칭 세션을 운영하며, 개인의 성장이 곧 조직의 기술적 돌파구로 이어지게 만드는 매우 유연한 성과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우리 HRD 시스템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알려줬고, 학생들은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지식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문화(Culture of Learning)’임을 현지 리더들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연수의 백미는 ‘디자인 씽킹 기반의 아이디어톤’이었다. 학생들은 연수 기간 중 발견한 사회적·기술적 난제들을 조별 주제로 선정하고, Plug and Play(글로벌 혁신 플랫폼 겸 엑셀러레이터) 등 현지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거쳐 솔루션을 제안했다. 낮에는 기업을 탐방하고 밤에는 호텔 로비에서 늦은 시간까지 아이디어를 정교화하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실행의 속도’가 혁신의 본질임을 몸소 체감했다.탐방 교육의 효과: ‘인식의 확장’이 가져온 세 가지 변화이번 탐방 교육의 성과는 메지로(Mezirow)의 전환학습 이론이 말하는 ‘관점의 전환(Perspective Transformation)’ 수준에서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넘어, 학습자의 기존 준거 틀(Frame of Reference)에 균열을 일으키고 새로운 관점을 수용하게 하는 전환의 단초가 마련되었기 때문인데 이런 인식의 확장은 세 가지 변화로 정리할 수 있다.첫째, ‘전공의 경계’를 초월한 통섭적 시각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전공이 인공지능이나 로보틱스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목격하며 진정한 융합형 리더로 거듭났다. 둘째,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학생들은 완벽한 결과물보다 빠른 실행과 피드백이 중요하다는 실리콘밸리의 ‘Fail Fast’ 정신을 이식받았다. 셋째, 자기주도적 학습 동기의 극대화다. 세계 최고의 현장을 목격한 학생들은 이제 스스로 무엇을 더 채워야 할지 통찰하며 명확한 학습 로드맵을 스스로 그려내기 시작했다.맺으며: HRD의 진화, 이제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과 함께실리콘밸리 연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이번 연수는 대한민국의 첨단 산업을 이끌 인재들이 글로벌 생태계와 동기화(Synchronization)되는 과정이자, ‘배움의 전이’가 어떻게 실질적인 혁신으로 이어지는지를 증명한 살아 있는 실험이었다.필자는 지난 2월까지 첨단융합학부의 학생부학장으로서 기업교육의 정수를 학부생 교육에 성공적으로 이식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번 3월부터는 서울대학교 첨단융합 최고위과정(TAIC)의 주임교수로서, HRD 본연의 기능을 극대화한 임원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 TAIC는 첨단 기술의 최신 동향을 경영 현장에 즉시 접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비즈니스 융합형 과정으로, AI·로보틱스 등 핵심 기술을 실제 사업 전략과 연결하는 실전 중심 커리큘럼이 특징이다.이제 실리콘밸리에서 확인한 그 역동적인 혁신의 에너지를, 대학과 기업이 함께 나누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첨단융합학부가 축적해 온 글로벌 네트워크와 교육 방법론은 기업의 인재육성 과제와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따라서 TAIC를 비롯한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 현장의 난제를 대학의 연구 역량과 연결하고, 차세대 리더들이 첨단 기술과 경영전략을 동시에 체화하는 장을 열어 가고자 한다. 혁신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대학과 기업이 같은 질문 앞에 서서 함께 답을 찾아 나갈 때, 우리 산업의 다음 페이지가 열린다.이찬 교수서울대학교 첨단융합학부 교수이자 첨단융합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서울대에서 조직과 리더십, 인재개발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많은 국내외 기업 및 기관을 자문해 왔다. 주요 연구 주제는 AI·디지털 전환 시대에 요구되는 임원의 사고 전환과 HRD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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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중부대학교 정보보안학과 교수] 맞춤형 학습의 그림자: HRD 데이터 활용과 프라이버시 침해의 경계
글 싣는 순서1. 교육 데이터는 안전한가: HRD와 정보보안의 새로운 과제2. 맞춤형 학습의 그림자: HRD 데이터 활용과 프라이버시 침해의 경계3. 역량인가 감시인가: 교육 데이터 기반 인사 의사결정의 윤리와 보안인공지능 전환(AX)과 함께 HRD 분야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초개인화 맞춤형 학습’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이는 과거의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효율성을 극대화하지만, 그 이면에는 프라이버시 침해와 감시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만약 수집된 정밀한 행동 및 생체 데이터가 순수한 교육 목적을 넘어 인사 평가나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할 경우, 학습의 자율성은 위축되고 알고리즘에 의한 차별이 강화될 위험이 있다. 특히, 고용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정보 제공 동의가 구조적으로 강제될 수 있다는 점은 큰 문제다. 따라서 기술을 통제할 ‘데이터 윤리 위원회’ 설치와 ‘설명 가능한 AI(XAI)’ 도입 등 제도적 안전장치가 시급하다. 정리하면 미래의 HRD는 단순한 효율성 추구를 넘어, 구성원의 존엄과 신뢰를 지키며 데이터를 책임 있게 활용하는 인간 중심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다.