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교수는 전 덕성여대 예술대학 학장과 산업미술학과 교수,
한국 애니메이션 만화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서독 뮌스터시,
코스펠트시 초청 개인전과 교양만화 분야에서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였다.
현재는 『먼나라 이웃나라』를 평생 작업으로 갖고 가며 마지막 스페인 편을 창작하고 있다.
다음 학기 9월. 덕성여대에서 인문강좌로 ‘먼나라 이웃나라’를 개설하여
세계를 누비며 경험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낼 예정이다.
대표 작품으로는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세계사 산책』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가로세로 세계사』
『왕초보 주식교실』 『부자국민 일등경제』 『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
『나란나란 세계사 도란도란 한국사』『신의 나라 인간 나라』 등이 있다.
1971년 프랑스『라루스 알파벳 대백과사전』에 보면 만화를 ‘제9의 예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 교수는 디자인과 만화는 모두 ‘서비스업’이라고 말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이 교수의 만화 인생은 사실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는 사고로부터 출발했다. 교수는 ‘직업’, 만화는 ‘놀이’라는 타고난 이야기꾼 이 교수의 만화 인생 50년에 대한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역사, 경제, 정치, 문화, 철학 등 인문 관련 교양만화를 주로 그린 이 교수는 ‘숲 속에서 혼자 노는 독립군’이다. 교양만화라는 영역 자체를 이 교수가 처음 시작했고, 5, 60년대 도제 방식으로 스승 밑에 들어가 만화를 배웠던 다른 이들과는 달리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교수가 소년한국일보 신문사에서 복제 그림 아르바이트를 했던 고1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락(樂)에서 업(業)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가장 빨리 숙련되는 방법은 임화이다. 자신보다 기술과 경험이 풍부한 선배의 그림을 보고 똑같이 흉내를 내며, 그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부에 들어가 만화를 그리는 것에 흥미를 느꼈던 이 교수는 고1 때, 신문사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둔 친구를 따라 신문사를 쫓아갔다가 만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해보라는 제안에 처음으로 원고료 3천 원을 받고 복제 만화를 그렸다. 지금의 돈으로 8~10만 원 정도의 금액이다. 정규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때 외국 유명 만화가의 그림을 속이 훤히 비치는 트레이싱지 밑에 대고 따라 그리며 그림 기초를 탄탄히 했다. 처음으로 만화로 돈을 받기 시작한 이때부터 그의 만화 인생 50년이 시작된다.
“만화는 나한테 재미이지. 재미이고, 놀이이고. 그런 면에서는 재미가 직업으로 연결된 게 굉장히 다행이지. 그렇지만 치열함도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없었어. 자기와의 싸움이라도 자기라는 상대와 싸워야 치열함이 생기는데, 평생 만화를 직업으로 가져야겠다는 생각, 누구를 이것을 통해 이겨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거든. 어떻게 보면 ‘숲 속에서 혼자 노는 독립군’이야. 교양만화를 처음 시작해 경쟁이 없었고, 만화란 내게 호구지책이지 직업이 아니었거든. 재밌어서 계속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야. 재미가 직업으로 연결되었다는 면에선 굉장히 럭키한 케이스지.”
재미없는 것은 안 하고 남의 영향도 잘 받지 않는다는 이 교수는 자신을 노력하지 않고 노는 형이라고 한다. 즐기면서 그 일을 계속하면 전문가가 되지만, 억지로 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전문가가 안 되기 때문이다.
“좋아하면 오래가지. 사람도 그렇잖아”라고 말하는 이 교수는 인간의 공상과 판타지의 최초 스케치가 만화라고 했다. 만화의 가장 큰 매력으로는 어떤 예술이나, 창작 분야보다도 자유롭고, 무엇보다 돈이 안 드는 것을 꼽았다.
50년을 함께한 100원짜리 펜과 종이, 그의 지적 호기심과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자유로운 사고와 발걸음. 이 모든 것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먼나라 이웃나라』가 나올 수 있었던 요건이었다.
만화를 통해 ‘글로벌화’를 말하다
고1의 어린 소년은 돈을 받는 재미에 원고 날짜를 정확히 지켜서 신문사에 원고를 보냈고, 이런 소년을 기특하게 여긴 신문사는 이 소년이 대학생이 되자 만화에 할당된 거의 모든 지면을 이 소년에게 맡겼다. 이 소년은 지금도 원고 마감날짜만큼은 철석같이 지킨다.
