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은 정부 수립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국가 주도의 큰 계획과 국민들의 역량개발을 향한 의지를 바탕으로 빠르게 암흑기에서 벗어났다.
한국은 6·25 전쟁으로 인해 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국토는 황폐화됐으며, 경제와 사회의 발전은 수십 년 늦춰지게 됐다. 그러나 이런 비극 속에서도 한국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내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이런 여정의 동력 중 하나가 인적자원개발(HRD)이었다. 이번에는 『월간HRD』 창간 35주년을 맞아 굶주림에서 벗어나 더 나은 내일을 맞기 위해 세계의 지원 속에 이뤄진, 그리고 국가와 민간 차원에서 추진된 다양한 노력 중 HRD와 맞닿아 있는 굵직한 사건들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 6·25 전쟁 이후 한국이 입은 피해는 모든 자원을 막론하고 막대했다.전후 한국을 재건하기 위한 움직임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선진국들의 원조에 힘입어 한국경제는 조금씩 안정 단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며 물거품이 됐다. 그런데 6·25 전쟁 정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보다 1년 전인 1952년, 5월에 유엔 통일사령부와 한국정부 사이에 경제조정에 관한 마이어협정이 체결됐다. 이 협정이 바로 국가재건을 위한 첫발이었다. 그러고 나서 한국경제 전후 부흥을 목적으로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UNKRA)의 원조사업이 전개되었는데 동년 12월에 한국경제재건계획 보고서가 제출됐다. 이 보고서는 전쟁 이후의 한국에는 식량과 사회기반시설도 중요하지만, 근간으로 인적자원개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UNKRA는 미국의 전문용역회사 네이산협회(Nathan Associations)와 계약을 맺고 한국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와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하는 장기부흥계획 수립을 의뢰했다. 이후 1954년 2월에 의뢰의 결과물인 ‘한국재건계획’이라는 이름의 최종보고서가 제출됐다. 이 최종보고서는 한국인들의 독립정신과 국민적 긍지가 국가재건을 가능케 할 원천이며, 다른 독립국가들과 비교해서 한국인들은 많은 재주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보고서 작성자들은 한국인들의 높은 향학심, 진실성, 근면성, 체력, 용기, 인내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이렇게 희망적인 평가 이후 추진된 한국재건계획의 형태를 보면 무엇보다 배움을 얻는 인프라인 학교에 초점을 두었던 만큼, 부족한 학교시설과 설비를 충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인적자원의 절대적인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