디지털 전환의 물결은 산업과 산업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고 조직 운영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인프라가 되었으며, 기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구조로 너무나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인적자원개발(HRD)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HRD는 데이터 기반 혁신이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분야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맞춤형 학습’이라는 개념이 자리한다.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교육은 언제나 ‘표준화’와의 싸움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정립된 공교육 시스템과 이를 모방한 기업의 인적자원개발은 오랫동안 국내 HRD에서는 ‘평균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모든 직원에게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교재를 주입하는 집체 교육은 관리의 효율성은 보장했을지언정, 개인의 고유한 잠재력을 찾아 향상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BigData), 클라우드 컴퓨팅(CloudComputing)이라는 기술적 삼위일체는 이 오래된 난제를 해결할 열쇠를 인류에게 쥐여주었다. 바야흐로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된 맞춤형 학습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오늘날 선진 기업의 HRD담당자들은 더 이상 연수원에 직원들을 모아 일괄적으로 교육시키지 않는다. 대신 학습경험플랫폼(LXP, Learning Experience Platform)을 통해 개별 직원에게 넷플릭스가 영화를 추천하듯 최적의 교육 콘텐츠를 큐레이션한다. AI는 입사 3년 차 마케팅 직원이 데이터 분석 역량이 부족함을 간파한 다음, 출퇴근할 때 지하철에서 가볍게 시청할 수 있는 10분짜리 마이크로 러닝 콘텐츠를 그 직원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이런 방식으로 기업은 불필요한 교육 예산을 삭감하여 투자수익률(ROI)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직원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지식을 적시에 습득하며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는데,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기업과 직원 모두가 승리하는 완벽한 시나리오처럼 보인다.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화려한 기술적 성취의 이면에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맞춤형 학습이 더욱 정교해질수록, 시스템이 요구하는 데이터의 양과 질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과거의 데이터가 ‘누가, 언제, 어떤 시험을 통과했는가’라는 결과론적 지표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데이터는 학습자의 인지적 과정, 행동 습관, 심지어 생체 신호와 감정 상태까지 포괄한다. 이를 통해 ‘학습’이라는 인간의 숭고한 지적 활동이 0과 1의 데이터로 환원되어 서버에 저장되는 순간, 우리는 필연적으로 ‘프라이버시’라는 거대한 트레이드오프(Trade-Off)와 마주하게 된다.혁신적인 시스템의 이면에는 조용히 확장되는 이면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프라이버시 침해와 통제의 문제다. 데이터는 중립적인 자원이 아니다. 데이터는 권력이며, 그 데이터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주체에 따라 개인의 삶과 경력이 좌우될 수 있다. HRD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는 단순한 교육 이력에 그치지 않는다. 학습 시간, 클릭 패턴, 과제 수행 속도, 반복 학습 횟수, 토론 참여 빈도, 모바일 접속 기록 등 세밀한 행동 데이터가 수집된다. 이런 데이터는 개인의 집중력, 태도, 성향, 심지어 성실성까지 추론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무엇보다 문제는 이런 데이터가 어디까지 활용되는가에 있다. 기업은 교육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한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그 데이터가 인사 평가와 승진 결정, 배치 판단에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맞춤형 학습이라는 이름 아래 구축된 데이터 시스템은 조직 내부에서 구성원을 분류하고 예측하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구성원은 자신이 학습하는 동안 끊임없이 평가되고 분석되는 대상이 되는 것인데, 이는 학습의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감시받는 환경 속에서 자기 검열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맞춤형 학습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알고리즘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여 미래 행동을 예측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과거의 편향이 미래에도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특정 집단이 과거에 낮은 성과 평가를 받았다면, 알고리즘은 이를 패턴으로 인식하여 해당 집단에 불리한 예측을 반복할 수 있다. 이는 데이터 기반 차별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초래한다. 겉으로는 객관적 수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조직 구조의 불평등이 기술을 통해 강화될 위험이 존재한다.또한, 알고리즘의 판단 기준은 대개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구성원은 자신이 왜 특정 학습 경로로 배정되었는지, 왜 특정 역량이 부족하다고 평가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설명 불가능한 판단은 신뢰를 약화시킨다. 