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린튼 교수는 한국 청년들이 리더십을 갖추게 하는데 매진하는 경험 많은 기업 법무 변호사, 창업자, 그리고 법학교수다.“한국이 ‘선진국’이 된 배경에는 성공적인 인간역량개발 정책이 어느 정도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와 경제의 발전에 집중됐던 경향이 있어요. 앞으로는 재능 있는 청년들이 글로벌 리더십을 갖추도록 하는 미래의 ‘필요’에 집중하는 인간역량개발로 대체돼야만 한국이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진정한 리더로서 모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데이비드 린튼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 교수의 차세대 한국의 리더 육성에 관한 비전이다. 국가유공자의 후손인 린튼 교수는 2014년에 귀화해서 한국인이 됐고, 지난 15년간 한국에서 변호사, 스타트업 기업가, 그리고 법학교수로서 일했다. 한국을 향한 각별한 애정만큼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그동안 축적해온 통찰력을 아낌없이 나눴다.
린튼 교수가 학생 중심 교육 개혁을 위해 분투한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는 학교 연극에 참여하길 거부해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고, 부모님께서 “왜 그랬니?”라는 질문을 하셨을 때 “저는 학교에 배우러 가는 거지,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가는 게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결국 어린 린튼 교수는 연극에 참여하지 않게 됐다.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다. 이외에도 다른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초등학교 1년 월반을 허락받는 싸움은 이기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2년 일찍 자퇴하고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던 소원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린튼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특정 조건들이 충족될 경우 고등학교로 하여금 학생들이 요청하는 새로운 수업들을 신설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법률을 발견했다. 그는 다른 학생을 모집했고, 그가 듣고 싶었던 새로운 3개 수업을 인가하도록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설득했다. 동시에 그는 파트타임으로 대학 수업을 수강하면서,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카펫 청소 서비스 개인 사업의 잠재적 고객들에게 전화권유를 했던 일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교육적 활동이었다고 회고한다. 린튼 교수는 “때로는 지루하고 어렵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당시의 경험으로 시장은 성과에 보상하며, 결실을 맺으면 최저 임금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기타 업무 및 대학 수업 수강 등 여러 일로 인해 린튼 교수의 고등학교 평균평점은 나빠졌지만, 그가 선택한 대안 교육의 길의 가치를 알아본 여러 아이비리그 대학들로부터 대학 합격 통보를 받았다.
대학에서 린튼 교수는 월 스트리트 취업을 지향하던 학생들이 선호하는 경제학 대신 철학을 전공했다. 또한, 과학, 기술, 비즈니스, 철학, 종교, 그리고 공공정책 등의 분야에 대해 12개 이상의 학술지 및 잡지를 구독하는 것으로 학교공부를 보충했다. 그는 “식비보다 책과 정기간행물에 돈을 더 많이 써서 어머니께서 걱정하셨지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사용했기 때문에 말로만 반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린튼 교수는 가족의 뿌리와 다시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에 다시 한국으로 이끌렸다. 실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졸업하기 전,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어와 철학 수업들을 수강했다.
린튼 교수의 경력을 보면 그가 걸었던 교육에의 길과 비교해서 덜 예외적이긴 하지만, 분명 이례적이다. 처음에는 과학자를 꿈꿨고 감염성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대한 독립적인 실험 리서치도 하며 그 길을 걷고자 매진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장기적으로 과학자로 성공하기에는 수학 능력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대신 린튼 교수는 비영리기금 모금자,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대사관 고문을 포함하여 다양한 직업에서 종사하며 폭넓은 역량을 길렀다. 그는 “청년 리더들에게 실제적인 스킬 훈련들을 제공하는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Leadership Institute에서 훈련을 받고 일했던 경험이 현재 저의 프로페셔널 교육 및 훈련에 대한 접근법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털어놨다.
▲ 데이비드 린튼 교수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한국의 인재들의 잠재력이 가장 잘 발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당시 인턴으로 시작한 린튼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형식(예: 레이아웃, 디자인)이 그 내용만큼 중요하다는 것, 언제든 가능하다면 결과는 데이터로 측정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좋은 태도와 타인이 의지할 수 있고 근면한 직업윤리가 인상적인 서류상의 자격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울러 출판물 디렉터로서 데이터 중심 커뮤니케이션과 그가 일했던 재단의 재정적 지속가능성과 성장 사이의 연관성을 목격했다. 그가 작성하고 편집했던 출판물들은 재단 동문들과 후원자들에게 매달 발송되었는데, 린튼 교수는 그들이 해당 출판물을 읽고 매달 얼마나 기부하는지 목격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젊은 직원이 자신의 업무가 매달 고용에 드는 전체 비용보다 고용주에게 상당히 더 많은 수입을 발생시키는 것을 목격했던 진귀한 특권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커리어 흥미 및 적성 테스트는 변호사로서 린튼 교수의 프로페셔널 역량개발에의 결정에 큰 도움을 줬다. 이후 그는 항소법원 판사를 위해 일하고, 국제 로펌에서도 근무했다. 또한, 법률 기업가(legal entrepreneur)가 되기 위해 로펌을 떠나, 2년 연속 국내 최고의 사내 법무팀으로 인정받은 팀을 공동 설립했으며 스타트업 창업, 경영, 투자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이러한 삶의 궤적에서 린튼 교수는 주니어 직원들, 학생 인턴들, 그리고 리더십 잠재력을 갖고 있는 청년들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열과 성을 다했다. 이처럼 린튼 교수의 남다른 교육과 커리어 패스를 고려하며 『월간HRD』는 그가 한국의 인간역량개발의 현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이에 관해 린튼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HRD는 과거 성공의 피해자인 것 같습니다.”라며 아래와 같이 자신의 관점을 공유했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 및 사회 발전은 전 세계의 모델입니다. 하지만 따라잡는 것에는 작동을 잘했던 HRD 방식이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리더양성에는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HRD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복잡한 주제지만 저는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s)’고 제안드립니다. 수백 년 동안 미국과 영국의 엘리트 학교들의 커리큘럼을 형성했던 리더십 교육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거죠. 과거에 서양의 엘리트들이 어떻게 교육받았는지 연구하고 그중 가장 좋은 요소들만 가져오는 것입니다. 서양의 청년들의 문해력을 떨어뜨리는 최근의 학문적 유행은 멀리하고요.”
"경제·사회 발전에 집중했던 한국의 HRD는
앞으로는 ‘기본’과 ‘미래’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인재들의
리더십을 키우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는 한국 학생들이 미국의 학생들과 비교해서 훨씬 문해력이 높지만 미래를 기준으로 했을 때 보편적 문해력은 낮다고 말한다.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문해력 교육 이상이 요구된다는 해석이다. 그에 따르면 컬럼비아 대학교에서는 1학년 필수 글쓰기 수업이 ‘초급 글쓰기’나 ‘프로페셔널 글쓰기’로 불리지 않고 ‘논리와 수사법’으로 불린다. 이 과목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원고에 상세한 피드백을 받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하도록 배우며, 커뮤니케이션 역량으로 다른 사람을 어떻게 설득하는지 배운다. 이것이 그가 “재능 있는 한국 청년들이 학생 중심 교육을 받아야 마땅하며, 이는 한국이 계속해서 번영하고 나아가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가 진심을 다해 이번 인터뷰에서 전해준 메시지는 lead를 copy와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뛰어난 인재들이 자신도 모르게 캐치업(catch-up)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