“독일에서 유학하며 디자인 공부를 할 때, 헤르만이라고 하는 독일 교수가 있었어. 근데 이 교수가 첫 수업 때, ‘디자이너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거야. 전부 아티스트이다. 뭐다 얘기가 많았는데, 교수의 말이 서비스업이래.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예술이라 생각했는데, 서비스라고 생각하니까 주객이 바뀌더라고. 겸손해졌다고 할까. 만화가 예술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독자에게 어떻게 접근하느냐 이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클라이언트와 약속한 마감날짜를 어기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거야. 50년간 연재하며 단 한 번도 마감날짜를 미룬 적이 없어. 그것이 내 일평생 자랑이라면 자랑이지.”
이 교수는 독일에서 유학하며 매일 연재하는 소년한국일보에 원고를 보냈을 때도 단 한 번의 펑크도 허용하지 않았다. 한 번을 허용하면 그다음 약속을 어기기는 더욱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Use to be’, 습관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만큼은 치열하게 지켜왔던 이 교수가 만화를 통해 총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글로벌화이다. 개방, 관용, 글로벌이 그가 만화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독일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받은 문화적 충격이 종합적으로 우리나라 온 국민의 세계화를 향한 갈망으로 나온 것이다.
독일은 유럽국가로 동, 서, 남, 북 여러 민족이 왕래하는 나라이다. 그곳에서부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내린 결론은 관용이 없으면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체험한 이 교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주제 아닐까.
역(逆)으로 작(作)을 하는 사람
‘세스 고든’의 보랏빛 소처럼. 만화에 교양을 입히고 그 속에 세계의 문화를 담은 그의 발상은 이 교수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기자가 어떻게 만화와 교양을 융합할 생각을 했느냐고 질문하자, 이 교수는 시대 교육의 자연스러운 반영이라고 말한다. 5, 60년대에는 계몽주의 사상이 팽배했던 때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개념과 리더십 교육을 통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 교수는 교양을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것’으로 정의한다. 지식보다는 지혜를 담은 인문을 다루게 되었고, 그것을 쉽게 풀이한 것이 그의 작품이다.
쉽다고 하지만, 작품에 글이 많다. 기자가 이를 지적하자, 그 당시 우리나라는 공장 누나들이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며 외화를 벌 때로 극심한 가난을 경험해 종이를 아끼고자 만들어진 습관이라며, 종이 한 장도 텅 빈 공간으로 쓰는 것이 잘 안 된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만화가와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닭의 머리가 되기보다는 훌륭한 소꼬리가 되라!’고 한다. 모든 것이 블루오션이었던 옛날과 달리 거의 모든 것이 레드오션인 지금의 상황을 간파한 말이다.
만화와 디자인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재능을 물었더니, “공통점은 창작하는 사람이겠지. 내가 볼 땐 역발상의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만화를 그릴 때, 사람들이 결말을 짐작할 수 있어. 그건 실패한 만화야. 뭔가 반전과 자극이 있고, 어렴풋이 짐작은 하지만 ‘일까, 아닐까’를 끝까지 궁금하게 하는 능력이 필수 자질이지. 역발상은 아주 간단해. 역지사지하면 돼. 이런 것은 교육과 관계없는 거야. 감각이지. 정주영 씨가 교육받고 사업 잘했나?”라며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어떻게 교수와 만화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교수의 답은 짧고, 간단하다.
“두 가지 다 같은 거야. 교수는 자신이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만화가는 자신이 아는 것을 그리는 거잖아.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인 덕성여대 교수직을 하며 만화를 그리는 것을 병행하는 데는 개인적인 투쟁이 있었지. 인맥관리는 일절 안 했어. 난 만화가 있으니까. 만화만 있으면 되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중요시한다. 조직생활에서 인맥관리는 필수인데, 이 교수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며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이겨냈다.
2012년 2월 29일 덕성여대 교수직 정년퇴임을 한 이 교수는 다음 학기 9월에 다시 덕성여대에서 ‘먼나라 이웃나라’란 제목으로 인문강좌를 연다. 왜 이렇게 열정으로 산 경험을 나누어 주느냐고 묻자 이 교수의 답은 그의 푸근한 미소처럼 너그럽다.
“혼자 안고 가기 아깝잖아. 이게 얼마짜린데. 얼마나 투자해서 얻은 건데. 비행기값이 얼마나 들고, 얼마나 비싼 건데.”


글+사진 김현지 기자