데이터는 객관성을 상징하지만, 해석의 권한은 여전히 조직에 집중된다. 그 결과 개인은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분석되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파악하며 역량개발을 적절히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이런 프라이버시 침해는 단순한 정보 유출이 아니다. 개인이 자신의 정보에 대한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순간, 프라이버시는 침해된다. HRD 영역에선 개인정보동의 절차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교육에 참여하려면 시스템 이용에 동의해야 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사실상 선택권이 제한되는데 이런 구조는 자발적 동의라기보다 구조적 강제에 가깝다.더욱이 교육 데이터는 점점 다른 데이터와 결합되고 있다. 인사 데이터, 성과 평가 결과, 심리 검사, 업무 메신저 활동 기록, 심지어 건강 정보까지 통합 분석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데이터 결합은 예측 정확도를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삶을 지나치게 투명하게 만든다. 조직은 구성원을 입체적으로 이해한다고 주장하지만, 구성원은 자신의 사적인 영역이 침범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맞춤형 학습은 본래 개인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그것이 통제와 평가의 장치로 변질될 때, 학습은 더 이상 자율적 활동이 아니다. 구성원은 점수와 지표를 의식하며 학습하고, 시스템이 제시하는 경로를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이는 창의성과 도전 정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 학습이 감시와 연결되는 순간, 조직 문화는 경직된다.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 주체의 ‘동의’를 데이터 처리의 핵심 요건으로 규정한다. 기업들은 입사 시, 혹은 새로운 교육 시스템 도입 시 직원들에게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에 서명을 받는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고용 관계라는 특수한 권력 구조 속에서 이 동의가 과연 ‘자유로운 의사(Freely Given)’에 의한 것인지는 의문이다.기술에는 그것을 통제할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기업 내에 노사 동수의 ‘데이터 윤리 위원회’를 설치하여 HRD 데이터의 활용 범위를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또한, ‘설명 가능한 AI(XAI)’를 도입하여, 직원이 추천받은 교육 과정의 근거를 이해하고, 알고리즘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진정한 교육은 통제와 감시가 아닌, 자율과 신뢰 위에서 꽃핀다. 그러니 HRD 데이터는 직원을 발가벗기는 감시 카메라가 아니라, 직원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미래의 HRD는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수집하는 조직이 아니라, 데이터를 책임 있게 사용하는 조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효율성보다 존엄을, 통제보다 신뢰를, 예측보다 인간 중심 가치를 우선하는 조직만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맞춤형 학습의 진정한 의미는 개인을 분석하는 데 있지 않고, 개인을 존중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존중이야말로 데이터 시대에서 HRD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김성규 교수중부대학교 정보보호학과 교수. 중부대학교 정보보호학과 학과장을 수행하고 있으며, 한국정보보호학회,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 한국멀티미디어학회, 한국인터넷정보학회, 한국정보처리학회 등에서 편집위원, 분과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정보보안과 개인정보보호 그리고 인공지능 등을 주제로 강의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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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성우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책임: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사람을 책임지는 자세
글 싣는 순서1. 존중: 함부로 훈수 두지 않는 어른의 태도2. 책임: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사람을 책임지는 자세3. 관대: 나의 몫을 너그러이 내줄 수 있는 어른의 넉넉함참된 어른은 자기 몫의 책임만 감당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어른다움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데서 시작하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책임질 줄 아는 데서 완성된다. 우리는 책임을 흔히 내가 선택한 일의 결과를 감당하는 태도로만 이해하지만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선택하지 않은 일에도 책임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책임은 짐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홀로 설 수 있도록 건네는 사다리가 된다. 자기 삶을 감당해내고 타인도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책임 있는 어른이다.우리는 만 19세가 되면 술잔을 들 권리와 투표할 권리를 얻는다. 