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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9-28 23:19:35
  • 수정 2026-09-28 23: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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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가 끝난다.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팀장의 설명에 몇몇 팀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이어졌다. 그런데 조직 진단이 끝난 뒤 구성원들을 따로 만나보면 회의실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가 들린다. “예전에 이야기한 적은 있어요. 그런데 달라지는 게 없었어요.”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한 번 말해본 뒤 달라지는 것이 없었던 경험이 그 다음 말을 막은 것이다. 몇 번의 경험이 쌓이면 굳이 의견을 꺼내지 않게 되고, 회의는 조용해진다. 겉으로는 모두가 “네”라고 말하고 있어서 이런 변화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우리 회사에서도 ‘신뢰’가 중요한 조직문화 화두로 떠올랐다. 2026년 조직문화 키워드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한 단어가 신뢰였다. 그런데 구성원이 조직에서 신뢰를 확인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일상적이다. 회의에서 다른 의견을 냈을 때 리더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렵게 꺼낸 고민을 다음에도 기억하는지, “확인해볼게요.” 했던 일에 실제로 답이 돌아오는지를 본다. 한두 번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도 이런 경험은 남는다. 다음 회의에서 의견을 하나 더 보탤지, 생각이 달라도 그냥 “네”라고 하고 넘어갈지에도 영향을 준다.


 사실 리더와 팀원은 이미 하루에도 여러 번 이야기한다. 회의에서 만나고, 메신저로 묻고 답하고, 점심을 함께 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화의 상당 부분은 일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어디까지 됐어요?”, “언제 끝나요?”, “이 부분은 수정해주세요.” 업무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대화다. 반면 “요즘 이 일을 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워요?”,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해보고 싶어요?” 같은 질문은 당장 오늘의 업무를 끝내는 데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바쁠수록 뒤로 밀린다. 1on1에서는 평소 업무 대화에서 좀처럼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따로 나눌 수 있다. 이미 많은 기업이 1on1을 정기적인 소통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주 앉은 시간이 모두 의미 있는 대화로 남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갤럽이 직원 약 1만5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리더와 나눈 가장 최근의 대화가 ‘매우 의미 있었다’고 답한 직원은 16%에 그쳤다. 의미 있는 대화에는 최근 업무에 대한 인정과 감사, 협업과 관계, 현재의 목표와 우선순위, 구성원의 강점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됐다. 대화가 꼭 길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면 15~30분으로도 충분했다.


 막상 1on1을 시작하면 리더가 더 많이 말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인우·유경철은 『리더의 원온원』에서 리더가 자신의 직책을 대화의 우위로 받아들이면 1on1이 일방적인 전달이나 조언으로 흐르기 쉽다고 지적한다. 팀원이 고민을 이야기하는 동안 리더는 자연스럽게 원인을 짐작하고 해결책을 떠올린다. 경험도 더 많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럴 땐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답이 나온다. 팀원은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간다. 분명 이런저런 이야기는 나눴지만 팀원이 왜 그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듣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JTBC '이혼숙려캠프'에서 부부상담 전문가 이호선 교수가 상담하는 모습을 보면, 한쪽이 이야기하는 동안 다른 한쪽은 이미 반박할 말을 준비하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말을 듣고 있는데도 정작 서로가 이해한 내용은 다르다. 이호선 교수는 그럴 때 대화를 멈추고 “방금 그 말, 남편 분은 뭐라고 들으셨어요?”라고 묻는다. 막상 답을 들어보면 상대가 말한 뜻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면 다시 설명하고, 다시 묻는다. 조금 전까지 서로 자기 입장을 설명하던 두 사람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시작한다. 회사에서는 훨씬 짧은 대화에서도 차이가 난다. “요즘 어때요?”라는 질문에 팀원이 “그냥 좀 지쳐요.”라고 답한다. “요즘 다 바쁘죠.”라고 받으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다. “어떤 일 때문에 그래요?”라고 물으면 그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일이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말일 수도 있고, 다른 팀의 업무에 관심이 간다는 말일 수도 있다. 지금 맡은 역할에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이어질 수도 있다. 처음에는 “좀 지쳐요.” 한마디였지만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 나면 요즘 이 팀원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된다.


▲ (사진 출처: AI 생성 이미지)


 여기서 대화가 끝나지 않고 다음 1on1까지 이어지면 또 다른 장면이 만들어진다. “지난번에 다른 업무에도 관심이 간다고 했잖아요. 요즘은 어때요?” 몇 주 전에 무심코 꺼낸 이야기를 리더가 먼저 기억해 묻는다. 지난번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매번 처음 만난 것처럼 “요즘 어때요?”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팀원도 어느 순간 비슷한 이야기만 반복하게 된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과 대화가 이어지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이번에 우리 회사의 1on1을 설계하면서 운영 원칙에 ‘리더가 약속한 액션은 반드시 이행한다.’는 내용을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팀원이 “다른 프로젝트도 한번 경험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당장 업무를 바꿔줄 수는 없다. 리더가 “한번 알아볼게요”라고 답하고 그날의 1on1을 마칠 수도 있다. 몇 주가 지나면 팀원은 그 말을 다시 꺼내야 할지 고민한다. 리더가 잊은 것 같아 보이면 “지난번에 말씀드린 건 어떻게 됐나요?”라고 먼저 묻기도 애매하다. 결국 그냥 기다리다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다음 1on1에서 리더가 먼저 “지난번에 이야기한 건 관련 부서와 얘기해봤는데, 당장은 어려울 것 같아요. 다음 프로젝트가 열릴 때 다시 한번 봅시다.”라고 말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원하는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자신의 이야기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건 알 수 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고, 조직 사정상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도 있다. 모든 요구에 가능하다고 답하는 것과 꺼낸 이야기에 답을 돌려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조직 진단에서 종종 듣게 되는 “예전에 이야기한 적은 있어요. 그런데 달라지는 게 없었어요.”라는 말도 이런 경험 뒤에 나온다. 한 번 의견을 낸 사람은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본다. 아무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면 다음 회의에서는 굳이 같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을 수 있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는 편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난 이야기를 기억해 묻고, 확인하기로 한 일에 답을 주는 경험이 반복되면 이전에는 삼켰던 말도 조금씩 밖으로 나온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지난번 말씀하신 부분에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회의에서 이런 문장이 하나씩 늘어나는 변화는 조직 진단의 숫자보다 먼저 나타날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고, 지난 대화를 기억하고, 그때 하기로 한 일에 다시 답하는 경험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게 몇 번의 대화가 이어지고 나면 처음에는 “네, 알겠습니다”로 끝났던 대화 뒤에 다른 한마디가 붙을 수 있다. 조직에서 신뢰가 쌓이고 있다는 변화는 어쩌면 그 한마디에서 먼저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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