이는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사회로부터 스스로 책임질 수 있고 또 책임져야 하는 존재, 즉 ‘어른’으로 취급받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책임감, 다시 말해 자신이 짊어진 몫을 감당해내려는 마음은 어른다운 삶의 핵심 덕목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책임질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바로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작 ‘책임의 무게’를 견디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의 세계로 던져졌는지도 모른다.---‘성인’은 되었으나 ‘어른’은 되지 못한 이들의 사회요즘에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성숙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이른바 ‘어른 아이’ 같은 성인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미성숙을 부끄러워하며 어른인 척하기보다 아예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태도로까지 나아가곤 한다. 이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각박한 사회 구조 속에서 ‘책임’이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처벌의 근거’로만 인식되어 온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피터팬처럼 영원히 아이로 남을 수는 없다. 아이로 돌아가려 애써도 다시 어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좋은 어른이 될 기회만 놓치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과 세월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그렇다면 책임감 있는 어른은 어떻게 살아갈까. 물론 자신이 선택한 일의 결과를 기꺼이 감당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가려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결과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선택하거나 자신이 초래한 어려움을 수습하지 않고 회피하며 남 탓만 하는 자세는 분명 어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더 나아가 책임 있는 어른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인다. 부모의 실수로 생긴 빚을 자녀가 함께 감당하는 경우도 있고, 직원의 잘못에 대해 회사 대표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일도 있다. 우리가 직접 만들지 않은 환경 위기나 사회적 불평등을 오늘의 세대가 함께 짊어지고 해결하려 애쓰는 모습 역시 그러한 책임의 한 예라 할 수 있다.‘점(나)’에서 ‘선(우리)’으로이렇듯 인간의 책임은 ‘나’에서 ‘우리’로 확장된다. 우리는 서로 얽혀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자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실수를 완전히 피할 수도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것과 내가 선택한 것이 뒤섞여 이루어진다. 선택하지 않았어도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일도 있고 노력 없이도 운 좋게 누리는 혜택도 있다. 그렇기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의도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주어진 행운은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 선택하지 않은 불운에 대해서는 불평하거나 회피하려 한다면, 그것은 책임 있는 태도라 보기 어렵다. 성숙한 책임감은 내가 선택한 것만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 전체를 성찰하는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이러한 이유로 어른의 책임 역시 자기 자신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른다운 어른이라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른인 존재가 아니며, 우리가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를 책임지고 도와준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선배든, 혹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사회의 누군가이든 우리는 수많은 어른의 보살핌과 가르침 덕분에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나 역시 어른이 되었을 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들에게 버팀목이자 길잡이가 되어줄 책임이 있다.필자 역시 젊은 시절에는 스스로 어른이 되었고, 자기 몸 하나만 책임지면 어른답게 사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온 적이 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나니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다.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역시 이 아이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 세상에 나왔구나. 그리고 나도 아버지처럼 한 명의 어른으로서 이 아이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구나.’ 그 순간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점이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으로 길게 이어진 선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필자는 진정한 어른이란 자기만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존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하게 되었다.‘책임’이라는 사다리를 건네며그렇다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를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의 생존과 발달을 돕는 일 역시 중요한 책임의 일부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책임은 그들 또한 언젠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도록 책임의 싹을 심고 길러주는 일일 것이다.앞서 말했듯 누구도 어린 채로, 젊은 채로 영원히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선택하고 감당하며 실수해도 다시 일어서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이를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책임을 배울 수 있는 환경과 도전을 제공하는 일이다. 최고의 것만을 주는 것이 어른이 되도록 이끄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세상은 언제나 최고의 조건만을 준비해 두지 않기 때문이다. 최고가 아닌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책임감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른다움으로 이끄는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책임이 가벼운 시절에 시행착오를 겪어야 이후 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을 때도 버틸 수 있는 지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든 제자든 후배든, 능숙한 사람이 미숙한 사람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다면 알 것이다. 차라리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대신해주는 일이 더 쉽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는 전적으로 믿고 맡겼다가 일을 그르쳐 실망하거나, 아예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대신해 주거나 떠먹여주려 하는 두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어른의 책임은 그 중간에 있다. 스스로 해볼 기회를 주되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실패하게 하고 그 실패를 책임으로 연결해 주는 것이다. 이는 답을 주기보다 질문하며 학생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도록 이끈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을 떠올리게 한다. 책임감 있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감당 가능한 책임을 조금씩 지워주는 일, 바로 여기에 어른다운 책임의 핵심이 있다. 너무 빨리 어른처럼 대하면 무너져버리고 너무 오래 아기처럼 대하면 자라지 못한다. 이 사이의 중용을 찾는 일이 어른의 책임인 것이다.결국 책임은 짐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건네는 사다리다. 어른다운 어른의 책임은 자기 몫을 감당하는 데서 시작해 남의 몫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데서 완성된다. 참된 어른은 상대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짐을 질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자기 선택에 책임지는 태도를 넘어 아래로 책임의 사다리를 건네줄 때 비로소 어른다운 책임감은 우리 사회 속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아름다움으로 남게 될 것이다.엄성우 교수옥스퍼드대에서 철학석사, 듀크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생명윤리과 박사후연구원을 역임했다. 연구분야는 윤리학, 생명윤리학 등이며 주로 좋은 삶에 필요한 덕목과 인간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고, 제15회 세계생명윤리학대회 최우수논문상과 제3회 모하 분석철학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당신에게』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 ‘What is a Relational Virtue?’, ‘Honesty: Respect for the Right Not to be Deceived’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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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만 삼성서울병원 인재개발팀장] 열린 사고: 관점 전환과 질문의 힘이 혁신을 만드는 이유
글 싣는 순서1. 학습민첩성의 시대: AI 시대에는 학습 속도가 경쟁력이다2. 자기 인식: 탁월한 성과는 ‘나를 아는 힘’에서 시작된다3. 성장 의지: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의 지속력 공식4. 열린 사고: 관점 전환과 질문의 힘이 혁신을 만드는 이유5. 경험학습과 변화 도전: 배움을 행동으로 전환하는 마지막 퍼즐변화가 빠른 시대일수록 일터에서 사람이 만들어내는 성과의 차이는 그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의 크기보다는 ‘사고하는 방식’에서 벌어진다. 같은 정보를 보고, 같은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지만, 어떤 사람은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제자리에 머문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핵심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열린 사고’다. 열린 사고는 타고난 창의성이나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생각을 어떻게 다룰 수 있으며, 스스로의 사고를 얼마나 점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특히 경험이 쌓일수록 사고는 더 단단해지기 때문에, 의식적인 점검 없이는 관점 전환이 어려워진다. 관련해서 이번에는 다르게 생각하도록 해주는 열린 사고를 기를 수 있는 방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많은 직장인을 인터뷰했더니 성과가 정체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능력이나 태도의 부족이 아니라 사고 방식의 고착이었다. 이들은 이미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과거의 성공 경험에 묶여 있었다. 반대로 성장의 전환점을 만든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더 열심히’가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를 중심에 두며 일했다. 많은 직장인이 성과가 나지 않을 때 실행 강도를 높이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같은 질문, 같은 관점,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노력은 결과를 바꾸기 어렵다. 열린 사고는 바로 이 반복의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열린 사고는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관련해서 필자는 다섯 가지 실천방법을 소개한다."성과가 정체된 직장인들의 공통점은 사고 방식의 고착이다.과거의 성공 경험에 묶여 같은 질문, 같은 관점, 같은 방식을반복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반복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다른 생각’을 하도록 해주는 ‘열린 사고’를 길러야 한다."---첫째, 지식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며 ‘언러닝(unlearning)’한다. 과거에 높은 성과를 냈던 방식이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문제를 만드는 사례들은 업계를 막론하고 종종 볼 수 있다. 한때는 효율적이었던 보고 체계나 의사결정 방식이 환경 변화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면서 현장의 업무수행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전환점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 방식이 언제부터 통하지 않게 되었는가’라고 묻는 데서 만들어진다. 언러닝이란 새롭고 더 나은 지식과 방법을 익히기 위해 기존의 쓸모없는 지식이나 사고방식, 행동을 버리는 과정이다. 세상은 계속 변하므로 우리의 지식도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그러니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둘째, ‘질문 능력’을 키운다. 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질문 능력을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후속 질문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들었다면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또는 “어떻게 하면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등의 질문을 하면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는 질문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인공지능이 전해주는 답변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셋째, ‘입체적으로’ 생각한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선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입체적 사고를 돕기 위해 필자는 행동과학자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가 제안한 ‘단일고리 학습(single-loop learning)’과 ‘이중고리 학습(double-loop learning)’을 소개한다. 단일고리 학습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존의 규범 안에서 어떤 오류가 있는지 확인한 다음 행동을 수정하여 지금까지 하던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반면, 이중고리 학습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존 규범을 결정하는 기본 전제와 가정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며 규범 자체를 수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은 최 팀장은 프로젝트의 일정이 지연되고 예산이 초과되었을 때 단일고리 학습이 아닌 이중고리 학습을 선택했다. 그는 ‘왜 프로젝트는 항상 지연되고 예산이 초과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뒤 일정과 예산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업무 프로세스, 소통 방식, 조직 문화 등 전반적인 사항을 점검하며 개선사항을 도출했다.넷째,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양은 과거보다 크게 늘었지만 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온라인에서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나타난다. 필터 버블은 개인이 인터넷 알고리즘에 따라 관심사에 맞게 제공되는 정보에만 노출되어 자기만의 거품 안에 갇히는 현상이다. 그 결과 특정 정보만을 접하게 만들어 개인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보통 자신과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은 같은 직장, 같은 학교, 같은 취미 등의 공통분모가 있기에 동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이렇게 환경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겠지’라는 착각에 빠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는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출처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로그인하지 않고 검색하는 등의 방법을 써서 알고리즘의 영향을 줄일 필요가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솔직한 의견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조성하면 도움이 된다.다섯째,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 직장인들에겐 경력이 쌓일수록 호기심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창의력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불편했던 점을 생각해보자. 매번 번거롭다고 느꼈던 보고절차, 고객의 문의 중 반복되던 질문, 당연하게 여겨졌던 관행을 그냥 넘기지 않고 기록해보자. 그러면서 ‘왜 그런가?’와 ‘어떻게 할까?’라고 질문해보자. 이런 식으로 일상의 업무를 정밀하게, 꾸준하게 관찰하며 메모해두면 그 메모는 유용한 자료가 되고, 유용한 자료들이 쌓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데 있어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보물창고를 가질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쌓은 경력을 다른 분야와 통합해보면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이런 다양성이 창의력을 촉진한다. 관련해선 과거에 들었던 캘리그라피 강좌가 나중에 애플 제품의 글씨체와 디자인을 만드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는 스티브 잡스의 일화가 유명하다.지금까지 소개한 다섯 가지 방법은 각각 독립적인 행동이 아니다. 지식의 유통기한을 점검하는 태도는 자연스럽게 일터에서 던지는 질문을 바꿔주며, 질문의 변화는 입체적 사고를 요구한다. 입체적 사고는 다양한 의견을 필요로 하며, 그 과정에서 관찰·메모하는 일상은 다시 새로운 질문과 만나게 해준다. 열린 사고란 특정 기법을 하나 더 익히는 게 아니라, 사고가 멈추지 않고 순환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이 구조가 만들어질 때 개인은 변화 앞에서 경직되지 않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학습을 멈추지 않는다."조직에서 각자의 다양한 의견이 안전하게 표현되고,미완의 생각도 존중받는 환경이 마련될 때 열린 사고는개인의 태도를 넘어 조직의 역량으로 확장될 수 있다."이런 관점에서 열린 사고가 HRD에 주는 시사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열린 사고는 단발적인 창의성 교육이나 아이디어 워크숍으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그러니 HRD스탭들은 구성원들에게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구성원들이 사고의 전제를 점검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키우며 관점을 바꿔보는 경험 자체를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례를 ‘정답’으로 제시하기보다, 그 사례를 어떻게 하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묻는 학습 구조가 필요하다. 조직에서 각자의 다양한 의견이 안전하게 표현되고, 미완의 생각도 존중받는 환경이 마련될 때 열린 사고는 개인의 태도를 넘어 조직의 역량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 사고는 개인의 창의성을 넘어 조직이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는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이 지표를 설계하는 일의 중심에 바로 HRD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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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티오더 HR총괄 디렉터] 스페셜리스트 vs 제너럴리스트, 이제는 잘못된 질문이다
글 싣는 순서1. 스페셜리스트 vs 제너럴리스트, 이제는 잘못된 질문이다2. HR 커리어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3. 그렇다면 어떻게 프로듀서형 인재로 성장할 것인가‘스페셜리스트냐 제너럴리스트냐’는 많은 HR 실무자가 고민하는 질문이다. HR 직무는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지만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나날이 변화하는 시대는 HR 직무의 여러 영역에서 직접 실무를 수행할 수 있되 필요할 때는 외부 전문가나 컨설턴트를 적절히 활용하고 각종 기술도 자연스럽게 끌어다 쓰는 ‘프로듀서형 인재’를 요구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제 HR 실무자에게 정말 중요한 능력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우리 조직에 필요한 것을 골라내고, 조합하고, 적용하는 능력, 다시 말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여전히 반복되는 고민, 그리고 현실HR 실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한 번쯤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채용만 파고들까요, 아니면 여러 영역을 경험해보는 게 나을까요?’라는 질문이다. 평가 전문가로 가야 할지, 아니면 HR 전반을 넓게 보는 게 맞을지 고민스럽다는 것이다.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사이에서의 선택, 마치 커리어의 분기점처럼 느껴지는 이 질문 앞에서 많은 이들이 망설인다. 이 고민이 반복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HR 직무만큼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분야도 드물기 때문이다. 채용, 평가, 보상, 노무, 교육, 조직문화까지…. 영역마다 고유한 전문성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커리어 초반에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한 우물을 깊게 팔 것인가, 아니면 여러 우물을 두루 경험할 것인가.---"HR 실무자에게 스페셜리스트냐 제너럴리스트냐의 고민은개인의 갈망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채용만 하고 싶어도평가 시즌에는 평가를 봐야 하고, 보상 전문가가 되고 싶어도당장 사람을 뽑아야 할 때는 채용 공고부터 써야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고민에 앞서 HR 실무자들이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게 있다. 바로 지금 다니는 회사의 상황이다. 우리 회사가 과연 그런 선택지를 줄 만한 여건이 되는가? 팀 규모는 충분한가? HR의 여러 영역별로 전문가를 둘 만큼 조직이 세분화되어 있나? 대기업에는 채용만 전담하는 팀이 따로 있고, 보상만 담당하는 전문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는 한 사람이 채용도 하고, 평가도 보고, 급여도 계산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기업만큼의 여유가 없다면, 사실 스페셜리스트냐 제너럴리스트냐의 고민은 개인의 갈망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채용만 하고 싶어도 평가 시즌에는 평가를 봐야 하고, 보상 전문가가 되고 싶어도 급하게 사람을 뽑아야 할 때는 채용 공고부터 써야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이것이 바로 많은 HR 실무자들이 느끼는 실제 딜레마다.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스페셜리스트냐 제너럴리스트냐’라는 질문 자체가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는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보자. ‘이탈률이 높다’라는 하나의 문제만 놓고 봐도, 채용 관점에서 초기 미스매칭을 점검해야 할 수도 있고, 보상 관점에서 시장 경쟁력을 분석해야 할 수도 있으며, 조직문화나 리더십 이슈일 수도 있다. 실무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이처럼 복합적이다. ‘신입사원 조기 퇴사가 많다’는 문제도 생각해보자. 채용팀은 전형 과정의 문제를, 교육팀은 온보딩 프로그램을, 보상팀은 초봉 수준을, 조직문화 담당자는 실제 업무 환경과 채용 단계 이미지 간 괴리를 지적할 것이다. 누가 맞는가? 사실 모두 맞다. 언급한 문제들에서 핵심은 한 가지 렌즈로만 보면 해결책도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얕게만 알고 있는 경우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 ‘한 가지만 깊게’ 혹은 ‘여러 가지를 얕게’라는 이분법으로는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프로듀서형 인재라는 답변화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건 새로운 유형의 HR 전문가다. 이를 ‘프로듀서형 인재’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음악 프로듀서를 떠올려보자. 퀸시 존스나 방시혁 같은 프로듀서들은 직접 악기도 연주하고 작곡도 한다. 하지만 필요하면 최고의 세션 뮤지션을 섭외하고, 믹싱 엔지니어와 협업하며, 때로는 외부 편곡자의 도움도 받는다. 중요한 건 그들이 직접 모든 악기의 최고 연주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각 악기의 역할을 이해한 가운데 필요할 때 직접 연주할 수도 있으며, 최종 결과물의 품질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점이다.HR 프로듀서형 인재도 마찬가지다. 채용, 평가, 보상 등 여러 영역에서 직접 실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되, 필요할 때는 외부 전문가나 컨설턴트를 적절히 활용한다. IT 툴이나 AI 같은 기술도 자연스럽게 끌어다 쓴다.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지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리소스를 유연하게 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용 프로세스 개선도 직접 추진하고, 동시에 보상 컨설팅도 의뢰하며, 리더십 코칭 프로그램도 설계하는 식이다. 다시 강조하면 각각을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솔루션으로 엮어내는 능력이 핵심이다.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깊이’의 의미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전의 깊이가 ‘내가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내재화했는가’였다면, 지금의 깊이는 ‘필요할 때 어떻게 그 지식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가깝다. 보상 전문가처럼 급여 산식을 줄줄 외우고 있기보다는, 필요할 때 적절한 벤치마크 데이터를 찾을 줄 알고, 전문 컨설턴트와 효과적으로 소통·협업할 수 있으며, 시스템이나 AI를 활용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과거에는 고품질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기에많이 아는 사람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 정보는 넘쳐난다.따라서 HR 실무자에게 정말 중요한 능력은 많은 정보 속에서우리 조직에 필요한 것을 골라내고, 조합하고, 적용하는 것이다."이는 지식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을 활용하는 방식이 진화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기에 많이 아는 사람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보가 넘쳐나기에, 중요한 것은 그 정보 속에서 우리 조직에 필요한 것을 골라내고, 조합하고, 적용하는 능력이다. 결국 스페셜리스트냐 제너럴리스트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걸까? 다음 글에서는 지난 20년간 HR 커리어 개발 환경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그 변화의 배경을 살펴보려 한다.김동현 디렉터티오더(t'order) HR총괄. 13년 동안 HR, 경영관리, 법무, PR, PI 영역 등을 담당했고, 현대차그룹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토스, 야놀자, 클래스101 등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근무했다. 초기 팀빌딩, 경영 악화 턴어라운드, 급격한 성장에 따른 이슈 등 다양한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회사에 조언도 하고 있으며 브런치에서 ‘이드의 스타트업 HR 모험기’, ‘취중잡담’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